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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하는 우리 송년주일인데요. 우리 옆에 분들 보시면서 올 한 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벌써 한 해를 마감하는 송년 주일이라니 내일 모레는 송구영신으로 이제 진짜 마감을 해버리는 2024년에 며칠 남지 않은 오늘입니다. 비록 오늘 말씀 속에서 세월을 아끼라라고 하는 말씀을 좀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의 삶을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세월의 의미가 무엇일까? 영어 여러 번역본들을 보면 세월을 아끼라라는 말을 세월을 다시 사라 시간을 다시 사라 시간을 최선으로 사용하라 모든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라 이런 의미로 번역들을 해 놓았습니다. 물론 이 세월을 아끼라라고 하는 말 안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그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활용하라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이 시간 관리라는 것을 우리가 분초 단위로 쪼개가지고 관리하는 사람들은 그러면 세월을 잘 산 사람들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세월을 그냥 산 사람들일까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초를 다투면서 계획하고 그걸 쫓아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삶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자기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도 잃어버린 채 좌우를 살펴볼 겨를도 없이 어디를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앞을 향해서만 뛰어가고 있는 경우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좋은 예가 아프리카 남단에 살아가고 있는 스프링 복이라고 하는 영양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마 동물 이렇게 나오는 그런 프로그램에 보면 이 스프링복이라는 동물을 본 적이 있을 거예요. 굉장히 빼빼 마르고 뿔이 이렇게 귀엽게 생겼는데 막 점프도 막 많이 하고요. 속도도 얼마나 빠르냐면 80km, 90km까지 시속 속도를 낼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빠릅니다. 보통은 수십 마리에서 수백 마리 정도가 떼를 지어 이렇게 살아가는데 굉장히 온순하고 서로 의존적이고 이렇게 같이 무리를 지어 가는 그런 동물들입니다.
그런데 워낙 달리기도 빠르고 무리 지어 살기 때문에 치타 호랑이 사자 뭐 이런 것들이 들짐승들이 쉽게 잡을 수 없는 그런 짐승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끔 이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경우들이 발견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짐승한테도 잘 잡혀 먹지 않는 막 잘 도망다니는 애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떼죽음을 당하는 상황들이 생기는데 그 이유를 찾아보았습니다.
얘네들이 굉장히 식욕이 강해요. 그래서 때를 지어서 살아가기 시작하는데 그 때가 점점 많아지기 시작하면 먹을 게 어떻게 될까요? 점점 부족해지겠죠. 그러면 이렇게 모여 있다가 이제 좋은 이제 지금 모여 있는 이 장소보다는 조금 더 앞으로 가면 더 신선한 풀들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럼 뒤쪽에 있는 애들이 그 신선한 풀을 먹기 위해서 뛰어갑니다. 그러면 앞쪽에 뛰어가서 막 먹으면 또 뒤쪽에 있는 애들이 또 나도 좋은 걸 먹을 거야 하면서 앞으로 뛰어가겠죠. 그러다 보면 서로 이제 막 뛰는 게 경쟁이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 왜 뛰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막 뛰어가다가 절벽을 만났을 때 순식간에 얘네들이 다 떨어져가지고 그렇게 집단 으로 떼죽음을 당하는 경우들이 생긴다고 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우리가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그런 것들을 점검하지도 못한 채 그저 내 옆에 누군가가 뛰어가니까 나도 뛰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삶의 속도 경쟁 그것들을 우선순위로 앞서가려고 하는 마음속에 내가 지금 어디로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뛰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 해를 마치는 이 송년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 먼저 우리의 모습을 뒤돌아보길 원합니다.
지금 나는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을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시고 나를 향한 목적이 있으신데 뜻이 있는데 우리 공동체를 향한 뜻이 있는데 그것을 지금 향하여 가고 있는가 우리의 모습들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여러분 사단은 우리 안에 여러 가지 부족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은 이 시간이라는 것도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악의 도구로요. 시간을 여러분 크로노스 카이로스로 보통 성경에서 표현한다고 하는 것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크로노스 우리가 시간으로 시계로 이렇게 몇 시 몇 분 이렇게 체크할 수 있는 2024년 12월 29일 그렇게 시계로 측정할 수 있는 흘러가는 시간을 크로노스라고 한다면 카이로스는 어떤 사건이나 목적이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서의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이 세월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가 이 두 개의 단어 중에 이 카이로스의 복수형인 카이론을 이 글자를 사용했습니다. 한마디로 여기서 세월을 아끼라라고 하는 말이 여러분들 시간 시간만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이런 시간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의 시간을 이야기한다는 것보다는 어떤 사건을 통해서 목적이 이루어지는 과정, 지금 내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나를 향한 목적을 얼마나 이루어 갔는가라고 하는 걸 점검하는 그러한 차원에서의 말씀이라고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단지 흘러가는 크로노스 시간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이루어지는 카이로스에 초점을 두고 오늘 말씀을 좀 여러분들이 깊이 묵상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세월을 아끼라라고 하는 말씀 뒤에는 때가 악하다라고 하는 말씀이 이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서 때라는 말도 이 세월이라는 말 시간이라는 말과 동일한 말이잖아요.
그런데 이 세월이라는 말에는 카이로스라고 하는 단어가 사용됐다면 이 때라고 하는 말은 더 데이즈 날들이라고 하는 단어가 사용됐습니다. 이게 우리 말로 번역하면 세월이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원어를 충실하게 오늘 이 본문을 번역해 주자면 직역하자면 카이로스들을 다시 찾으십시오. 세월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카이로스를 다시 찾으십시오. 제가 카이로스가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세월이 약하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사단이 이 시간을 자기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기를 원하는데요. 칼뱅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라고 하는 이 말씀을 시간을 사탄으로부터 다시 되찾아오는 것이다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여러분 사탄이 어떻게 시간을 악용해서 악마의 도구로 사용할까요? 우리 안에 제한된 시간이라는 것을 통해서 두려움을 우리에게 준다는 겁니다.
여러분 갑자기 여러분들에게 당신은 질병으로 인해서 얼마밖에 살지 않을 겁니다. 살지 못합니다고 하는 진단을 내렸다면 어떨까요? 올 한 해 우리 그 상황을 경험했던 우리 박백광 성도님이 계신데 어떠셨어요?
네 황당하고 어디에 뭔가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나를 찾아왔어요? 그렇죠 뭔가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그런 마음들이 찾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이 살아온 세월이 짧습니까? 저는 요즘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육체적으로 연약한 시기를 보내왔는데요. 요즘을 보내면서 이 건강 오늘 제가 찬양을 하는데 이 찬양도 지금 요 근래 처음 나온 이 정도의 목소리예요. 근데 이 찬양도 예전엔 당연하게 여겼던 거를 오늘은 찬양을 하면서 감사가 이렇게 올라오더라고요.
여러분 시간이라고 하는 개념 여러분들이 지금 살아온 시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런데 만약에 여러분들에게 1년밖에 살지 못한다. 아니 2년밖에 아니 6개월 아니 1개월이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왜 두려울까요?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간다고 하는 우리가 왜 시한부 인생이라고 하는 그 말을 들으면 두려울까요?
제한된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요.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집어넣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에 매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요. 연말이 되면 늘 내가 뭘 해왔지 허탄해하고요. 그리고 내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늘 고민만 합니다.
그런데 카이로스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신앙의 시간은 얼마의 시간이 주어졌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가 지금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카이누스의 삶을 산 사람은요. 내일 내 인생이 마감된다고 해도 감사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 지금까지 나 같은 것을 사용하신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하루밖에 안 남았다니?
여러분 예수님은 이 땅에서 33살 33년의 삶을 사셨습니다. 근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뭘까요? 네 감사합니다. 정막을 깨는 우리 권사님의 목소리 아주 감사합니다. 다 이루었다. 우리 한번 해볼까요? 다 이루었다.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인생을 마감할 때 다 이루었다라고 하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죠. 그런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네 근데 이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라고 하는 말은 여한이 없다도 이 안에 포함돼 있어요. 33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고 있는 그 상황 속에서 다 이루었다.
무슨 말일까요? 하나님이 자기를 향한 목적, 하나님이 자기를 이 땅에 보낸 그 뜻 그것을 다 이루었다.
여러분 33살을 산 예수님도 이 땅에서의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라는 말을 했는데요. 우리가 그 이상을 지금 살아가고 있는 우리 동력자들이 많이 계시잖아요. 물론 그보다 어린 우리 친구들도 있지만 우리가 제한된 시간 속에서 나는 이걸 이뤄냈어. 이걸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근데 우리는 늘 이 세상이 말하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뭔가를 이루었다. 다른 사람보다 이만큼을 이루었다. 여기에 너무 우리는 집중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창립 7주년을 맞이하면서 제가 여기에 좀 함몰되어 있었습니다. 7년이 지났는데 뭘 했지 이 과정 속에서 뭔가 어떤 열매가 있지 이런 마음들이 막 몰려오고 또 동력자들 가운데도 그런 부분에 대한 어필을 많이 하시는 상황들 속에서 제 자신이 많이 막 이렇게 부족함을 느끼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 여러분 이 말씀 속에서 다시 한 번 새 힘을 얻습니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향한 우리를 향한 목적을 얼마큼 이루어 가고 있는가 그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그 목적과 뜻을 붙들어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언제 부르셔도 여한이 없는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에 핑계 댈 게 없어요. 건강해요. 내 어떤 삶의 연약함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은 이룰 수 있습니다. 크로노스의 삶에서는 불가능해요. 돈이 없으면 안 되고요. 건강이 없으면 안 되고요.
그런데 카이로스에게 그런 시간 안에서는 단 하루가 주어져도 내가 하나님 중심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처럼 여한 없는 우리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제한된 시간이 우리를 분주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조급하게 만들어요.
특히 학생들 막 이제 고3이라고 하는 제한된 시간 속에 여러분들을 막 몰아갈 겁니다. 세상이 사람들은 이야기할 거예요. 고3 때 너희들의 인생의 평가가 대학이라고. 근데 그렇지 않아요. 그건 크로노스적인 시각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은 이 땅에서 마감하고 난 이후에 평가받게 되는 게 그게 진짜예요. 절대 속지 마십시오.
아이들만 그럴까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 크로노스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서 우리가 하나님이 나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 목적,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함께 모여 공동체를 이룬 목적과 뜻, 그것들을 더욱더 깊이 발견하고 한 걸음 한 걸음 그 목적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단은 또한 영원하지 않다고 하는 그 자체로 우리를 압박합니다. 시간이 영혼을 향하지 않을 때 이 사단은 이 시간을 악의 도구로 사용해요. 너 이 땅에서 살 날이 얼마나 될 것 같아? 건강이 있을 때 더 여행 다니고 건강했을 때 너 하고 싶은 거 더 해. 너 마음대로 해. 내 뜻대로 살아. 세상은 우리에게 계속 이런 것들을 주입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 않나요? 이 땅에서 삶이 얼마나 되지 않으니까 80년 요즘 100세 시대라고 해도 100세까지밖에 우리는 못 사니까 나중에 다리에 힘 없고 어디 갈 수 없는 때가 되면 못 가니까 할 수 있는 거 니 마음대로 해 니 뜻대로 해. 세상은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근데 여러분 진정으로 세월을 아끼는 방법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통해서 영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제한된 시간에 머물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원래 우리는 아담과 하와를 처음 만들 때는 영원히 사는 존재로 만들었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인간의 생명은 제한이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죽게 될 거예요. 그런데 전도서 3장 11절에 있는 말씀처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는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모든 것을 지으실 때 때를 정하신 이유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요. 이게 진짜가 아닙니다. 이거는 나중에 이루어질 영원한 삶의 그림자 같은 거예요. 이게 성경적인 우리에게 가르침 아닙니까? 이 땅에서 80년 100년의 삶이 우리의 진짜의 삶이 아니라고요.
우리의 진짜 삶은 죽은 이후에 영원한 삶입니다. 여러분 영원한 것과 이 유한한 것은 비교하면요. 이 유한한 것은 영원한 곳에 점도 되지 않아요. 보통 이 세상의 가치관은 이 세상의 삶이 진짜 삶이고 죽은 이후의 삶은 없다 또는 죽은 이후의 삶은 그냥 그렇다. 이게 세상적인 가치관입니다. 영원한 삶은 그냥 사후의 삶이다.
그런데 성경적인 가치관은 진짜 영원한 삶은 이 영원한 삶이 우리의 진정한 삶이고 제한된 삶이 이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삶이다라고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이 성경적인 이 시간관을 가지고 우리가 이 땅에서 삶을 살아간다면 지금 우리가 제한된 이 시간을 무엇을 목적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당연히 이 뒤에 진짜 우리의 삶 진정한 삶 영원한 삶을 준비해야죠.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 삶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기를 원합니다.
학생들 열심히 공부해가지고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성적으로 좋은 직장 얻기를 축복합니다. 근데 여러분 그게 여러분들의 진짜 삶의 목적이 되지 않기를 바래요. 왜냐하면 그건 아무리 길어봐야 좋은 직장 들어가도 30년 40년이면 끝납니다. 퇴직해야 돼요. 요즘 우리 동력자들 가운데도 지금 퇴직을 앞두고 있는 동력자들이 몇 분 계신데 이제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됩니다.
그런데 제2의 인생을 준비해도 그 제22의 인생도 10년 20년 30년이면 끝날 거예요. 그렇죠 제한된 이 시간 속에서 내 삶의 목적을 이 세상의 가치관을 둔다면 결과적으로 나는 늘 실패하고 연약한 인생밖에 되지 않을 거예요. 남하고 비교할 수밖에 없잖아요. 나는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이 정도밖에 오르지 못해 세상적인 가치관으로는 비교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제한된 시간 속에 삶을 살기 때문에 이 제한된 삶에서 우리의 목적은 영원한 삶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삶으로 이 땅에서의 세월을 아낄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 2024년을 마감하는 이때 올해 뭔가를 이루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고 그래서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여러분들 마음속에 있습니까?
시간을 낭비한 것 같고 조급해지는 마음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부족하다고 여겨져서 더 내 뜻을 붙들려고 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고 카이로스적인 세계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살아가는 것은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면서 이 땅에서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누려야 합니다. 이 땅에서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데 이 땅에서는 전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려고도 그리고 느껴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죽은 이후에 하나님의 나라만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말씀처럼 그러므로 지각 없는 사람처럼 되지 말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십시오. 분별해야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영혼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지각 없는 사람처럼 마치 아무런 목적 없이 내가 왜 달린지도 모르는 스프링북처럼 앞만 뛰다가 그렇게 멸망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 이 유안된 시간 속에 사람들이 말하는 어떠한 뭔가의 성취를 이루기 위한 인생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 속에서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분별하고 충실히 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요. 우리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했는지에 따라서 우리를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야 너는 이 땅에서 대통령까지 하다 왔구나. 대단하다. 야 너는 저 말단에서 정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아왔니 왜 그렇게 살았어?
절대 이렇게 평가하지 않으실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우리가 주님의 뜻을 분별하고 주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향해서 충실히 순종했는지를 바라보실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시간의 의미는 일을 잘하는 것, 일을 많이 하는 것, 어떤 성취를 많이 남기는 것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고 주 뜻대로 살아가고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의미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세월을 아끼라라고 하는 참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여러분 크로노스도 카이로스도 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이 크로노스적인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카이로스적인 시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되새길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카이로스의 삶을 우리가 살아갈 때 우리도 인생을 마감할 때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처럼 주님 저 같은 사람을 통해서 이런 일들을 하게 하셨어 감사합니다. 주님 이제 주님 품으로 갑니다. 저의 영혼을 맡겨드립니다고 우리가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기 위해서 오늘 말씀에서 성령 충만하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술 취하지 마십시오. 잘못하면 방탕해 빠지기 쉽습니다.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여러분 이 술 취하지 말라는 말은 단순히 알코올 그 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주님의 뜻을 떠나게 하는 것들을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 술 취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오는 건 분별력이 흐려지는 겁니다. 이것처럼 여러분들이 주어진 삶에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살아가야 할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게 바로 여기서 말하는 술입니다.
어떤 때는 당장 내 앞에 놓여져 있는 그 문제에 함몰되어서 그 문제 급한 일, 그 일에 쫓겨가는 그 삶이 어쩌면 술이 될 수도 있고요.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냥 내 자녀가 내 삶의 중심이 되어서 거기에만 빠져 있다면 그게 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건강에 문제에 함몰되어 있으면 그게 술이 될 수도 있고요. 내게 주신 사명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방황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술 취한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성령의 충만하면 매 순간 주님의 뜻을 분별하게 되고 그리고 카이로스의 삶으로 영원한 삶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게 된다는 거예요.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어떤 압박감도 허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우리 찬양팀은 자리해 주시고요. 한 해를 우리는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근데 시간만 카운트 다운하고 있어요. 크로스의 시간을 새면서 아 나는 또 몇 살이 되었네. 우리 교회가 몇 년이 되었네 또 내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네 시간만 크로스적인 시간만 계산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해 여러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무엇이었고, 내가 지금 그 목적에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리고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도 이제 오늘 사무총회를 하지만 주님께서 이곳에 세우시고 난 이후에 우리가 과정 속에서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그리고 수정할 부분들이 있으면 수정하고 하나님 안에서 우리에게 뜻하신 바를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그리고 뒤돌아보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 주어진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진정한 카이로스적인 시간을 우리가 기억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는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그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 뜻을 향해서 온전히 하나님의 기쁨 되는 우리 모두가 될 줄 믿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 주님만을 바라보며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