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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5장 12-21절. 야고보의 결론
초대교회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논쟁은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지는 것이냐, 아니면 예수님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 완성되는 것이냐 하는 논쟁이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이 문제가 이송이 되었을 때 전적으로 예수님만 믿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믿지만 할례와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율법주의자간에 심각한 변론을 폈습니다.
이런 논쟁을 거친 후 사도 베드로가 일어나서 참된 신앙이란 율법의 행위를 첨가함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다음에 바울과 바나바가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통해서 이루신 복음 전도와 기적들을 간증합니다.
그리고 총회의 회장격인 야고보 장로가 결론적인 판결을 내립니다.
그것은 예수님 믿은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나 율법을 지키도록 명령하지 말고, 단지 기독교인으로서 품격에 맞는 네 가지 윤리 생활을 하도록 결정했습니다.
12절.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ll the people kept silent, and they were listening to Barnabas and Paul as they were relating what signs and wonders God had done through them among the Gentiles.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Ἐσίγησεν δὲ πᾶν τὸ πλῆθος,
kept silent now all the multitude
‘가만히 있어’(Ἐσίγησεν)는 부정과거로서(kept silent) 아주 조용해진 과거의 사실을 가리키고, ‘가만히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이---관하여 말하는 것을 듣더니
καὶ ἤκουον Βαρνάβα καὶ Παύλου ἐξηγουμένων
and they were listening to Barnabas and Paul relating
‘말하는’(ἐξηγουμένων)은 현재분사로서(relating) ‘말하고 있는’이란 뜻이고, 원형(ἐξηγέομαι)은 ‘으로부터’( ἐκ)와 ‘인도하다’(ἡγέομαι)의 합성어로서 ‘길을 인도하다, 펼치다, 이야기하다, 말하다, 선언하다’(show the way, unfold, narrate, relate, declare)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듣더니’(ἤκουον)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listening) 계속 듣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ὅσα ἐποίησεν ὁ Θεὸς σημεῖα καὶ τέρατα ἐν τοῖς ἔθνεσιν δι’ αὐτῶν.
what did the God signs and wonders among the gentiles by them
직역하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들 중에서 표적들과 기사들을 행하신 것’이란 뜻입니다.
‘행하신’(ἐποίησεν)은 부정과거로서(did) 과거에 확실히 행하신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1. 베드로의 말을 듣고 바리새파 교인들이 잠잠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유대인 중심의 사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인 바나바와 바울의 말을 반박하던 바리새파 교인들이 베드로의 말을 듣고 잠잠했습니다.
즉 베드로가 사도행전 10장에서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전도하러 갔을 때, 하나님이 깨끗케 하신 것을 더럽다고 하지 말라고 하셨고, 성령님이 이방인 고넬료 집에 가라고 하셨고, 말씀 전할 때 성령께서 임하셨다는 말을 듣고, 이방인도 유대인처럼 예수 믿으면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1장에서 예루살렘 교인들이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 집에 가서 먹고 마셨다고 치리(처벌)하려고 했을 때도 베드로가 설명을 하자 그러면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고 모두 인정했습니다.
13절.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fter they had stopped speaking, James answered, saying, "Brethren, listen to me.
말을 마치매
Μετὰ δὲ τὸ σιγῆσαι αὐτοὺς,
after now the to be silent they,
직역하면 ‘그들이 조용해진 후에’란 뜻입니다.
‘조용해진’(σιγῆσ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be silent) 완전히 조용해진 것을 가리킵니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ἀπεκρίθη Ἰάκωβος, λέγων
were answered James, saying
직역하면 ‘--라고 말하면서 야고보가 대답했다’는 뜻입니다.
‘대답하여’(ἀπεκρί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re answered) 야고보가 앞선 사람들의 말에 확실하게 대답한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르되’(λέγων)는 현재분사로서(saying) 계속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Ἄνδρες ἀδελφοί, ἀκούσατέ μου.
men brothers, hear me
‘들으라’(들으라)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hear) 귀를 기울여 확실하게 들으라는 뜻입니다.
1. 야고보는 사도 야고보가 아니고( 사도 야고보는 사도행전 12장 1절에서 헤롯 아그립바 왕에게 죽었음),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이 야고보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사도행전 1장에 120명이 모여 기도할 때 같이 있었고, 성령 받고 후에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요 장로가 되었습니다.
특히 이 야고보는 불신 유대인들도 그 경건성을 인정해서 <의인 야고보>라고 불렀습니다.
이 야고보는 늘 성전에 가서 기도했는데, 어찌나 열심히 기도했는지, 기도하는 장소가 푹 패였고, 무릎은 낙타 무릎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도 <낙타 무릎>이란 말을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9절에 보면 야고보를 ‘교회에서 기둥과 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2. '형제들아 내말을 들으라'는 말은 개인의 사사로운 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많은 논쟁과 토론과 그리고 변증의 과정을 거쳐서 이제 야고보는 총회장으로서 총회의 결론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들아>라고 말한 것은 야고보가 총회장이지만, 주 안에서 한 형제이고, 계급이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지도자들은 이렇게 눈높이를 같이 해야 하고, 군림해서는 안 됩니다.
14절.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imeon has related how God first concerned Himself about taking from among the Gentiles a people for His name.
하나님이 처음으로--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Συμεὼν ἐξηγήσατο καθὼς πρῶτον ὁ Θεὸς ἐπεσκέψατο
Simeon related as first the God visited
직역하면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돌보신 것에 대해서 시므온이 말했다’는 뜻입니다.
‘돌보신’(ἐπεσκέψατο)은 부정과거로서(visited) 과거에 확실히 돌보시고 방문하신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키고, 원형(ἐπισκέπτομαι)은 ‘돌아보다, 방문하다, 시찰하다, 보러 가다’(look upon, visit, inspect, go to see)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하였으니’(ἐξηγήσατο)는 부정과거로서(related) 과거에 확실히 말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λαβεῖν ἐξ ἐθνῶν λαὸν τῷ ὀνόματι αὐτοῦ.
to take out of gentiles people for the name of Him
‘취하시려고’(λαβεῖν)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take) 확실히 취하시려는 것을 가리킵니다.
15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ith this the words of the Prophets agree, just as it is written,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καὶ τούτῳ συμφωνοῦσιν οἱ λόγοι τῶν προφητῶν,
and with this agree the words of the Prophets
‘일치하도다’(συμφωνοῦσιν)는 현재형으로서(agree) 지금 일치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원형(συμφωνέω)은 ‘함께’(συμφωνέω)라는 접두어와 ‘소리’(φωνή)라는 단어의 합성어로서 ‘일치하다, 조화되다’(agree with, harmonize with)는 뜻입니다.
기록된 바
καθὼς γέγραπται
as it has been written
직역하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기록되어 있다’(γέγραπται)는 완료 수동태로서(it has been written) 이미 기록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1. ‘시므온’이란 시몬 베드로를 가리킵니다.
야고보는 철저한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베드로를 유대 명칭인 시므온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에게 존경받는 야고보가 이방인 성도들에게 할례받거나 율법 지키도록 하지 말자고 말할 때, 모든 율법주의 유대인 신자들도 받아들였습니다.
2. 야고보는 여기서 두 가지 내용을 말합니다.
(1)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부르는 사건.
사도행전 10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부르신 사건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보자기에다가 부정한 음식을 주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못 먹겠다고 했습니다.
이 부정한 음식들은 전통적인 문화로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세 번이나 그랬습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내가 깨끗하게 한 것을 네가 더럽다고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 받은 일은 사람이 만든 사건이나 인간이 조작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약의 예언과 약속대로 성취한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2)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려는 이 계획은 예고 없이 무작정으로 하신 일이 아니라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에 아모스를 통해서 예언한 말씀(암 9:11-12)이 바울의 이방인 전도 사건(행 13-14장)이나 베드로가 경험한 사건(행 10장)과 놀랍게도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16절.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King James Bible: After this I will return, and will build again the tabernacle of David, which is fallen down; and I will build again the ruins thereof, and I will set it up: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Μετὰ ταῦτα ἀναστρέψω
After this I will return,
‘내가 돌아와서’(ἀναστρέψω)는 미래형으로서(I will return) 장차 돌아올 것을 가리킵니다.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καὶ ἀνοικοδομήσω τὴν σκηνὴν Δαυεὶδ, τὴν πεπτωκυῖαν,
and I will build again the tabernacle of David, which having fallen
직역하면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내가 다시 지으리라’는 뜻입니다.
‘다시 지으며’(ἀνοικοδομήσω)는 미래형으로서(I will build again) ‘내가 다시 지을 것이다’는 뜻이고, 원형(ἀνοικοδομέω)은 ‘다시’(ἀνά)란 접두어와 ‘집을 짓다’(οἰκοδομέω)는 동사의 합성어입니다.
‘무너진’(πεπτωκυῖαν)은 완료분사로서(having fallen) 이미 무너진 것을 가리킵니다.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καὶ τὰ κατεστραμμένα αὐτῆς ἀνοικοδομήσω, καὶ ἀνορθώσω αὐτήν,
and the ruins of it I will rebuild, and I will set upright it
직역하면 ‘그것의 허물어진 것을 내가 다시 지을 것이며, 그것을 내가 다시 세울 것이다’는 뜻입니다.
‘다시 지어’(ἀνοικοδομήσω)는 미래형으로서(I will rebuild) ‘내가 다시 지을 것이다’는 뜻이고, 원형(ἀνοικοδομέω)은 ‘다시’(ἀνά)란 접두어와 ‘집을 짓다’(οἰκοδομέω)는 동사의 합성어입니다.
‘다시 일으키리니’(ἀνορθώσω)도 미래형으로서(I will set upright) ‘내가 다시 일으킬 것이다’는 뜻이고, 원형(ἀνορθόω)은 ‘다시’(ἀνά)란 접두어와 ‘세우다’(ὀρθόω)의 합성어입니다.
17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King James Bible: That the residue of men might seek after the Lord, and all the Gentiles, upon whom my name is called, saith the Lord, who doeth all these things.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ὅπως ἂν ἐκζητήσωσιν οἱ κατάλοιποι τῶν ἀνθρώπων τὸν Κύριον,
so that may seek out the remnant of the men the Lord,
직역하면 ‘이는 그 사람들의 남은 자들이 주를 찾게 하려는 것이다’는 뜻입니다.
‘찾게 하려는’(ἐκζητήσωσιν)은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may seek out) 확실히 찾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καὶ πάντα τὰ ἔθνη, ἐφ’ οὓς ἐπικέκληται τὸ ὄνομά μου ἐπ’ αὐτούς,
and all the gentiles, upon whom has been called the name of Me upon them
직역하면 ‘내 이름이 불리어지게 된 모든 이방인들로’란 뜻입니다.
‘일컬음을 받는’(ἐπικέκληται)은 완료수동태로서(has been called) 이미 계속 일컬음을 받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들을 행하시는 주님이 말씀하신다)
λέγει Κύριος, ποιῶν ταῦτα
says Lord, doing these things
직역하면 ‘이것들을 행하시는 주님이 말씀하신다’는 뜻입니다.
‘행하시는’(ποιῶν)은 현재분사로서(doing) 언제나 행하고 계시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말씀하신다’(λέγει)는 현재형으로서(says) 현재 주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한글 새번역에는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니‘라고 번역했습니다.
18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King James Bible: Known unto God are all his works from the beginning of the world.
(그의 모든 행사들이 영원부터 하나님께 알려져 있다)
γνωστὰ ἀπ’ αἰῶνός, ἐστι τῷ Θεῷ πάντα τὰ ἔργα αὐτοῦ.
known from eternity, are to the God all the works of him
직역하면 ‘그의 모든 행사들이 영원부터 하나님께 알려져 있다’는 뜻입니다.
동사(ἐστι)는 현재형입니다(are)
Nestle 1904년 판과 Westcott and Hort와 Tischendorf 판에는 ‘ἐστιν τῷ θεῷ πάντα τὰ ἔργα αὐτοῦ’가 없고, Byzantine 판과 Greek Orthodox 판과 Stephanes 판에는 ‘ἐστιν τῷ θεῷ πάντα τὰ ἔργα αὐτοῦ’가 들어 있습니다.
공동번역: 오래 전부터 이것을 알게 해주시는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새번역: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니, 주님은 옛부터 이 모든 일을 알게 해주시는 분이시다.‘
현대인 성경: 오래 전부터 이 일을 알게 한 나 하나님의 말이다
1. 아모스 선지자가 다윗의 장막을 하나님이 다시 일으켜 세우신다고 한 말은 바벨론에 포로됨으로 무너졌던 다윗 왕국을 다시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고 했습니까?
<이는 남은 유대인들과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 모든 이방인들이 주님을 찾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즉 이전에 다윗 왕국은 이방인들을 죽이고 점령함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블레셋을 쳐서 점령하고, 아람을 쳐서 점령하고, 아람 소바까지 쳐서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포로에서 회복된 다윗 왕국은 이방인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가 메시아 왕국을 이룰 때는 남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많은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약 성경에 이미 다윗의 왕국 즉 메시아 왕국에서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와 주님을 섬길 것을 예언해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주께로 돌아온 이방인을 더 이상 괴롭게 말고,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똑같이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아모스서 예언의 말씀이 베드로 사건과 바울 사건에서 이루어졌던 것처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도 신구약에 나타난 모든 예언은 곧 주님이 오실 때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19절.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it is my judgment that we do not trouble those who are turning to God from among the Gentiles,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괴롭게 하지 말고
διὸ ἐγὼ κρίνω, μὴ παρενοχλεῖν
therefore I I judge, not to trouble
직역하면 ’그러므로 나는 괴롭게 하지 말도록 재판한다‘는 뜻입니다.
’나는‘(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괴롭게 하지 말도록‘에서 동사(παρενοχλεῖ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trouble) 언제나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판한다’(κρίνω)는 현재형으로서(I judge) 현재 판결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τοῖς ἀπὸ τῶν ἐθνῶν, ἐπιστρέφουσιν ἐπὶ τὸν Θεόν,
those who from the gentiles, turning to the God
‘돌아오는’(ἐπιστρέφουσιν)은 현재분사로서(turning) 현재 계속 돌아오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19절의 결정은 무엇입니까?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받고 성령 받은 이방인들에게 유대인의 전통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할례와 음식법 규정(레 11장) 등 여러 율법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식으로 다시 표현하면 그것은 ‘네 조상이나 너도 능히 메지 못했던 그 멍에를 다시 이방인의 목에 매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 그러나 필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자에게는 구원받은 자의 생활 규범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20절입니다.
20절.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that we write to them that they abstain from things contaminated by idols and from fornication and from what is strangled and from blood.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ἀλλὰ ἐπιστεῖλαι αὐτοῖς τοῦ ἀπέχεσθαι τῶν ἀλισγημάτων τῶν εἰδώλων,
but to write to them to abstain from the pollutions of the idols,
직역하면 ‘그러나 우상들의 더러운 것들과 --을 삼갈 것을 그들에게 편지하라고’ (내가 판결한다)는 뜻입니다.
‘편지하라고’(ἐπιστεῖλ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write) 단호하게 편지하라는 뜻이고, 이 부정사형 동사는 앞절의 ‘ἐγὼ κρίνω: I I judge’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καὶ τῆς πορνείας, καὶ πνικτοῦ καὶ τοῦ αἵματος.
and from the sexual immorality, (which is) strangled, and from blood
1. 여기서 야고보는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 방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술 담배라는 말로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술 담배를 끊어야만 구원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술 담배 도박을 하더라도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이지 내가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선한 일을 하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구원과 술과 담배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술과 담배를 끊었기 때문에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술과 담배를 끊는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우상 숭배하고, 악한 생활을 하던 사람이 예수 믿고 나서는 그런 우상 숭배와 악한 생활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상 숭배하고 악한 생활이 변하여 하나님만 섬기고 선한 생활 하는 변화된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과연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마귀 섬길 때는 우상 숭배하고 점하는 생활 습관이 있었는데, 예수 믿은 후로는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보면서 사는 것입니다.
왕이 되었을 때는 왕다운 생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도적놈으로 살 때는 도적놈의 생활 방식이 있고, 사기꾼의 생활 방식이 있고, 깡패의 생활 방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보니 우상 숭배하고, 술 담배 하는 생활 습관을 더 이상 가질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천국 백성답게 살아가는 그런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①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② 그러나 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되면 구원받은 자의 생활이 있는 것입니다.
2. 유대인들은 유대인의 문화가 있고 이방인은 이방인의 문화가 있는데 유대인과 이방인이 공동으로 지켜야할 그리스챤의 문화는 무엇일까요?
그리스챤의 삶을 야고보는 네 가지로 말을 합니다.
(1) 우상 숭배에 사용되었던 제물이나 음식이나 그런 물건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 없이 우상을 섬기고 살던 그 문화를 이제는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제사 지내는 것이 일반 불신 사회의 당연한 문화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문중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않고, 상종을 하지 않습니다.
일반 제사 때는 한 번도 안 오던 사람이 시제 때는 꼭 오곤 합니다.
이런 불신자들의 제사 문화와 기독교의 문화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2) 음행에서 빠져나오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우상 숭배에 필수적으로 붙어있는 것이 음행입니다.
즉 과거에 우상 신전에서 제사할 때는 신전 창녀들이 있어서, 반드시 음행을 했기 때문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우상숭배 때 다산을 위한 공적인 음행이 있었고, 민수기 25장의 모압 사람들이나 미디안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 숭배도 음행이 있었으며, 고린도 사람들이 숭배한 아프로디테 우상 제사 때도 공적인 음행 행사가 있었습니다.
제사의 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음행이라는 것은 마귀가 쓰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음행을 하게 되면 결국 우상 숭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남자가 이방 종교를 믿는 여자들을 데려오게 되면 그 이방 종교를 따라가고 말았습니다.
아합이 바알 숭배하는 이세벨을 데려오니까, 북쪽 이스라엘은 모두 바알 우상 숭배에 빠졌습니다.
남쪽 유다도 여호사밧 왕이 바알 숭배자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데려오니까 온 나라가 바알 숭배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우상 숭배의 문화를 피해라, 음행을 피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불신 사회에서는 퇴근 후에 회식하고 2차 가고 결국 카바레에 가서 춤추고 음행하는 풍속이 널리 유행하는 관습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문화와 불신 세계의 문화가 공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3) 목매어 죽은 것과 피를 먹는 것인데 이것은 다 구약에서 금한 것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짐승을 잡을 때 피를 흘려서 잡아야 하는데, 피를 흘리지 않고 잡은 것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피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체의 생명이므로, 피를 음식으로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메어 죽인 것과 피 음식을 먹는 것도 우상 숭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상 숭배하면서 양이나 소나 염소나 돼지를 막 잡아서 먹고 불 피우고 춤추며 뛰노는데, 언제 배를 따서 피를 빼고 삶아 먹을 수 없으니까, 그냥 목매달아서 짐승을 잡고 피채 구워 먹은 것을 가리킵니다.
우상 숭배하지 않을 때는 짐승의 배를 따서 피를 빼고 고기를 삶아 먹는데, 축제 때 우상 숭배 할 때는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까 짐승을 목매 달아서 잡고 피채 구워 먹었습니다.
요즘에는 목매지도 않고 고무 밴드로 코를 묶어서 숨을 못 쉬게 하고 잡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피 음식인 선지국은 신앙적으로 거리낌이 있어서 안 먹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피 음식 먹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음식을 깨끗하다고 하셨으니(막7:19, 행 10:15, 딛 1:15) 피 음식도 깨끗한 음식이라고 먹습니다.
그러나 어떤 목사님들은 피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고, 또 피속에는 나쁜 균들이 있으므로 건강상 좋지 않다고 합니다.
실제로 개나 닭 같은 짐승들도 피 음식을 안 먹습니다.
그러나 피 음식을 먹어라, 먹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양심상 자유에 맡겨야 할 문제입니다(고전 10:25-29).
우리나라에서는 우상 숭배 때 축제(카니발)을 하면서 모닥불을 피우고 술 먹고 고기 구워 먹고 춤을 추고 음행하면서, 짐승을 목매달아 죽이고 피채 음식을 먹는 이런 행사를 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우상 제사하고 음행하는 문화는 만연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우상 숭배와 연관된 목매 죽인 것과 피 음식보다는 술과 담배 문제가 교회 문화와 불신자 문화 사이의 큰 문화적 차이점인 것 같습니다.
이제 예수 믿은 성도들은 과거의 우상 숭배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교회의 문화 속에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비록 이런 문화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지만, 이미 성령으로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런 교회 문화 속에서 살아감으로써 불신자와의 문화적 구별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1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Moses from ancient generations has in every city those who preach him, since he is read in the synagogues every Sabbath."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Μωϋσῆς γὰρ ἐκ γενεῶν ἀρχαίων, κατὰ πόλιν τοὺς κηρύσσοντας αὐτὸν
Moses for from generations of old, in every city the ones proclaiming him
직역하면 ‘왜냐하면 모세는 옛 시대부터 각 성에서 그를 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매 안식일에 회당들에서 읽혀지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전하는’(κηρύσσοντας)은 현재분사로서(proclaiming) 항상 전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ἔχει ἐν ταῖς συναγωγαῖς κατὰ πᾶν σάββατον ἀναγινωσκόμενος.
he has in the synagogues on every Sabbath being read
직역하면 ‘매 안식일에 회당들에서 읽혀지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읽혀지는 것’(ἀναγινωσκόμενος)은 현재분사 수동태로서(being read) 현재 읽혀지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원형( ἀναγινώσκω)은 ‘다시’( ἀνά)란 접두어와 ‘알다’(γινώσκω)란 동사의 합성어로서 ‘읽다, 다시 알다, 분명히 알다, 인식하다, 분별하다’(read, know again, know certainly, recognize, discern)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다’(ἔχει)는 현재형으로서(he has) 항상 모세의 글이 읽혀지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1. 유대인의 회당에서는 안식일마다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을 멀리해야 한다는 모세의 율법을 읽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대인들을 전도하려면, 우상 문화를 피해야 전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괜히 유대인들에게 시비거리를 주지 않고, 싸움의 빌미를 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2. 이처럼 거치는 자가 되지 않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고전 10:32).
로마서 14장 1절 이하에도 믿음이 강한 자는 고기를 먹지만 약한 자는 채소만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위해서 좀 양보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3절 이하에서도 모든 것이 가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므로, 이웃에게 덕을 세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기 장수가 시장에서 내다 파는 것은 먹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이웃이 가져온 음식이 제사 음식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담배 피우는 것이나 술 먹는 것도 복음 전도에 방해가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8장 13절에서 한 영혼을 위해서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도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영혼 구원은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믿고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도님을 보고, 이웃들이 구원받고, 하나님께 큰 복을 받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