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연구자이고 싶은가
사회학 연구자는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 연구를 진행할까? 석사논문은 사학에서는 일반적이지 않은 구술사 방법을 사용했다. 그 논문의 말미에 “역사가(연구자)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통해 역사를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 나름의 한계를 인식하고, 인정한다. 기억되지 못한 대항 기억으로, 대중기억으로 인식되지 못한 기억을 통해 여러 가지 요인으로 말하지 못하다가 이제야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 하는 구술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쓰려고 한다. 자신은 자신의 언어로 표현되듯이 자신의 기억을 자신들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구술이야말로 한국전쟁은 물론이고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새롭게 기록하는 역할을 할 것이고 더 나아가 살아있는 사람들의 역사를 기억하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라고 적으며 연구방법으로 구술사를 사용하면서 기억하고 기록하는 역사에 집중하였다.
계속 관심을 갖고 진행하려던 구술사는 전공이 바뀌며 질적연구방법에서 하나의 방법론으로 바뀌게 된다. 여기서 질적연구방법은 사회학과에서 사용하는 연구자가 연구참여자의 행동과 일상에 함께 참여하고 관찰하면서 연구자의 주관적 시각으로 공감하며 연구하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나와 연구참여자는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 그것은 (비)언어를 통해서이다.
한국전쟁 때 동네에서 함께 지냈던 (좌익인 아버지의 딸) 소녀의 죽음을 이야기 하며 “나이가 15살 정도 되는 소녀가 그 뚝에 올라가서 튀는 걸 봤어. 그 소녀를 그걸 50m 밖에서 총을 쏴서 죽였어요. 근데 그걸 아무도 치우지 않았어. 파리가 바글바글하는데 장마가 되니깐 떠내려갔어.” (연구자 채록)
부역자처벌로 아버지가 경찰서에 끌려 갔다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3일동안 세 번 갔다 왔지. 세 번째 갔다가 밥을 못 드리고 온 거지. 세 번째 “밥 받을 사람이 없다”라고 거기서 그랬다고 하니 형이 울어. 나는 ‘왜 우나’ 그러는데 그게 이제 돌아가셨다는 거지.” (연구자 채록)
여기서 나는 공감과 연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더 단단한 질적 연구를 위한 안내서』에서 “연민은 타인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동정이나 슬픔의 감정인데, 반해, 공감은...타인이 겪는 곤란을 그가 이해하는 방식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다.(62)”라는 글을 읽으면서 연구자인 나 자신이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에서 멈추면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위에서 본 소녀의 죽음을 본 어르신은 “사람이 죽어 있는 그런 거 목격도 많이 했어. 그래서 인지 웬만해서는 사람 죽이는 거 보면 겁이 안나. 사람 죽인 것도 돼지 잡은 거나 똑같아.” 이렇게 말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바라보고, 아버지의 죽음을 도시락 받을 사람이 없음으로 기억하는 어르신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빨갱이의 자식’이라는 손가락질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살았다. 나는 우선은 구술을 들으면서 동감이 되어서 마음이 아프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는다. 상상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연구대상이 보이고 거리를 두게 된다. 성공적인 연구자는 “연구대상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며 왜 그렇게 바라보는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빨갱이의 탄생』을 쓴 김득중의 말처럼 “내가 이 책에서 되고 싶었던 것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는 무당이었다. 죽은 자를 대신하여 현세의 남아 있는 자에게 말하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줌으로써 원혼을 풀어주는(22)” ‘무당’이고 싶다. 여기서 무당은 ‘영매’라고 생각되는데 『베트남전쟁의 유령들』을 쓴 권헌익교수는 ‘영매’에 대해 “송환과 재화합의 과정에 활동적으로 참여하고 그것이 초래하는 긴장과 트라우마를 완화하는 역할을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장려한다(122)”고 한다. 나는 타인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고통을 개념어로 이해하기보다는 일상언어 속에서 말해지는 연구자로 그런 연구를 하는 영매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