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³¹
시노달리타스의 목표 : 공동 식별 ²
공동 식별이 이루어지기 위한 첫 발걸음은 '많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오해가 적지 않습니다. 그저 현재 교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병폐라 할 수 있는 성직자 중심 주의와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많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일방적인 소통 구조에 대한 워의 만을 그려 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노드 과정에서도 단순히 의견이나 건의 사항을 수집하는 차원으로만 생각하고 '이것저것 해 주세요, 내 건의 사항은 왜 안 들어주시나요, 역시 교회는 변함이 없네요.'와 같은 회의론이 여전합니다. 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부의 큰소리에 의해, 또는 그들이 주장하는 합리성과 효율성의 가치에 의거한 판단에 의해 교회를 마치 정치판과 같은 의회 민주주의의 장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으로 시노달리타스를 이해한다면 교회를 '일시적으로는 평등해 보이는' 집단으로 만들 수는 있겠지마느 결국 그 정체성은 성실하고 하느님의 뜻은 헤아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식별의 근본은 '기도' 와 '말씀에 대한 우선성' 입니다. 교회가 함께 찾고 따라야 하는 근본적이고 궁극적 원리는 '여론'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 이어야 하고, 모든 행동을 결정하는 준거 또한 '다수'가 아닌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효과적인 수단을 통하여 의견을 모으고 함께 결정을 하였다 해도, 말씀과 성찬에서 멀어져 있다면 그 공동체는 민주적 공동체라고는 할 수 있어도 하느님 백성의 교회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말씀으로부터 멀어져 있다는 것 자체가 '식별'이 결여되었다는 것의 방증이므로, 시노달리타스의 실현과는 거리가 멀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가 결정하는가'가 아니라 '함께 식별하고 있는가?" 로의 의식의 전환이 필수적입니다. '바라보는 시선' 의 총체이자 공유인 '공동 식별' 의 과정 안에서 '하느님의 시선' 을 찾아 나가는, 신속, 정확, 효율의 가치보다 오히려 '여백과 기다림' 의 시공간을 형성하는 것이 시노드적 교회의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전 세계 주교 시노드의 예비 문서에서도 공동체적 식별을 위해 유념해야 할 태도를 언급하는데, '하느님 백성은 누구든지 진실하게 자문에 응해야 한다는 것' , '최대한 광범위하게 주변부에 있는 이들을 포함하여 모든 이가 참여해야 한다는 것' , 그리고 '실질적으로 복음 선포 사명의 실현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구의 사목 지침의 근간이 되는 '말씀 살기'는 식별을 위한 기초를 마련하고, 이 식별은 시노드적 과정의 핵심ㄹ이라는 점에서 '말씀 살기' 와 '시노드적 교회를 살기' 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공동체는 지금 말씀으로 살아가고, 말씀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글 |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