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마니아에게 계절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날씨만 허락한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가리지 않고 페달을 밟는다. 자전거에 한 번 빠져들면 마치 마약처럼 끊기 어려운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여름 라이딩은 무엇보다 폭염을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이른 아침 출발해 오전 중에 라이딩을 마치는 것이 현명하다. 다행히 오늘은 기승을 부리던 폭염이 한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 운동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오늘의 목적지는 안산 갈대습지공원과 오이도다. 거리는 비교적 짦지만 선사시대유적과 병자호란의 역사 현장을 두루 만날 수 있어 운동과 역사 답사를 함께할 수 있는 알찬 여정이었다.
아스트라 전은 전날 밤 늦게 자전거 타이어의 펑크를 발견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수원시에서 운영하는 공공자전거를 빌려 라이딩에 합류하였다. 자전거가 없다고 라이딩을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야말로 진정한 라이더의 모습이 아닐까. 반월역에서 만난 쉐도우수는 아스트라 전의 자전거 상태를 고려해 무리하지 않도록 속도를 조절했다. 대열잔차 네 명은 건건천을 지나 반월천으로 접어들었다. 도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넓은 농경지와 들판이 초록빛 물결처럼 펼쳐졌다. 싱그러운 들판을 바라보며 달리니 무더위에 지친 마음마저 포근하게 감싸주는 듯했다.
천변 둑길은 노면이 다소 거칠고 수풀이 우거져 있어 본오들판길을 따라 이동했다. 이어 반월 들판길로 들어서자 어느새 안산갈대습지공원에 닿았다. 본오리 일대는 예부터 염전으로 이름난 곳이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에는 마을 동쪽 연안으로 배가 들어왔다 하여 배옷이라 불렀고, 포구는 이호포라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염전과 포구의 흔적은 사라지고 농경지가 들어섰으며, 지금은 그 자리에 드넓은 갈대습지가 조성되어 있다.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한 듯한 변화다. 안산 갈대습지공원은 시화호로 흘러드는 반월천, 동화천, 삼천천의 물을 정화하여 시화호로 흘려보내는 대규모 인공습지다.
갈대와 습지를 따라 탐방로가 마련되어 있고 야생화 꽃길도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생태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습지 한가운데에는 야생동물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만든 인공섬도 자리하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습지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고 싶었지만 출입구가 차단되어 있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대신 환경생태관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고 다음 목적지인 안산호수공원으로 향했다. 안산천 자전거길을 따라 달리자 안산호수공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옛 사리포구 일대에 조성된 안산호수공원은 호수와 갈대습지, 수변광장, 산책로 등이 어우러진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다.
호수를 둘러싼 고층 아파트와 수변의 갈대가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했다. 이제 시화호 호안 자전거길을 따라 오이도로 향한다. 달리는 길목에서는 역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안산 목내동 일대에는 조선 문종 때 왕비였던 현덕왕후 권씨의 능인 소릉과 관련된 역사적 흔적이 전해진다. 현덕왕후는 단종의 어머니로 단종과 함께 조선 왕실의 비극적인 역사 속에 놓였던 인물이다. 세조 대에 왕후의 지위가박탈되는 비운을 겪었으나 훗날 복원되었고, 1513년 문종의 현릉에 합장되었다. 페달을 밟으며 지나치는 풍경 속에도 이처럼 깊은 역사의 흔적이 숨어 있다는 것이 오늘 라이딩의 또 다른 묘미였다.
시화호 방조제를 지나자 드디어 오이도가 눈앞에 펼쳐졌다. 오이도의 상징은 단연 빨간 등대다. 이제 섬이 육지와 연결되어 예전의 섬 모습을 잃었지만, 빨간 등대는 여전히 바다를 지키며 오이도를 찾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오이도라는 지명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다. 섬의 모양이 까마귀의 귀와 비슷해 붙었다는 설과, 검푸른 숲의 섬 모양이 귀처럼 생겨 붙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오이도는 단순한 해변 관광지가 아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역사적 공간이다. 패총과 집자리, 불자리 온돌 유구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특히 조개껍데기가 쌓여 형성된 패총은 오이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오이도 선사유적공원은 이러한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알리는 역사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역사 탐방을 마치고 오이도 해변으로 나서니 다양한 음식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것이 바로 음식이다. 해군본부횟집에 자리를 마련했다. 오찬 메뉴는 바지락칼국수와 해물파전에 막걸리를 겉들였다. 맛있는 음식과 막걸리가 더해지자 분위기가 금새 화기애애해졌다. 서로 덕담을 나누고 웃음꽃을 피우며 라이딩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냈다.
오늘 식탁의 화제는 단연 아스트라 전이었다. 빌린 공공자전거는 기어가 없는 생활자전거라 페달을 밟는 일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이를 안쓰럽게 여긴 홍토마는 중간에 자전거를 바꿔 타주는 훈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동료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따뜻한 마음에 모두가 큰 박수를 보냈다. 점심식사 후에는 옥구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옥구도 앞바다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군에 맞서 싸우다 두 아들과 함께 장렬히 순국한 원성모 장군의 역사적 흔적이 남이있는 곳이다. 장군의 호가 송운이어서 인근 학교에도 그 이름이 전해지고 있다.
한때 군 해안초소가 있어 민간인 출입이 제한되었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찾는 공원으로 변모했다. 옥구공원은 시흥의 아름다운 명소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어 배곧생명공원으로 향했다. 배곧신도시를 품고 있는 이 공원에는 호수와 하늘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전망대에 올라 바라본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송도국제도시와 사해바다, 배곧신도시, 주변 산자락과 푸른 하늘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자전거를 타고 흘러온 땀마저 잊게 하는 시원한 풍경이었다. 유유자적 풍류를 즐기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오이도역에 도착했다.
시각은 오후 3시 20분경이었다. 달린 길은 47km였다. 하천 둑길과 들판길, 공원길, 호안길과 해변길이 이어져 지루할 틈이 없었다. 무엇보다 날씨가 우리를 도왔다. 한동안 기승을 부리던 폭염이 한풀 꺾여 라이딩하기에 더없이 좋은 하루였다. 안산 초록 들판에서 시작해 갈대습지를 지나 호수공원과 시화호를 거쳐 오이도의 푸른 바다에 닿았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선사시대의 흔적과 조선시대의 역사를 배우고, 친구와 정을 나누는 인생 여행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