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의 기세가 한풀 꺽일 것으로 보입니다...어제부터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십사절기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희한하죠? 어제가 입추였습니다. 어제가 입추였는데 어제 저녁부터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군요.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열대야가 사라지고 밤에는 선선해집니다. 그리고 다음 주 수요일 8월 14일은 마지막 더위라는 말복입니다. 맛난 것 많이 드시고 마지막 더위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는 일요일 말고 그 다음 일요일인 8월 18일은 "백중"입니다. 백중은 목련존자가 지옥에 빠진 엄마를 구해냈다고 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천도제가 많이 있을 것 같은 날인데.. 제가 스님이나 무속인이 아니라서 실제로는 잘 모르겠고요. 암튼 이 날은 귀신들의 축제일입니다. 그나마 일년 중 사람들로부터 공식적으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날입니다.
중국 같은 경우에는 지옥문이 열려서 귀신들이 출몰한다고 하는 날인데 귀신도 나라마다.. 문화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중국엔 강시들이.. 서양에선 악마들이.. 그리고 한국에선 처녀 귀신들이.. 역시 귀신도 케이(K)귀신이 최고입니다. 귀신하면 역시 예쁜게 최고입니다.
귀신을 사랑한 장국영...천녀유혼 리메이크작에서
기왕에 귀신 이야기가 나왔으니 귀신 이야기 하나 하죠.
서로 사랑했던 부부.. 어느 날 아내가 죽었습니다.그런데 그날 밤, 아내가 유령으로 나타났습니다. 남편은 처음엔 너무나 반가웠지만 곧 그녀가 살아있는 아내가 아닌 귀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가우면서도 다른 한편 섬뜩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녀는 날마다 밤이 되면 남편 앞에 나타나서 같이 놀아달라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남편은 두렵기도 하고.. 살아 있는 여인이었을 때야 사랑스러웠겠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시달리던 남편은 평상시 알고 지내던 수행자였던 스님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해야 귀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처방을 구합니다.
그러자 스님은 작은 주머니 하나를 남편에게 주면서 말합니다. "이 주머니 안에는 구슬이 들어 있어. 아내 귀신이 나타났을 때..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게.. 당신이 정말 내 아내가 맞다면 이 주머니 안의 구슬이 몇개인지 맞춰 봐.. 귀신은 모든 걸 다 안다고 하니까.. 만약 구슬이 몇개인지 맞춘다면 당신은 내 아내가 맞겠지.. 하지만 구슬의 갯수를 맞추지 못한다면 당신은 내 아내가 아닌게 분명할 거야.. 그리고 자네는 절대 이 주머니를 열어서 구슬의 갯수를 세어보면 안 된다네.."
주머니를 받아들고 집에 온 남편.. 주머니 안의 구슬이 몇 개인지 궁금했지만 스님의 말을 기억하고 참고.. 주머니를 열어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과연 그 날 밤에도 아내가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주머니를 내 보이며 말합니다. "당신이 정말로 내 아내의 혼령이 맞다면 이 주머니 안의 구슬이 몇 개인지 말해 보시요. 맞춘다면 당신은 내 아내가 맞겠지만 맞추지 못한다면 당신은 내 아내가 아닌게 분명할 것이요." 그러자 그 순간 귀신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후 다시는 아내귀신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만약에 남편이 주머니를 열어서 구슬의 갯수를 세어 보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랬다면 귀신은 구슬의 갯수를 맞출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귀신은 바로 죽은 아내를 그리워한 남편의 의식이 만들어 낸 허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걸 알고 있었던 스님은 남편에게 절대 주머니를 열어서 구슬의 갯수를 세어 보아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던 겁니다.
남편의 의식에서 파생된 귀신이니 남편이 알고 있는 것은 귀신도 모두 알고 있을 수 밖에 없고, 남편이 모르는 것은 아내도 알 수 있는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구슬의 갯수를 맞추어 보라고 말했을 때.. 귀신은 자신이 허상이라는 것이 드러났기에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어서 사라졌던 것입니다.
엑소시즘 영화를 보면 구마의식 중 악마가 들린 사람을 향해서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지 말하라" 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같은 맥락입니다. 그 실체가 드러나면 귀신은 사라지는 겁니다. 왜냐하면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귀신은 경문에 약하다" 라는 말이 있는 거고요. 경전이란? 귀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기록된 깨달은 사람들의 말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래서 경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귀신은 육신 없는 사람, 사람은 육신 가진 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