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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창 추수가 끝나고 이제 한 겨울 김장을 준비하는 시기가 닥쳤습니다. 사실 우리가 추수감사절이라고 드리는 감사절기는 시기적으로 우리나라와 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한가위와 비슷한 시기에 추수감사절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가위의 의미가 조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기보다 일신, 토신, 풍요신등 자연신 숭배사상과 어우러지고 조상신을 섬기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 의미전환을 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 반대가 심합니다. 특히 요즘 우리나라의 기후환경과 음력 8월 15일 한가위와는 맞지 않아 추석 때가 되어도 추수를 하지 않은 농가가 많아서 한가위를 추수감사절로 만들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실, 추수가 다 끝나고 이제 겨울을 준비하는 이 시절에 추수감사절예배를 드리는 것이 좀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완전히 추수를 마치고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예배를 드리니 어쩌면 이 때 추수감사절예배를 드린다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 고주리교회는 농촌마을의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습니다. 논이 엄청나게 펼쳐진 황금들녁이 있는 농촌지역은 아니지만 그래도 추수 때가 되면 추수를 한 알곡을 모으고 정미소로 알곡을 옮기기 위해 400kg, 500kg정도되는 큰 포대를 쌓아놓은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가을추수때가 되면 정말 한 해의 결실을 얻었구나 생각하며 한 씨름 놓는 장면을 많이 보게 됩니다. 물론 요즘 추매가격도 떨어지고 쌀값이 엄청나게 싸게 책정되어지고 팔려져서 추수를 하고나서도 고민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봄부터 고생한 노력이 가을이 되어 이제 추수로 한 해 농사를 끝낼 수 있다는 생각에 집집마다 평안함을 찾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 년의 농사를 마치고 추수의 감격을 느끼며 온 민족이 축제를 벌입니다. 오늘 본문은 추수감사의 축제를 거행하기 위해 이스라엘민족이 지켰던 명절인 초막절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이 초막절은 오늘날 우리가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감사절기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주님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추수의 감사를 어떻게 즐기며 어떻게 추수의 감사를 기뻐하며 살아갈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서 우리가 오늘 맞이하는 추수감사주일 주님안에서 함께 기쁨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추수감사절의 기쁨 첫째는 거두는 기쁨이 있습니다.
시편 126편 6절입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참 기쁨은 심은대로 거두는 기쁨입니다. 추수는 기쁨으로는 무엇보다 먼저 일 년 동안, 힘써 심고, 가꾼 것을 거두는 "수확의 기쁨"을 먼저 꼽을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그 동안 겪었던 고생도 다 잊고 결실을 손에 쥐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백성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수확의 기쁨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은혜가 넘치는 기쁨입니다. 즉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광야에서 방황했을 때는 심고, 노력해 봐야 모두 빼앗기거나, 또는 심고 가꿀 땅도, 시간도, 환경도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서 그들에게 주신 땅에서 그들이 수고한 대로 곡식을 거두게 되었으니 그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우리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미국 추수감사절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항해술이 취약하여 먼 바다를 여행할 수 없었던 1620년 오직 신앙의 자유만을 찾아 극심한 기아와 병고에 시달리면서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싣고 신대륙 아메리카로 건너간 102명의 청교도(the Puritan)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천신만고의 고통속에서 구사일생의 경험을 가지고 낯설고 물설은 아메리카대륙에 도착하였습니다. 토양도 다르고 기후도 다르고 무엇보다 본인 소유의 경작지도 제대로 없는 땅에서 살기 위해 심었던 곡식을 1년 만에 거두어들입니다.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풍토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각종 생활속의 고통을 가지고 하루하루 뭘 먹으며 살아야할 지 모르는 그들이 일 년간 먹을 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한 해 농사를 수확한 후 얻은 새 땅에서의 첫 결실을 감사하여 드린 감사 기념 예배가 추수감사절 예배가 된 것입니다. 실로 눈물과 감사가 뒤범벅된 벅찬 감동의 예배를 드렸던 그들이 바로 현대 미국을 탄생시킨 선조(the Piligrim Fathers)들이었다.
이들이 드렸던 첫 추수 감사절의 벅찬 환희는 단순히 한 나라의 건국 일화나 한 해의 추수의 감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자유의 존엄성을, 그리고 개척자정신의 고귀함을 보여 주는 산 실례로서 모든 인류의 가슴속에 진한 감동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청교도의 후예인 미국 교회에서 한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한국교회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오늘날의 추수 감사절이 한국교회에서도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추수의 감사를 통해 우리가 느끼는 것은 바로 성도에게 보장된 삶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고난이 오고 고통이 와도 언젠가는 결실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멀리 떨어진 불신자들의 삶속에는 좋은 일이 있어 보이고 큰 노력없이도 부자가 되고 권력을 얻는 것 같지만 결국 그들은 진정한 삶의 열매를 거둘 수 없고 그들의 인생으로는 영생의 열매를 수확할 수도 없습니다. 땀을 흘리고 열심히 노력하며 인생을 위해 많은 것을 심지만 결국 그들의 인생은 죄악과 불의로 인해 종국에는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심은 대로 거두는 기쁨을 얻습니다. 의인들에게는 열매를 거두는 기쁨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3장 10,11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우리는 주 안에서 성령에 의해서 심은대로 거두게 되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삶이 언젠가는 큰 결실을 얻게 될 것이고 무엇보다 죽은 이후 천국갈 때에는 확연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큰 명예, 큰 부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주님 없으면 지옥의 열매가 있을 것이고 이 땅에서 그다지 누리지 못하였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만난 영혼은 천국의 열매를 가지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인 우리는 심은대로만 거두는 것이 아니라 더욱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기쁨을 가집니다. 심은 것만 거두는 것이 추수가 아닙니다. 심은 것보다 몇 배, 몇 십 배 풍성하게 얻을 수가 있으니 기쁜 것입니다. 제가 기도하면서 천배, 만배 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기도합니다.
경제적으로 따지면 이것은 정말 도둑놈 심보입니다. 어떤 물질을 투자해서 천배의 수익, 만배의 수익을 얻었다 이건 이 시대 정말 말이 안됩니다. 30배, 60배, 100배 마찬가지입니다. 제일 적은 30배마저도 이건 수치적으로 말이 안됩니다.
요즘 은행금리가 몇 %인지 아십니까? 새마을금고, 신협 등 제2금융권도 1년간 예탁할 때 금리가 2%가 될까말까합니다. 100%이율이라는 말은 원금의 두배라는 뜻입니다. 그럼 30배는 몇 %입니까? 3,000%입니다. 말이 안되죠? 그럼에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풍성한 은혜로 채우십니다.
시편 36편 8절을 보시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심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열매로 거두게 해 주시는 일은, 곧 하나님의 창조적인 사랑의 은총 때문입니다. 주안에서 하나를 심으면 백을 얻게 해 주시고, 썩을 육신의 것을 심으면 썩지 아니할 영생의 열매를 주시는 것이 곧 하나님의 창조적인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심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 영광스러운 결과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노력한 것, 내가 수고한 것, 내가 투자한 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놀라운 기적의 결과, 세상은 줄 수 없는 천국의 기쁨을 맛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추수감사절의 기쁨 둘째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입니다.
역대상 29장 9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기쁨으로 제사를 드리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본질적인 기쁨은 물질적인 소득에 있지 않습니다. 사실 대체로 교회들이 일년간의 우리의 삶의 수확을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지만 사실 우리가 일년동안 수확이 없고 작년에 비해 올해가 형편없이 환경이 좋지 못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한 해를 지냈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라는 고백으로 제사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올해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고 올해도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수 있어서 기뻐하며 감사예배, 감사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방금 읽었던 역대상 29장 9절 상반절에도 “백성들이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12장 43절에는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을 기뻐했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으로 감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열매와 소득을 하나님의 것으로 되돌리고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 추수감사절의 본질이요 또 성도만이 누릴 수 있는 영적인 기쁨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일년동안도 은혜로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며 감사의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16장 16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때마다 절기를 지키되 절기때마다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뒤 구절인 17절에는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힘닿는대로 하나님앞에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대하 24장 10절에는 “모든 방백들과 백성들이 기뻐하여 마치기까지 돈을 가져다가 궤에 던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위해서 섬기고 하나님의 영광에 쓰여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2절을 보시면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게도냐교회 성도들의 헌금생활은 환난과 고통속에서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그런 힘든 생활가운데 지나치다고 생각될 정도로 헌금을 하였다고 사도 바울은 칭찬하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하나님께 얻는 기쁨만 누리는 절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기쁨이 함께 있는 절기입니다.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생각하며 헌신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얼마 전 제가 낮에 나이가 45이 되도록 뭐했을까라고 생각하며 잠시 허탄한 생각에 빠진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부어주신 은혜를 기억나게 하시고 비록 나에게 가진 것은 없지만 주님이 주시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청지기로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혜로 살아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 묵상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때 주신 생각을 가지고 제 SNS 에 올렸습니다.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에 이렇게 올렸습니다.
『지금까지 40대중반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나의 명의로 된 집이나 땅을 가져본 적이 없다. 부모님도 내가 알기론 본인의 명의의 집이나 땅을 가져본 적이 없다. 조부모님때는 괜찮은 형편이라는 얘기만 들었을 뿐 최소한 나의 기억으로는 나의 부모님, 나 자신 땅이나 주택을 소유해본 일이 없다. 내 명의로 가졌던 오래된 차도 모두 교회명의로 바꾼 뒤에는 정말 나의 명의의 소요물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정말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슬픈 일이라고 할 수도 있고 부끄럽다고도 할 수 있을런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 문득 그간 내가 설교하면서 우리는 청지기라고 했던 것이 다시 정말 나를 강하게 지배하는 것을 느꼈다.
"나의 소유가 아니고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고 내가 이 땅에서 가지게 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을 내가 관리하는 것뿐입니다."
내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없는데 왜 우리들은 그 재산이라는 것, 명예라는 것, 지식이라는 것을 위해 정말 가치있는 신앙을 버리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소유하려고 하면 정말 우리는 그것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말 인간적으로 부끄러운 형편이지만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는 정말 가치있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참된 청지기의식을 가지고 부족한 중에 나누는 하나님의 참된 종으로 오늘도 살아가련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지신 것으로 하나님께 돌려드리며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앞에 돌려드리며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기쁨을 누리는 추수감사주일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추수감사절의 기쁨 마지막 셋째는 이웃과 나누는 기쁨입니다.
레위기 19장 9, 10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추수의 의미속에서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 하는 것중의 하나는 바로 나눔입니다. 우리는 소득을 얻게 되어 내가 풍요롭게 되었을 때 꼭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는데 바로 내가 이렇게 풍요하게 되었지만 우리 주위에는 아직 굶주린 이웃, 상처받은 이웃,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16장 14절에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추수를 하여 풍요함을 느끼고 이렇게 추수하여 결실을 얻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축제를 즐길 때 우리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레위인 즉 재산을 가지지 않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생각하며 함께 즐거워해야한다고 말슴하고 있습니다. 재산없는 성직자,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오랫동안 여행을 하면서 하루하루 먹을 것을 구하여 살아가야하는 나그네, 그리고 부모가 없어 스스로 하루하루를 연명해야하는 고아들... 그리고 그 당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없어 어떻게 생계를 꾸려야할 지 모르는 남편잃은 여인들...을 절기때가 되면 돌봐야 했습니다. 주위에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에게 추수의 축복을 나누어주고 함께 즐기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추수감사절에 우리가 꼭 생각해야할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저는 참 안타까운게 정말 우리가 여전히 우리도 부족하지만 절기때 이 마을 사람들을 위해 뭔가 선물을 나눠주고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제가 섬겼던 교회들은 추수감사절, 성탄절이 되면 이웃을 위해 김장을 해서 김치 한 박스씩 나눠주기도 하고 털목도리, 털장갑을 성도들이 짜서 나눠주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가을철, 겨울철에 사랑을 나눌 만한 것으로 전도의 접촉점을 가지기도 하고 그냥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에 아무런 댓가를 기대하지 않고 나눠주기도 하곤 했습니다.
정말 추수감사절, 성탄절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할 것은 우리만 즐거워서 우리만 즐기는 명절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소외되고 고통당하고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명절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신명기 16장 11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리가 수확한 것,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것으로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기쁨을 경험하며 오히려 그런 삶속에서 희락을 느끼고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12장 15절에서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라고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재물을 이웃을 위해 쓰는 것을 기뻐할 수 있어야 참된 신앙인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참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는 데서만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는 단세포형적인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은혜받고 사랑받고 받는 것으로만 기뻐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신앙인입니다. 받았으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들어오는 것이 있으면 나가는 것이 있어야 생명력이 있는 신앙이라고 누차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분깃을 하나님의 사랑과 구제가 필요한 이웃과 함께 나누는 데서 큰 보람과 만족과 기쁨을 얻을 수가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를 보십시오. 사도행전 2장에 보시면 초대교회는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여 떡을 떼고 음식을 나눠먹고 하나님께 찬양하며 예배하였습니다. 그런 삶이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감동하여 교회를 칭찬하고 그런 교회라면 내가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회가면 죽는다는 것이 보편상식입니다. 그럼에도 나눔이 있고 사랑이 있는 교회라면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가겠다고 교회를 스스로 찾아왔다는 말씀입니다.
과연 요즘 교회의 나눔의 모습과 섬김의 모습에 감동해서 찾아오는 완전 불신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다른 교회에 다니던 사람들이 여건을 따져보고 분위기를 따져보며 다른 교회로 옮겨가는 경우는 있어도 불신자가 교회가 섬기고 나눠주는 모습에 감동해서 교회를 찾아오는 경우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초대교회처럼 그런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추수의 감격을 가지고 지역공동체를 섬기고 마을공동체를 섬기며 소외당하고 고통당하는 사람을 돌봐야 합니다. 겨울이 다가올 때 따뜻한 팩이라도 하나 선물하고 털장갑이라도 하나 선물하며 온정을 나눠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참된 추수감사의 의미를 가진 예배자가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참된 신앙인은 자기만 잘먹고 잘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시면 추수를 하고 나서 꼭 빈궁한 이웃을 위해 추수할 때 떨어진 알곡은 그대로 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9장 9, 10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추수할 곡식과 땅도 없는 빈궁한 이웃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비애를 느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싹쓸이 추수를 하지 말고 남겨두어 그들도 추수의 즐거움과 축복을 맛보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요즘 왜 지금 우리나라정세가 이렇게 혼란스럽습니까? 바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억울함으로 인해 하나로 뭉쳤기 때문이 아닙니까? 어느 순간부터 일명 ‘흙수저’,‘금수저’라는 말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아무리 해도 안되는 가진 것이 없는 ‘흙수저’출신 사람들이 박탈감이 엄청나게 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밝혀진 ‘최순실 국정농단’을 보면서 정말 권력을 가지고 재산을 가지고 불법과 비리를 저지르며 돈이 돈을 낳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실력도 없는데 돈과 권력으로 일류대학을 불법으로 들어가고 제대로 수업도 안받으면서 최고의 학점을 따고 실력도 없는데 빽을 동원해서 스포츠대회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면서 정말 울분이 극에 달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정말 잘살고 싶어도 가진 것이 없는 이웃, 정말 제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싶은데 여러 가지 환경에 막혀 답답하게 지내는 이웃을 생각하며 그들과 함께 해야합니다. 이웃을 위해 나눠주고 섬겨주고 도와주려고 하는데 내가 손해보지 않고 양보하지 않고 가능하겠습니까? 정말 이웃을 섬기고 도와주려고 내가 조금 손해보고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혜택을 주려고 노력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중에 내가 뭔가 큰 이익을 얻었다면 내가 잘해서 그런건데 뭐 나 혼자 다 챙겨도 상관없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조금 떼어서 혹시나 형편이 어려운 동료가 있다면 그것을 나눠주는 삶을 살아야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된 추수감사절의 즐거움과 기쁨을 맛보는 복된 성도들의 삶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추수감사의 기쁨으로 나누고 섬기고 도와주는 복된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추수감사절의 기쁨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혜를 확인하고 감사드리며 함께 나누고 공동체적인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열심히 노력하여 수고한 열매를 얻고 그 열매를 얻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감사하며 예물을 돌려드리는 것이 참된 추수감사의 의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에게 물질의 복을 주셨을 때는 이것으로 이웃을 돌보고 사랑하는데 쓰라고 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함께 나누며 참 사랑으로 나의 삶의 주변을 따뜻하게 만들어야할 것입니다. 나 혼자 잘먹고 잘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정말 복된 추수감사절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