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94번 도로
94번 도로에 있는 아름다운 트랙들
• 레이크 마리온 트랙 (Lake Marion Trock 왕복 3시간)
산 정상부의 거울 같은 호수에 비친 흰 봉우리가 예술이다. 가는 길이 조금 거칠지만 제일 끝에 펼쳐지는 호수의 풍경에 모든 피로가 가신다. 계곡을 따라 쏟아지는 물과 이끼도 절경이다.
• 키 서밋 트랙 (Key Summit Track 왕복 3시간 이상)
그 유명한 루트번 트랙으로 가는 중간에 있는 사이드 트랙 이다.
더 디바이드(The Divide)에서 왕복 3시간 정도 걸린다. 시야가 좋은 날에는 무조건 올라가 봐야 할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산 정상에 있는 고산 식물들과 보그(Bog, 고산 습지)가 빚어내는 신비한 정경은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산 정상에 올랐을 때 끝이 보이지 않는 남알프스 산군과 멀리 보이는 바다가 대단히 인상적이다.
• 거트루드 새들 (Gertrude 4시간 이상)
호머 터널(Homer TunneI) 근처의 폭포가 보이는 거트루드 새들까지 올라가는 트랙이다. 겨울에는 눈사태 위험이 크고 장비가 많이 필요하지만, 여름에는 비교적 편하게 올라가 볼 수 있다. 경사가 심하고 트래이 잘 정비되어 있지는 않지만, 정상에서 보는 시원함은 다른 트랙과 비교할 수 없다 .
• 더 캐즘 (The Chasm 왕복 20분)
밀포드 사운드에서 가까운 짧은 트랙으로, 오랜 기간 동안 물이 바위를 깎아 아주 깊은 계곡을 만들었다. 어린이나 노인들이 가기에도 충분할 정도로 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세월의 힘을 느낄 수 있다.
• 험볼트 폭포 (Humboldt Falls 왕복 30분)
높이 275m의 잘생기고 정력적인 폭포이다. 홀리포드 로드로 들어가 비포장을 10킬로미터 정도 들어가야 한다는 단점을 빼고는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답다. 트랙 입구까지 가는 길이 비포장이지만 길이 깨끗이 잘 닦여 있다.
94번 도로에 나 있는 트랙은 그 아름다움과 독특함, 난이도가 매우 다양하다.
85리터짜리 배낭에 먹을 것을 가득 채우고 여러 날 가야 하는 풀코스 트레킹도 재미있지만, 마치 뷔페 음식을 먹듯이 즐기는 이 쇼트 트랙들도 만족도나 난이도에서 뒤지지 않는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외국에서 트레킹을 하게 되면 난이도가 높은 곳을 가려는 경향이 짙다.
그 어려움과 아름다움이 비례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의 94번 도로는 이런 생각을 단숨에 없애는 장소다.
돌산을 그대로 깎아 만든 위협적인 호머 터널을 지나고 밀포드 사운드에 도착했다.
밀포드 사운드의 경관은 장엄하면서도 신비롭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피오르드 협곡으로 이루어진 밀포드 사운드(해협)는 바다 옆으로 거의 수직에 가까운 18OOm (63빌딩 10개 높이)의 절벽들이 늘어서 있고, 그 절벽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긴 폭포들도 양옆으로 줄을 잇고 있다.
폭풍우라도 치는 계절에는 대양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이 좁은 협곡 사이로 휘몰아쳐 폭포가 도리어 위로 올라가는 진기한 광경까지 보게 된다. 이러한 피오르드 지형은 노르웨이와 뉴질랜드의 남섬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지형이다.
우리가 막다른 길인 밀포드 사운드까지 온 이유는 바로 이곳에 있는 크루즈 배를 타기 위해서다.
약 3시간의 크루즈 여행 동안 우리는 음식과 함께 즐거운 경험을 제공받았다.
크루즈 배는 밀포드 협곡의 거대한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대한 폭포 밑으로 접근해서 크루즈의 선수부에 있는 여행객이 환호성을 지르게도 하고, 이 지역에만 살고 있는 피오르드 크레스티드 팽권, 돌고래 그리고 물개 등도 보여주었다.
거대한 직벽 아래로 보이는 다른 배들이 마치 레고 블록 한 조각에 비유될 만큼 작고 연약해 보인다.
밀포드 사운드 좌우를 막고 있는 피오르드 지형의 거대함을 바라볼수록 우리 모습이 점점 작게 느껴지더니, 결국 우리는 없어지고 거대한 자연의 위용만 마음에남았다.
크루즈 배에는 세계 각국에서 옹 관광객들이 가득 있었는데 허영만 화백이 자기 나름의 구별법을 만들어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24일
퀸스타운 – 오하우 호수
레저 스포츠의 도시, 퀸스타운
아침에 화장실에 갔다가 우연히 거울을 보고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머리는 젤을 잔뜩 바른 듯이 뭉쳐 있고, 눈가의 주름 부분만 타지 않아 눈 주위로 자글자글 흰 줄이 가 있고, 입가에 허옇게 침 흘린 자국 하며, 얼굴은 꼬질꼬질 때가 붙어 있어 ‘궁상스러운’ 모습 그 자체였다.
차로 돌아와 다른 사람들 자는 얼굴을 보니 모두 오십보백보다. 일요일이어서 교회를 가기 위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박박 씻고 깎고 뿌리고 바르고 했더니 상태가 훨씬 나아졌다.
퀸스타운은 수정같이 맑은 와카티푸 호수(Lake Wakatipu) 중심으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이다. 주민이라야 주변의 작은 마을까지 합해 겨우 1만 명 남짓 되지만, 관광객들 수는 훨씬 많아서 평소에도 평균 2만 5000-3만 5000명 이상이 이 마을에 머물고 있다.
퀸스타운은 겨울에는 스키 , 여름에는 트레킹으로 유명하며 ,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레저 스포츠가 가능한 곳이다.
권스타운을 소개하는 카탈로그를 보면 번지점프, 승마, 제트 폭포, 크루즈, 급류타기 , 카누, 패러글라이딩, 루어 낚시, 와이너리 체험, 농장 체험, 골프, 수영, 스키 , 경비행기, 세일링, 암벽 등반, 루지, 열기구까지 도대체 없는 것이 없다.
이렇게 다양하고 멋진 식단을 경험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모텔이나 호텔은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하다.
오전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어보자는 생각에서 아침식사는 빵과 우유로 간단히 먹기로 했다.
멋진 경치를 감상하면서 먹자는 봉주 형님의 의견에 따라 우리는 디어파크로 갔다.
디어파크에서 내려다 보이는 뀐스타운 전경과 와카티푸 호수는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이곳에 와 보면 왜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의 여러 컷을 이곳에서 찍었는지 쉽게 이해가 간다.
경치가 출중한 것은 물론이고, 이곳에 있는 수많은 동물들은 어른이나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과 볼거리를 제공한다.
사슴과 스코틀랜드 소,버펄로, 양, 라마, 염소,산양, 타조, 당나귀, 돼지,소형 말등이 농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데,이 동물들은 우리에서 사육되는 것이 아니라서 직접 만지면서 먹이를 줄수있다.
뉴질랜드에서 배운 교훈 중 하나는 동물들은 단순히 우리에게 즐거움과 먹이를 제공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동물은 우리와 같은 세상을 살도록 창조된 피조물이며 친구다.
그래서 뉴질랜드에서는 닭의 최소한의 기본적인 권리를 배려하기 위해 달걀 공장’ 같은 양계장을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대신에 알은 멀 낳고 살은 빨리 찌지 않지만 넓은 땅에서 풀어 기른 닭이 낳은 알(Free Range Egg)을 먹도록 권장한다.
한갓 닭일지라도 살아 있는 동안 몸이나 마음이 병들게 되면 건강한 달갈을 만들 수 없고, 결국 그런 병든 달갈을 먹으면 사람에게도 좋지 않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기 때문이다.
디어파크에서 뛰어다니던 즐거운 동물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온 버펄로 수컷이었다.
엄청난 크기의 몸집에 콧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차 화통 같은 숨소리와 입김은 아무리 순하다 해도, 옆에 서 있기조차 어려운 위압감을 준다.
“와~ 여기 봐라, 여기! " 봉주 형님이 캠퍼밴 창 밖을 보고 함성을 지른다.
권스타운에서 오하우 호수(Lake Ohau)로 가는 길 중 몇 구간을 제외하고는 길 전체가 꽃으로 덮여 있다. 초여름 시즌에 피는 루핀 꽃이다. 캠퍼밴의 창문을 열자 루핀 꽃 향기가 창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백미러로 보이는 봉주 형님의 입에 미소가 가득하다. 끝없이 핀 루핀 꽃들을 보는 얼굴은 즐겁고, 그 즐거운 얼굴을 보는 것은 더 즐겁다.
바람의 터,오하우 호수
뉴질랜드는 여행자의 천국이다.
특히 우리같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그럴 수밖에 없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판과 태평양 대륙판이 맞부딪쳐 올라오면서 남섬의 서부를 가로지른 서던알프스 산맥, 환태평양 조산대를 통해 북섬의 중심에 불쑥 솟은 활화산들, 빙하가 깍아 만든 피오르드 지형, 섬들의 깎아지른 절벽과 아름다운 숲은 산과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최고의 선택을 주게 될 것이다.
뉴질랜드의 남섬, 그중에서도 특히 서던 알프스의 산들은 겨울이면 도저히 여름과는 같은 산이라고 할 수 없는 어려운 모습으로 변화하는데, 모든 산이 흰 눈으로 덮여 웬만한 트랙을 넘으려면 알파인 장비 및 경험 필요 조건을 요구한다.
산을 꼭 올라가서 정복하는 것도 맛이 있지만, 고도가 낮은 트랙을 골라 멀찍이서 그 아름다움을 편안하게 즐기는 것도 나같이 겁 많은 사림에게는 그리 나쁘지 않다.
오마라마에 들러 작은 슈퍼마켓에서 음식을 준비했다.
이런 작은 마을에는 먹거리가 다양하지 않아 가능하면 도착 전에 큰 도시에서 음식물을 구매해오는 것이 좋다.
우리는 간단한 차와 짜서 마시는 커피, 육포와 바비큐용 고기 등과 푸짐하게 연어회를 먹어볼 욕심에 민물낚시용 면허를 같이 구매했다.
소액을 지불하면영수증같이 생긴 면허를 그 자리에서 받을 수 있다.
오하우 호수는 주변의 테카포 호수(Lake Tekapo)나 푸카키 호수(Lake Pukaki)의 명성에 가려 있지만, 물의 청정도로 보면 남부 캔터 베리의 숨겨진 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의 테카포나 푸카키는 빙하호이기 때문에 청회색의 불투명한 물빛이지만 오하우 호수는 수정같이 맑은 물이 항상 가득 차 있다 .
오하우 호수에서는 수영, 보트, 카약, 낚시, 헌팅, 트레킹과 스키까지 모두 가능하지만, 주변에 숙박시설이 없고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외부 관광객이 아닌 뉴질랜드 사람들만의 특별한 장소로 숨겨져 있다.
오하우는 ‘바람의 터’라는 뜻의 마오리 말로 수온은 일 년 내내 섭씨 7-8도로 매우 차가운 물이다.
이렇게 차가운 물에는 당연히 찬 물을 좋아하는 연어와 송어가 잔뜩 서식하고 있어 플라이 낚시꾼들에게는 최고의 장소를 제공한다.
달리는 캠퍼밴의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 저편이 잿빛이다.
오마라마에서 마운트 묵으로 가는 국도를 타자 곧 좌측으로 레이크 오하우라고 씌어 있는 간판이 보인다.
호수를 끼고 달리는 직선도로가 멋진데 길 옆이 바로 맑은 호수인 데다 군데군데 차를 세우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야영지가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가더니 결국 비포장도로가 시작되었다.
비포장도로 옆의 가시덤불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소들과 양떼가 있어 저속으로 조심해서 운전을 해야 한다.
20분 정도 들어가자 호수 바로 옆에 캠프사이트가 나타나 그곳에 차를 세웠다.
광대하다는 것은 아마 이런 지형을 보고 말하는 것임 에 틀림없다.
조금씩 걷힌 구름 너머로 흘끗 보이는 산 정상부의 흰 눈과 홉킨스 강 이 강은 보통 때는 허리 아래만큼 차오르는 얕은 물이 흐르지만, 폭우가 내리기 시작하면 4-5킬로미터가 되는 계곡을 가득 메우는 거대한 급류로 바뀐다.
여기저기 움푹움푹 뜯겨져 나간 강가의 얕은 둑이 그 거대한 힘을 증명한다.
군데군데 붙은 밥풀만 한 양떼가 아니면 스케일을 짐작할 수도 없는 산자락은 산사태로 1킬로미터가 넘도록 길게 쏟아져 내린 낙석들로 인해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주변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양떼와 일행이 없었더라면 이 거대한 자연에 압도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시간이 흐르자 서서히 구름이 걷히면서 드러나기 시작한 산들이 위용을 뽐낸다.
산 중턱에 걸려 있는 구름 위로 보이는 봉우리들이 마치 제국을 통치하던 군주처럼 당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