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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라'는 이스라엘 역사 상 유일한 여자 사사로 불린다.
바락 장군을 도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가 이끄는 군대를 전멸하는 장면이다.
연약한 여자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 시원한 승리를 이끄는 모습을 보도록한다.
[고린도전서 1:27-28]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사사기 4장
1.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 반복된 이스라엘의 죄악이 보이는가?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동안 평강하다가 그가 죽으면 또 악을 행하는 것은 사사 시대의 일반적 반복된 모습이다.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울며 기도하여 문제가 해결 되면 하나님을 또 잊어버리는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이러하다.
이 모든 시작의 이유가 우리들은 시선이 하나님에게 있지 않고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다면 사사가 죽은들 또 다른 자의 하나님의 통치로 이어질 것이나 다음을 이을 리더가 없음이 이시대 하나님 사람의 부족을 대변하는듯 하다.
2. 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으니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 이스라엘을 다시 다스리셔야 하는 여호와는 가나안의 하솔의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넘겨주었다. 하솔은 납달리 지파의 지경에 속하는 북부 가나안의 성읍 중 하나로 당시에 가장 강력한 중요 요새지였다.
야빈의 뜻은 '지식 있는 자' ' 총명한 자'란 뜻으며 가나안의 최고의 지도자이며 권세자였음을 암시한다. '하로셋 학고임'은 지명이다.
3.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 야빈 왕은 당시 철병거 900대를 소유한 막강한 군대였으며 야빈에 의한 이스라엘의 핍박은 20년이라는 시간을 숨막힐 정도로 압제와 학대를 당하며 고통의 시간을 살아야 했다. 블레셋 압제 40년 이후 가장 긴 기간의 압제였다.
야빈 왕에게 고통 당하던 이스라엘은 또 부르짖어 하나님을 찾는다.
하나님은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우리셔서 일반 주부 랍비돗의 아내인 드보라를 기름 부으시고 사용하신다. 드보라는 한 남자의 아내로 하나님을 충실히 섬긴 너무나 평범한 주부였을 뿐이였다. 그런 여자를 선지자로 세우셔 당신의 영광이 영광되게 하신다.
사마리아 남부 에브라임 산지에 위치한 라마와 벧엘에 있던 나무가 후에 그곳에 산 드보라의 이름이 붙어 드보라의 나무라 칭함을 받는것이다.
드보라는 당시 사사로 백성들을 재판하여 판단을 결정하는 일을 하기까지 한다.
사사란 하나님이 세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준에 준비된 자로 믿음을 갖고 있었음을 하나님이 아시고 하나님의 대언자로 정권이 위임 되어진 것이다.
6.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7.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
* 드보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아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명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장군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불러 작전을 말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도록 명한다. 사사인 드보라는 자기의 계획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작전은 이러하다.
야빈의 도성을 분깃으로 받은 납달리 지파의 바락을 불러 작전을 지시하며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명한다.
그리고 적진의 세력을 기손 강으로 내가 이끌리라. 그러면 그들의 병력의 배치가 드러난 것이며 그들은 그때 너의 손에 넘겨지리라. 이것은 드보라가 하나님의 승리의 약속을 전하는 것이며 이제는 발락은 담대한 믿음의 순종을 발휘 할 때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사인을 받고도 두려움에 주춤거리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안는가, 살펴 보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두려운 환경은 하나님의 의도와 말씀을 알아가는 기회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를 향한 환경의 말씀이 보여야하며 그 다음은 우리는 담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먼저는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깨어 있는 것이 중요하며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보이면 바로 담대히 뜻을 따르는 삶의 태도가 승리된 삶으로 사는 것이다.
※참고
다볼산은 골짜기에 위치한 고도 553m 되는 산으로 원추형의 고지 위에 평평한 광장이 있었다. 기손강은 다볼산의 좌편 쪽에 지중해로 들어가는 강으로 주위에는 이스라엘 평지가 있어 병거가 이동하기 편리한 곳이다.위치 상 이스라엘의 유리하도록 지형을 잘 사용한 전략이였다.
8.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니
9.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10.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만 명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 사사를 신뢰하는 바락을 보게된다.
이번의 전쟁은 철병거가 고지에 유리하지 않으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바락은 드보라의 명령을 받고 본인의 진영에 가서 명령한 군사를 모아 명령에 수행하는 모습이다. 드보라도 함께 올라간다.
아래 싸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1.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 모세의 장인은 '이드로'로 알고 있고 호밥은 모세의 처남이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겐 사람 헤벨은 처가쪽의 누군가로 이해되며 이 들은 처음 여리고에 머물다가 북쪽 납달리 지방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으로 이주한 것이다.
12.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사람들이 시스라에게 알리매
13.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 병거 구백 대와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을 하로셋학고임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 하나님의 전략 대로 이들은 움직여지는 것을 보게된다.
소문만으로 7절의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 가 이루어 진 것이다.
14.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하는지라 이에 바락이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15.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한지라
16. 바락이 그의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하로셋학고임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었더라
* 드디어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바락의 대치 상태에 드보라는 명령한다.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이것은 이미 드보라는 열린 영의 눈으로 바라보는 상황이다.
"하나님의 군대가 바락 너의 앞서 나아가지 아니하느냐" 하니 바락이 담대히 군대를 이끌고 병거 900대의 강력한 군대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이 싸움은 바락의 군대는 도구일 뿐 이미 하늘의 군대가 앞서 나아가 싸우는 것으로 우리가 살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여기서 바락의 군대가 싸운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 치열한 눈에 보이는 싸움은 하나님의 싸움이며 앞서 영적 싸움은 드보라와 바락의 순종의 영적 싸움에 이미 이긴 싸움이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싸워야하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알기 위해 힘써야하며 이것이 바로 영적 싸움이다. 그렇게 하나님 안에 들어가는 의지가 드려지면 성령님이 그 이후의 육의 상황을 다루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떠한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야 승리하는 하나님 안으로의 이해는 무지하고 관심도 없으며 결과를 내시는 하나님의 싸움으로 두어야 할 육의 상황에만 마음을 쓴 우리가 보이는가!
눈에 보이는 상황이 우리 뜻대로 되는가 말이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신앙이다. 주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수고만 이루어 낸다면 하나님이 다 바꾸실 싸움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그냥 휘두르는 칼날 앞에 스스로 "혼란에 빠지게 하나님이 하시매" 철병거와 시스라의 군대는 이유 없는 풍비박산 되어 모든 무기를 버리고 맨 발로 도망하는 상황이다. 눈에 보이는 병거의 강력함과 압제하에 아무것도 없는 한 여자가 지휘하는 싸움이였다. 외관상의 전력 비교의 예상을 뒤엎는 승리는 오직 하나님 만이 우리의 요새시며 방패이시라 를 느끼게 된다.
이 싸움은 그냥 도망하는 적군을 쫒아 적군의 본거지인 하로세까지 추격하여 완전 토벌하는 통쾌한 승리로 끝이난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정확히 따른 사사 드보라의 예언과 그것을 믿고 따른 바락의 작품이다.물론 하나님이 하신 것이나 인간의 입장은 순종의 작품이란 것이다.
지금은 성령의 시대이다. 그 어느 때 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사모하여야 할 때이다.
주신 성령의 말씀을 멸시하면 절대 안된다.
17. 시스라가 걸어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이는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의 집 사이에는 화평이 있음이라
18. 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가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그를 덮으니라
19. 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게 하라 내가 목이 마르다 하매 우유 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게 하고 그를 덮으니
20. 그가 또 이르되 장막 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하고
21. 그가 깊이 잠드니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가지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그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 천신만고 끝에 찾아 들어간 곳이 이스라엘의 모세 처족들이 평온히 사는 곳으로 들어가서 헤벨의 아내 야엘의 기치로 결국 피신처가 사형 집행 장소가 되어 버린다.
기가막힌 것은 육신의 깊은 잠이 연약한 여자의 말뚝을 맞이하도록 깊은 잠에 빠져잇었다는 것도 우리가 흘려 보내면 안된다.
더러 야엘의 행위가 극히 잔인하다 말하는 것은 인간적인 차원의 생각이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악에 대한 심판을 두려워 하는 시선을 갖는 것이 옳은 태도이다.
이 시스라가 살아 어딘가 자리를 잡게되면 악은 또 다른 악을 만들어 낼 것이다.
악은 완전히 진멸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 사건을 그때의 일로 치부하지 말고 하나님은 관연한 악에는 지금도 심판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이 영적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은 초자연적인 역사를 일으키며,역사하심을 보게되는 것도 알아야 한다.
22. 바락이 시스라를 추격할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그에게 이르되 오라 네가 찾는 그 사람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매 바락이 그에게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엎드러져 죽었고 말뚝이 그의 관자놀이에 박혔더라
23.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게 하신지라
24.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며 그 말씀에 순종한 한 여인을 도구로 사용하셨음을 보게 된다.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이 점점 힘이 쎄지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 만이 우리의 힘이며 우리의 자랑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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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드보라와 같은 강하고 담대한 순종의 딸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아멘~~
"눈에 보이는 두려운 환경은 하나님의 의도와 말씀을 알아가는 기회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를 향한 환경의 말씀이 보여야하며
그 다음은 우리는 담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아멘. 아멘.
사사인 드보라는 자기의 계획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작전은 이러하다.
사사를 신뢰한 바락처럼
목사님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전략을 신뢰하며 하늘의 군대가 앞서 나가 싸워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는 것임을 알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나아가겠습니다.
우리가 싸워야하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알기 위해 힘써야하며 이것이 바로 영적 싸움이다. 그렇게 하나님 안에 들어가는 의지가 드려지면 성령님이 그 이후의 육의 상황을 다루신다는 것이다.
아멘.
아멘!
우리가 싸워야하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알기 위해 힘써야하며 이것이 바로 영적 싸움이다. 그렇게 하나님 안에 들어가는 의지가 드려지면 성령님이 그 이후의 육의 상황을 다루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싸워야하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알기 위해 힘써야하며 이것이 바로 영적 싸움이다. 그렇게 하나님 안에 들어가는 의지가 드려지면 성령님이 그 이후의 육의 상황을 다루신다는 것이다.
주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수고만 이루어 낸다면 하나님이 다 바꾸실 싸움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관연한 악에는 지금도 심판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이 영적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은 초자연적인 역사를 일으키며,역사하심을 보게되는 것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도우심 만이 우리의 힘이며 우리의 자랑이 되어야겠다. 아멘!
주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수고만 이루어 낸다면 하나님이 다 바꾸실 싸움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다. 아멘~
눈에 보이는 상황이 우리 뜻대로 되는가 말이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신앙이다. 주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수고만 이루어 낸다면 하나님이 다 바꾸실 싸움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