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점등식에 앞서 부처님오신날에 연등을 밝히는 이유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내일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오늘은 전야제로 연등을 밝히는 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원인이 바깥 요인이나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어리석음과 욕망에 기인하고 있다는 걸 깨달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어리석음과 지나친 욕망을 자각하고 내려놓는다면 저 다람쥐나 토끼보다 훨씬 더 편안하게, 훨씬 더 자립적으로, 훨씬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자각을 통해 스스로 괴로움의 원인을 알아차리고 거기로부터 벗어남으로 해서 하루를 살아도 편안하고 행복하게,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보람 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다
이런 부처님의 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그때의 그 마음이 어땠는지 당시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고백한 내용이 있습니다.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주심과 같고, 덮인 것을 벗겨내어 보여주심과 같고, 길을 잃고 헤매는 자에게 길을 가르쳐주심과 같고, 어두운 밤에 등불을 비춰주심과 같다’
부처님의 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네 가지 비유로 고백을 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적절한 비유는 마지막에 있는 ‘어두운 밤에 등불을 비춰주심과 같다’ 하는 표현입니다. 우리의 어리석음을 어둠에 비유한다면 그 어리석음에서 깨어났을 때는 마치 불을 탁 밝혀 놓은 것과 같습니다. 어두워서 뭐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는 한 시간을 더듬어도 물건을 찾지 못하는데, 불을 밝히는 순간 바로 어디에 있는지 분명해집니다. 깜깜해서 뭐가 뭔지 모르고 여기가 어디인지도 몰라서 불안에 떨었는데, 불을 밝히는 순간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되면 불안함이 사라집니다.
무지의 상태에서 깨어났을 때의 기쁨, 괴로움에 허덕이다가 그 괴로움에서 벗어났을 때의 기쁨, 불안, 초조, 두려움에 떨다가 편안해졌을 때의 기쁨을 어두운 밤에 등불을 켠 것과 같은 기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지혜의 등불’, ‘어둠을 밝히는 광명의 등불’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연등불을 밝힐 때도 ‘광명의 등’, ‘지혜의 등’이라고 표현합니다.
자녀가 죽자 정신을 잃고 헤매다가 부처님을 만나서 집착을 내려놓게 되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다고 차별받고 살다가 본래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귀하고 천함이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여자라고 해서 천한 것도 아니고, 천민이라고 해서 천한 것도 아닙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걸 깨우쳤을 때 바로 세상이 바뀌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우리가 등불을 켜는 이유는 이 등불이 바로 ‘자각’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마음을 깨우쳐서 밝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어둠 속에 등불을 켜서 밝히는 것에 비유한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괴로워하다가 괴로움이 없어지고, 남에게 의지하다가 오히려 남을 돕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는 종살이를 하다가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고, 중생살이를 하다가 불보살로 전환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법의 가피입니다.
세상의 부정의를 바르게 세우다
이런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깨달음을 얻게 되면 사회적 불합리에 대한 생각도 달라집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사람이 태어나도 신분이 낮으면 천민이라는 신분의 굴레를 쓰고, 여자라는 성차별의 굴레를 쓰고 한평생 종살이를 했습니다. 천민은 높은 계급을 주인으로 섬기면서 평생 종살이를 했고, 여성으로 태어나면 남자를 주인으로 섬기면서 평생 종살이를 했습니다. 주인이 없으면 사람 대우를 받지 못하고 이리저리 팔려 다니거나 잡혀가기도 했습니다.
그런 삶을 살다가, 부처님 법을 만나 나의 주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나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임금이 내 주인이 아니고, 양반도 내 주인이 아니고, 브라만도 내 주인이 아니고, 아버지도 내 주인이 아니고, 남편도 내 주인이 아니고, 아들도 내 주인이 아니고, 바로 내가 내 주인임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 이 깨달음이 2,600년 전에 이미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그걸 깨달았을 때의 당당함이 어땠을까요? 그때의 감동이 어두운 밤에 등불을 밝히는 것에 비유가 될까요? 그나마 비유를 할 수 있는 것이 ‘어두운 밤의 등불’이기 때문에 이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등불을 밝힌다는 것은 사회적인 부조리, 불합리, 부정의를 개선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이런 불합리를 2,600년 전에 이미 지적하셨고, 비록 세상에서는 실현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 법 안에서는 성차별도 없고, 계급 차별도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불법(佛法)입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사회정의’라는 등불을 키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부처님오신날 전야제를 맞이하여 등불을 밝히는 점등식을 합니다. 밤에 어둠을 밝히는 등불은 ‘개개인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고, 세상의 부정의함을 바르게 세운다’ 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야제에서 등불을 밝히는 이유입니다.
부처님오신날, 등불을 밝히는 이유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법은 밝은 등불처럼 있는 그대로를 세세하게 비춥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눈 있는 자, 와서 보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스승의 손안에 어떤 숨겨진 비밀은 없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든,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 그건 개인의 자유입니다. 또, 어떤 이념과 사상을 가지고 있든, 그것도 개인의 자유입니다. 다만 내가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고 싶다면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이루려고 하는 욕망이 번뇌와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걸 자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성질대로 하려는 마음이 번뇌와 괴로움의 원인이고, 내 생각과 판단이 옳다고 고집하는 것이 번뇌와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이걸 알아서 나의 무지, 나의 어리석음, 나의 욕망을 깨우치고 내려놓을 때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의무감까지 가질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때, 내 삶과 존재에 보람을 가질 수 있습니다. 특히 정토행자가 되었다면 지금 세상에서 괴로워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행복으로 가는 희망의 등불이 되고, 혼란한 사회가 평화롭고 정의롭게 만드는 데에 희망의 등불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뜻으로 오늘 우리가 등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이 세상에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이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등불을 켜서 행복하고 편안하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아서 불을 켜보겠습니다.”
법문이 끝나고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오색 연등을 세 바퀴 돌았습니다. 여법한 행사 진행을 위해 점등식은 대웅전 실내에서 진행했습니다.
석가모니불 정근이 끝나자 다 함께 찬불가 ‘부처님께 바칩니다’를 불렀습니다.
이어서 집에서 온라인으로 점등식에 참여하고 있는 정토행자들이 각자 화면 속에서 연등을 밝혔습니다.
다음은 각 지부별 으뜸절에서 점등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전국에서 연등불이 차례대로 켜진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있는 문경 수련원 대웅전에서 불을 밝혔습니다.
“가난한 여인의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우리도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불을 밝히겠습니다.”
행자님 한 분이 등불을 들고 걸어 나와 대연등 앞에 멈춰 서서 등불을 켰습니다.
대연등에 불이 켜지자 다른 연등에도 동시에 함께 불이 켜졌습니다. 화면 속 대중들은 환호하고 기뻐했습니다.
연등이 환하게 밝아진 가운데 스님이 부처님의 수기를 낭독했습니다.
"이 작은 등불은 워낙 보잘것이 없어 있는 둥 마는 둥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자 등불들이 하나씩 꺼져갔다. 시간이 지나서 다른 등불이 다 꺼졌는데도 여인이 밝혀 놓은 그 등불만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등불이 다 꺼지기 전에는 부처님이 주무시지 않을 것이므로 부처님의 시자인 아난 존자는 불을 끄려 하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손으로 끄려 해도 꺼지지 않았고, 가사 자락으로 부채로 끄려 했으나 그래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본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어서 대중이 함께 낭독했습니다.
"아난다여, 부질없이 애쓰지 마라. 그것은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여인의 넓고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켜진 것이기에 비록 작은 등불이지만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그 여인은 그 등불을 켠 공덕으로 미래세에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수미등광여래'라고 할 것이니라."
출처 스님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