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범한 것이 좋다.
일상적인 것이 좋다.
소박한 것이 편하다.
내게 마지막 소원으로 남은 것은 어머니 아버지가 잔디밭 비석 아래 머물고 계시는 조국땅의 남쪽 끝 바닷가에 아주 작은 초옥하나 찾아 가장 근심 걱정 없는 어촌의 한 노인으로 한두 해 또는
두세 해 머물다가 잠들듯 세상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속의 한 모습일 뿐.
뭔 큰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건만 이루어질 수 없는 허공의 바람결로 스쳐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식구들의 와아! 소리가 합쳐질 만큼 완벽한 호응을 얻을 만한 아이디어가 되지 못한 까닭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feasibility condition을 갖추지 못한 원인은 늘 그러했듯이 '우물쭈물', '차일피일'
'우유부단'의 지도력 결핍에 있었던 것이다.
생애의 마지막 소원이었으면 화끈한 실행력으로
타당한 논리와 설득의 전략을 개발하여 에라! 이끌고 나섰어야 했으나, " 늙을수록 큰 도시에서 큰 병원 가까이 살아야 된다 ", " 물달걀 같은 어린 두 손녀를 받아, 먹이고 키운 정을 끊고 다시 태평양 건너로 내뺀다면 주말마다 찾아와서 할미와 자고 가는 어린것들이 잉잉 울지 않고 가만있겠느냐 " 는 등의 비과학적, 비군사적? 별 것 아닌 反語 한마디에 " 그렇겠지? " 깃발을 내려놓는 卒將의 역량 부족으로는 애당초 성공의 싻수가 솟아 오를리가 없는 것이었다.
각방에서 잠들 때마다 내 방문을 유령 모양 밀고 들어와 쓰레기통을 비워놓고 뭐 하나라도 더 덮어주고 가는 할미의 포퓰리즘 술수로 나의 젊은 시절 지도력은 완전 박살 난 것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에휴~ .
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