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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산악회 계획에 따라 '왜목재 → 444봉 → 장신대 삼거리 → 고덕산 → 북장대 삼거리 → 메뚜기 바위 → 남고산성 → 남고사 → 태성사 → 남고아파트'의 8.5km를 5시간 동안 탐방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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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덕산[高德山]
높이: 603m
위치: 전북 전주시 완산구, 완주군 구이면
고덕산은 전주역에서나 전주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산이다. 전주에서 임실이나 남원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인 전주교육대학이나 임업시험장 앞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 한국의 산하
고덕산[高德山]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완주군 구이면과 상관면에 걸쳐 있는 산.
높이는 603m이다. 전주 시내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어 등산이나 산책코스로 유명하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고대산(孤大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덕산(高德山) 또는 고달산(高達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고달(高達)이란 최고에 도달한다는 뜻이어서 ‘높다라기’라고도 불렸다. 연봉들이 연이어 있어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남쪽으로는 구이저수지와 경각산이, 서쪽으로는 모악산이 조망되고 전주 한옥마을을 비롯하여 전주시가 한눈에 조망된다. 맑은 날에는 익산시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산행은 임업시험장 앞에서 출발하여 삼경사와 삼국지의 관우를 무신으로 모시는 관성묘(關聖廟)를 지나 393봉을 거쳐 정상에 오른 뒤 평촌으로 내려오는 구간과 평화동을 출발하여 북릉을 타고 정상에 오른 뒤 어두저수지와 한일신학교를 거쳐 신리로 하산하는 코스 등이 개발되어 있으며 3~4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문화유적의 보고인 남고산성·관성묘 등을 구경하면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정상에서 남쪽의 산줄기는 호남정맥으로 이어지고, 서쪽으로 뻗어가는 산줄기는 중간 지점에서 왼쪽은 평화동 방면으로, 오른쪽은 남고산으로 이어진다. 667년(고구려 보장왕 26)에 고구려의 승려 보덕(普德)이 제자 명덕(明德)의 의견에 따라 비래방장이라는 집을 세웠던 터가 남아 있다. 이 밖에도 경복사지와 보광사(寶光寺)·남고사(南固寺)·남고산성·관성묘 등의 문화유적이 남아 있다. - 두산백과
애초 10월 2주 차는 토·일 앞뒤로 산행이 예정되어 있어, 휴일은 휴일답게 집에서 쉴 예정이었다. 그런데, 10월 11일 화요일 월무박으로 예정되어 있던 백두대간 진고개~구룡령 구간이 신청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안내산악회에서 취소하는 바람에 전체 산행 계획이 틀어졌다. 와중에 어영부영하다 10월 12일 화무박으로 백두대간 한계령~조침령 두 번째 산행이 잡혔다. 해서 10월 4일 백두대간 늘재~문장대 구간 산행과 10월 12일 백두대간 한계령~조침령 산행 사이에 일주일 이상의 간격이 발생해 10월 8일 토요일 가볍게 다녀올 만한 산을 안내산악회에서 찾아봤다. 그렇다고 아무 산이나 선택하면 실망만 하고 돌아올 확률이 높아, 한국의 산하, 산림청, 까만 소 등 명산을 선정하는 기관의 선택을 받았으나, 초행인 산으로! 하긴 애당초 아무 산이나 선정하지도 않지만.
각 안내 산악회 산행 계획을 다 검토했지만, 별거 아닌 이 조건에 부합하는 계획은 가격으로 승부하는 산악회의 완주 고덕산 또는 경각산 중 하나를 택해서 다녀오는 산행이 유일했다. 나머지는 초행이 아니거나, 섬에 있는 산에 오르는 섬 산행이다. 섬 산행이야 나이가 더 먹어 체력의 한계를 느낄 때 가려고 뒤로 미뤄둬, 애초 고려 대상이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만, 고덕산과 경각산 중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했는데, 한국의 산하 인기 명산 300위 안에 둘 다 없다. 다만, 고덕산의 소개가 단 두 문장에 불과한데, 경각산은 거의 한 장에 육박한다. 해서 처음에는 경각산을 고려했으나, 산림청과 까만 소를 뒤져보니, 둘 다 경각산이 아니라, 고덕산을 선택했다. 산림청은 '숨은 명산', 까만 소는 100+!
무언가 이상해 고덕산으로 구글링해 본 결과, 작으나, 조망이 좋은 산이라는 정보다. 그래서, 산림청, 까만 소가 선택했을 거다. 이런 과정을 거쳐 10월 2주 차 토요 산행은 완주 고덕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기상청의 '산악날씨'에 의하면 산행 당일 기온은 12~14도 사이로 낮으나, 날씨는 화창한, 전형적인 가을 날씨로 조망은 기대할 만하다. 다만 점심이 문제다. 신사역 5번 출구에서 출발하는 산행이라, 신사역에서 김밥을 구해야 한다. 역 지하의 테이크아웃 커피집이 영업해야 하는데, 지난 10월 2일 일요일 석화산행 때는 문을 안 열어, 편의점 김밥으로 대신했다. 아니면 날머리가, 주택가라 당연히 식당이 있을 거고, 짧은 산행이라, 오랜만에 전주 맛집에서 하산주를 겸해 늦은 점심을 먹을까 한다. 그 외 산행 준비는 평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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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석화산행과 같이 평소보다 10분가량 늦게 일어나, 정해진 절차를 수행한 후 5시 55분경 집을 나서, 신사역에 도착한 시각이 6시 38분경으로 7시 안내산악회 버스 출발 기준 너무 이르다. 해서 다음부터는 불광역발 6시 6분 열차가 아닌, 6시 12분 열차를 타기로 하고 그 시각에 맞는 마을버스가 있는지 확인했다. 있다! 6시까지 동명탕 정류장으로 가, 6시 5분경 출발하는 버스를 타며 된다. 20여 분 일찍 도착해 시간이 남아도는 문제가 있으나, 오늘의 관심사는 지난 일요일 석화산행 때 구하지 못한 김밥을 살 수 있느냐다. 해서 두근거리는 심정을 부여잡고 개찰구로 올라가자, 바로 앞의 부산오뎅 집이 영업 중이고, 메뉴 중에 꼬마김밥이 있다. 꼬마 김밥 두 줄이면 약간 과한 감이 있으나, 산에서 점심으로 적당하다. 문제는 먹기 좋게 잘린 게 아니라, 들고 먹어야 한다는 거.
손에 뭐 묻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결벽증을 가진 인간이, 기름기 묻혀가며 들고 먹는 건 생각하기도 싫고, 결정적으로 기본 김밥은 없고, 원하지 않는 재료가 들어간 것만 판다. 해서 일단 반대쪽의 테이크아웃 커피집도 영업하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물론 문을 안 열었으면, 돌아와 여기서 가장 만만해 보이는 스팸김밥 두 줄 사고. 해서 반대쪽으로 가보니, 막 문을 연 분위기다. 물론 틈새 상품으로 김밥도 있다. 양재역과 같이 야채김밥과 참치김밥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기본, 즉 야채 기준 양재보다 300원 비싸다. 양재와 달리 상표가 없는 걸 보면 같은 공장에서 공급하는 건 아닌 거 같다. 고민할 것도 없이, 기본인 야채김밥 한 줄 사서 주머니에 넣고, 5번 출구로 나와, 앉을 수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 정류장은 먼저 도착한 등산객이 앉아 있어 10m가량 더 먼 택시 정류장으로 가자, 거의 같은 시각에 두 명이 도착했다. 해서 사이좋게 나눠 앉은 게 아니라, 나는 편하게 앉고, 다른 등산객은 배낭만 의자에 올려놓고, 좀 늦게 도착한 일행과 산행에 관해 열심히 얘기를 나눈다. 의자에 앉아, 지하에서 산 김밥을 배낭 속 디펙에 넣고, 생각보다 추워 바람막이의 지퍼를 잠그는 등 옷을 여미고, 4번 출구부터 5번 출구 택시 정류장까지 서성이는 등산객을 살펴봤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토요일 이 시간쯤이면 등산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던 구역인데, 한산하다. 당시는 신사역 4, 5번 각 출구에 각각 적게는 5대, 많을 때는 10여 대가 넘는 버스가 각 산으로 출발했으나, 현재는 많아야 3대, 아예 없을 때도 있는 것과 비교 불가다.
출발 시각이 7시인데, 역시 이번에도 7시 1분에 흰색 버스를 선두로 두 대의 버스가 택시 정류장으로 들어온다. 고덕산 또는 경각산행은 뒤의 빨간 차다. 이미 버스에 들고 탈 것을 꺼내 놓은 상태라, 배낭을 짐칸에 넣고, 차에 타, 인솔 대장을 비롯해 동행하는 36명 대부분이 초면이라, 바로 자리로 가 앉았다. 이 자리를 두고 짜증 나는 일이 좀 있었으나, 남들도 나와 같겠지, 생각했던 게 나의 실수다. 어쨌든 신사에서 승객을 태운 버스는 죽전과 신갈에서 나머지 승객을 태우고, 날머리인 완주 왜목재를 향해 달렸다. 자리에 앉아 책을 읽다가, 단풍철 행락 차량이 몰려 기대보다 느리게 달리는 고속도로를 구경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깨어보니, 휴게소다. 요즘 이런 상황이 빈번한데, 나이를 먹어 그런가?
신선한 공기와 스트레칭이 필요해 버스에서 내려서 보니, 탄천 휴게소다. 천안논산 고속도로면 대게 정안 휴게소에서 쉬는 거로 알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탄천이다. 관광버스 기사들끼리 담합이라도 했나? 차가운 날씨에 신선한 아니 차가운 공기를 마음껏 마셔 콧물이 줄줄 흐르는 가운데, 화장실로 가 볼일을 본 후, 휴게소 건물에서 주차장 쪽을 바라보니, 관광버스와 자가용으로 빈 곳이 안 보일 지경이다. 그들의 목적지가 궁금해, 자가용이야 목적지를 써서 붙이고 다는 게 아니나, 목적지를 알 수 있는 관광버스가 서 있는 곳으로 갔다. 물론 잘 아는 안내산악회 버스로, 앞창에 써서 붙인 목적지는 무등산이다. 이거뿐이라면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무등산/5호'다! 최소 다섯 대의 한 안내산악회 버스가 무등산으로 가고 있다는 거다. 이건 이상하다!
버스로 돌아가자마자 패드로 그 안내산악회 사이트로 들어가 오늘 자 무등산에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했다. 오늘 하루 정상을 개방한다는 내용이다. 다른 많은 산과 같이 무등산 또한 정상은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어 접근할 수 없는데, 등산객을 위해 오늘 하루 개방한다는 거다. 해서 무등산으로 가는 그 안내산악회로 등산객이 몰렸고, 내가 본 건 5호차인데, 사이트에 의하면 6호차까지 최종 여섯 대가 광주로 향하고 있다. 내가 걱정할 건 아니나, 게시판 댓글에서 산악회 주인장도 언급했듯이 오늘 중으로 무등산 정상에서 인증을 찍고 서울로 돌아갈 수 있을지 심히 궁금한 고속도로와 무등산 상황이다.
무등산은 무등산이고, 휴식이 끝난 고덕산행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지도를 나눠주는데, 산악회 게시판에 있는 거다. 그리고 코스와 주의사항에 관해 설명했다. 먼저, 경각산을 선택한 사람이 있는지 물었는데, 선뜻 답하는 사람이 없으나, 그렇다고 부정도 없어, 손을 들어보라고 하자 후방의 몇 명이 손을 든 거 같다. 예상 못한 상황이라, 대장이 놀라더니, 몇 가지 주의할 걸 알려주고, 얘기를 끝냈다. 늘 막히는 천안논산고속도로를 간신히 벗어나, 날머리인 왜목재에 도착한 시각이 11시 9분이다. 예상인 10시보다 1시간 9분 늦었다. 행락철에 1시간 지체야, 양호하다! 버스야 늦든 말든, 나는 늘 그렇듯이 고속도로를 벗어나는 순간 등산화로 갈아 신고, 스패츠를 착용해 등산 준비를 마쳤다.
버스 도착이 계획보다 늦은 11시 9분이나, 인솔 대장도 이번 산행 코스는 5시간이면 차고 넘친다고 언급해, 당연히 마감 시각을 예정보다 9분 짧은 4시나, 정확하게 시간을 지켜 4시 10분으로 최종 공지할 거로 생각했는데, 버스가 왜목재에 도착하자, 경각산 마감을 4시, 고덕산 마감을 4시 30분으로 공지했다. 물론 4시에 경각산 날머리인 벌재에서 등산객을 태우고 고덕산 날머리인 고남아파트로 와야 한다. 8.5km에 불과한 산행에 5시 20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대놓고 대장에게 뭐라고 하는 등산객은 없었으나, 주변이 들리게 일찍 올라가는 게 좋지 않냐고 언급하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물론 나도 전적으로 그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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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이정표가 될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도로는 능선을 깎아 만든 거로, 등산로는 능선을 깎아 만든 석축으로 올라가야 했다. 무언가 이상하다. 그런데, 쫓기듯이 서둘러 올라가는 등산객을 따라, 나도 모르게 기록 하나 남기지 않고 따라 올라갔다. 가면서 생각해보니,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이해가 안 된다. 무엇에 홀린 거 같다. 그렇게 올라가며, 그 지역의 고도를 등산 앱으로 확인해 보니, 172m다. 고덕산이 해발 603m라, 오차를 무시한 표고차가 431m로 생각보다 크다. 애초 왜목재의 고도가 200m는 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기대보다 낮아 그만큼 높이 올려야 한다. 그런데, 등산 앱으로 고도 확인이 목적이었는데, 자연스럽게 지도가 눈에 들어와 궁금증이 해소됐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는 등산 앱 지도에는 길 표시가 없다. 왜목재에서 고덕산으로 올라가는 공식 등산로는 없고, 산꾼이 만든 비공식 길이 있을 뿐이다. 해서 왜목재에 고덕산 등산과 관련한 이정표가 될만한 어떠한 표지도 없었던 거다.
공식 등산로가 아니라, 지자체나 산림청에서 세운 이정표는 없으나, 나뭇가지에 달린 산악회 리본이 길을 안내한다. 가끔 갈림길로 보이는 곳을 만나기도 하나, 길을 혼동할 정도는 아니라, 알바할 염려는 없다. 그렇게 등산로를 따라가 11시 17분에 처음으로 작은 봉우리에 도착해 보니, 울창한 숲 사이로 왼쪽이 좀 높아 보이는 쌍봉이 보인다. 왜목재에서 고덕산까지의 거리를 고려했을 때 저 높은 봉우리가 고덕산이다. 생각보다 높고 멀다. 아주 당연한 얘기로 위로 올라갈수록 쌍봉이 뚜렷하게 보인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고도에 올라 조망이 트여 뒤를 돌아보니, 이번 산행의 또 다른 목적지인 경각산도 보인다. 기온은 낮으나, 맑고 청명한 말 그대로 가을 날씨라 시야는 아주 탁월하다. 해서 위로 갈수록 정상에 도착해 보일 조망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위로 올라가자, 역시 고덕산도 한국산의 특징 그대로 암릉이 나타난다. 바위 능선은 곧 전망대라, 등산로 한쪽으로 삐져나온 바위로 올라가 뒤로 돌아 남쪽을 바라보았다. 날씨가 좋으면 지리산도 보인다는 고덕산이라, 지리산을 찾아봤으나, 아직은 고도가 낮아, 고덕산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에 가려 그 뒤는 보이지 않는다. 산세로 봐서는 호남정맥인 거 같은데, 정확하지 않다. 다만, 바로 앞에 보이는 옥녀봉과 경각산은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시작해 북으로 올라갔다가, 주화산에서 금남정맥과 분기해 남으로 광양 백운산까지 달리는 호남점맥의 봉우리다. 눈이 닿는 끝까지 호남정맥을 감상하고, 기록으로 남긴 후 다시 암릉으로 정상을 향해 올랐다.
바위 능선을 즐기며 정상으로 향해 11시 37분에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 능선에 도착했다. 말인즉 정규 등산로와 만났다는 거다. 정상까지는 1.5km! 그런데 이정표에는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왜목재 1.2km'로 왜목재에 관한 정보도 있다. 그럼 등산로로 인정한다는 건데, 왜 정규 지도나, 등산 지도에는 보이지 않을까? 어쨌든 정규 등산로와 만나는 능선에 올라서자, 지금까지 와는 달리 잘 정비된 길이라, 빠르게 갈 수 있어, 11시 50분에 정상 0.7km 거리의 상관면 갈림길에 도착했다. 화원마을 갈림길에서 13분 만에 800m를 왔으면, 시속 3.5km 정도다. 고로 등산로 상태가 어떻다는 걸 보여준다. 정상에서 700m 남은 거리라, 경사가 어느 정도나 될지 궁금해 등산 앱으로 고도를 확인했다. 400m가 조금 넘는다. 그럼 수직으로 200m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거로, 경사가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갈림길을 지나 조금 올라가자 예상대로 깔딱이다. 그 깔딱을 헉헉대고 오르는데, 위에서 내려오는 등산객이 있다. 하다못해 물병 하나 없이, 등산지팡이 두 개만 들고 내려오는 게 아무래도 가까운 동네의 주민이라 생각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반갑게 인사했다. 물론 그 등산객도 답례하고. 그런데, 나중에 노 등산객과 학산으로 같이 가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에 이 등산객 얘기가 나왔는데, 한번에 고덕산과 경각산에 오르기 위해 모든 짐을 들머리인 왜목재에 두고 고덕산을 찍은 후, 경각산으로 가기 위해 왜목재로 돌아가는 우리 일행이었다. 나도 처음 '벌재 → 경각산 → 왜목재 → 고덕산 → 남고아파트'를 한번에 달리지 않고, 왜목재에서 둘로 나눠 선택하게 한 산악회 계획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홀로 바로 잡은 산꾼이다.
노 등산객을 만나기 전까지는 주민이라 여긴 등산객과 헤어져 다시 헉헉대며 정상을 향해 올라가자, 12시 5분에 등산 앱이 정상에 도착했음을 음성으로 알려준다. 해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해 보니, 고덕산이 맞다. 경험에 의하면, 등산 앱이 알려주는 지점은 정상 반경 50m 내외다. 고로 50m가 더 가면 정상이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현재 고도'가 452m에 불과하다. 공식지도, 산 소개 모두 물론 소수점 이하는 다르나, 고덕산 정상의 높이를 603m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 아직 수직으로만 151m를 더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등산 앱에 의하면 수직도 아닌 수평 거리 50m가량만 남았을 뿐이다. 공식 자료야 틀리지 않았을 거고, 문제는 등산 앱 또는 핸드폰이다. 과거에도 아주 드물게 이런 경우가 있어, 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올라, 12시 9분에 정상에 도착했다. 그런데 음성 메시지가 나오고 정상까지 4분이다. 아무리 급경사라도 50m 오르는데, 4분씩 걸리지는 않는다. 고로 메시지가 나온 위치가 반경 50m 지역이 아니라, 최소 100m가 넘는다. 이 또한 이상한 현상이다.
널찍한 정상에는 10여 명의 등산객이 점심을 먹거나, 인증을 남기거나, 주변을 감상하고 있었다. 먼저, 정상석을 사진을 남기고 다른 등산객과 상부상조하여 인증을 남겼다. 그리고 정상에 있는 '학산 등산로' 지도를 훑어본 후 무엇에 쫓기듯 정상에서 내려가니, 바로 아래에 갈림길이 있다. 분위기로 봐서는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하사길처럼 보이고 직진하면 쉼터로 보여, 점심을 먹기 위해 쉼터로 갔다. 평소라면 11시 30분경에 점심을 먹어, 그 시간쯤에 김밥을 꺼내려는데, 지난 석화산행 때 경사를 숨 가쁘게 올라가며 김밥을 먹다가, 체할 뻔한 게 떠올랐다. 해서 하산 때 먹기로 하고 정상까지 올라왔으니, 이제는 먹을 시간이다. 그런데, 쉼터라 생각한 곳 끝에 데크 계단이 있다. 밥 먹을 생각으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으면, 발견하기 힘든 계단이다. 그 데크 정상에서 앞을 보니, 전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모악산도! 해서 김밥 꺼내는 것도 잊고, 주변을 사진으로 남기다가, 갑자기 지리산이 보인다는 정상에서 그냥 내려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서 김밥을 꺼내기 위해 들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고 정상으로 돌아갔다.
정상으로 돌아와 남쪽을 바라보자, 울창한 숲은 아니지만, 키 높이의 억새와 관목으로 시야가 방해받기는 하나, 아래 바위 전망대에서는 호남정맥이라 생각되는 산세에 막혀 보이지 않던 산줄기가, 파도치듯 동남으로 내려가는 게 보인다. 그중 가장 왼쪽의 관목 가지에 가린 쌍봉이 덕유산의 동봉과 서봉, 그 옆,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게 지리산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관목 사이로 보이는 모악산도 사진으로 남기고 배낭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와 보니, 한 쌍의 중년 등산객이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고 있다. 바닥에 놓았던 배낭을 둘러메기 전 김밥을 꺼내 손에 들고 데크 계단으로 하산을 시작한 시각이 12시 18분이다. 날머리까지 남은 거리는 4km 남짓이다. 시간상으로는 넉넉잡고 1시간 반, 그럼 2시면 도착한다는 얘기다.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 30분! 너무 많이 남는다. 해서 편도 1.5km, 왕복 3km라고 본 학산을 다녀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왕복 3km면 너무 길고, 등산 앱의 지도를 보면 학산이 없다. 등산객도 취급하지 않는 산이라는 얘기라, 없었던 생각으로 하기로 하고, 김밥을 먹으며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했다.
완주 쪽 등산로가 오지라면, 전주 쪽 등산로는 시민이 많이 찾는 뒷산다운 산책로다. 그 산책로를 따라 송전탑 밑을 지나기도 하며, 계속 달려, 12시 41분에 학산 갈림길에 도착했다. 왼쪽은 학산, 직진하면 대성초등학교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뿐만 아니라, 갈림길에 속속 등산객이 도착해 인솔 대장이 나눠준 지도를 보고, 대성초등학교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나야 당연히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했다. 학산 방향이 맞는 걸로 나온다. 학산 방향으로 가면 갈림길이 두 개 더 나온다. 그 마지막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된다. 해서 내가 학산 쪽으로 방향을 틀자, 초등학교 방향으로 내려가던, 등산객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그게 맞는 길이냐고 묻는다. 그런데, 날머리가 어딘지 확신이 없다. 초행에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은 길도 많다. 해서 잘 모르겠지만, 일단 학산 방향으로 가보겠다고 했다.
학산 방향으로 가자, 왼쪽 숲 사이로 조금 전에 내려온 고덕산 정상이 간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걸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며 달려, 두 번째 갈림길을 지나자, 등산로의 상태가 나빠지면 다시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중간에 등산로를 막아 놓은 게 보인다. 목적이 생태복원인지, 위험 차단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등산 앱에는 그 위치에 갈림길이 있다. 초행이라 가지 말라는 곳으로는 가지 않기로 하고, 그곳을 지나쳐 조금 올라가자, 두 번째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 나타났다. 그리고 위쪽에서 등산로를 막아놓은 금줄도 있다. 아래에서 본 금줄은 과거 등산로를 생태복원을 목적으로 설치한 거지 갈림길과는 상관이 없다. 세 방향을 가리켜야 할 이정표에는 두 방향밖에 없다. 남고산 방향의 이정표는 떨어져 남고산 방향으로 4~5m 떨어진 곳에 나무에 기대 있다. 고로 직진은 가야 할 남고산, 왼쪽은 보광재를 거쳐 학산으로 가는 길이다. 이번 산행 코스에 있는 남고산이 이정표에 등장하는 건 처음이다. 고로 내가 제대로 길을 잡았다는 얘기다.
남고산 방향으로 길을 잡고 가다 보니, 이정표가 없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평소 비법정 탐방로를 다닐 때 사용하는 등산 앱에 의하면 조금 전에 지나온 삼거리는 아예 없고, 즉 아직 학산 방향으로 가는 길이 없어 표기되지 않고, 이정표가 없는 이 갈림길에서 학산과 남고산으로 분기한다. 그에 반해 등산객이 많이 사용하는 등산 앱에는 지나온 삼거리에서 학산과 남고산이 분기해 일정 정도 나란히 달리다가, 어느 지점에서 학산 방향의 길이 좌로 완전히 꺾이는 거로 나온다. 해서 그 자리에 서서 두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하고, 자주 사용하는 등산 앱에 갈림길 표시를 하고 있는데, 대성초 방향으로 갔던 노 등산객이 다가오더니 뭘 하냐고 묻는다. 해서 연구 중이라고 얘기하자, 갈림길에서 왼쪽을 보더니, "샘이 있네!" 한다. ‘샘?’ 해서 갈림길에서 학산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 보니, 과거에는 약수터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관리하지 않아 마실 수 없는 샘물이다.
샘에서 내려와 자주 사용하는 등산 앱에 샘터 갈림길을 등록하고, 다시 남고산 방향으로 가자, 어느 등산 앱에도 없는 갈림길 나온다. 거기 있는 이정표에 의하면. 직진 즉 천경대 방향이 목표 봉우리 중 하나인 남고산으로, 110도 정도를 틀면 보광재 즉 학산으로 가는 길이다. 애초 학산을 왕복할 생각이었으면, 그 전 이정표가 있던 삼거리에서 갔지,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건데, 갈림길에서 기다리고 있던 노 등산객이 학산을 다녀오자고 유혹한다. 해서 왕복 3km라 멀다고 했더니, 여기서 보광재까지 900m, 보광재에서 학산까지 300m라 왕복 2.4km밖에 안 된다고. 시간은 남고, 노인네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마냥 거절할 수 없어, 배낭을 벗어, 등산로 안내 줄 나무기둥에 걸어 두고 핸드폰만 들고 노 등산객을 따라나섰다. 그렇게 둘이 학산으로 달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에 앞에서 언급한 고덕산 찍고 경각산으로 달려간 산꾼 얘기도 나왔다.
천경대 갈림길을 떠나 봉우리에 올라서자, 아까 지나온 학산 갈림길에서 올라온 길과 만난다. 여기서 보광재까지는 800m. 고로 100m를 숨 가쁘게 올라왔다. 거리만 생각했지, 기복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는데, 높지는 않으나, 숨 가쁜 기복이 계속 이어진 후, 저 앞에 정자가 보인다. 보광재다! 현재 시각 1시 17분. 도착해 보니, 가까운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산책 나온 사람도 만날 수 있었다. 여기서 학산까지는 300m. 보광재에서 정상까지 표고차가 80m. 360m 높이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높이인 수직으로 80m를 올라야 한다. 그런데, 계단이다. 헉헉거리며 계단으로 올라, 상태가 좋지 않은 급경사 등산로를 따라가자, 등산 앱이 정상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1시 23분이다. 동시에 학산 정상에서 구성진 트로트 가락이 흘러나온다. 비록 정상에 도착했다는 메시지는 받았으나, 고덕산의 예를 보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도착한 시각이 1시 24분으로 1분밖에 안 걸렸다. 반경 50m가 지극히 정상이다. 오락가락하면 더 헷갈린다.
학산 정상 쉼터에는 마을 주민이 핸드폰으로 크게 트로트를 틀어 놓고 감상 중이었다. 목소리나 노래나 처음 듣는 걸 봐서는 최근에 나온 노래에 가수 같다. 당연히 제목을 모르니 다시 들어보지 않는 이상, 맞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 노래를 같이 감상하면서, 상호 인증을 위해 노 등산객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당연히 해발 360m에 불과한 봉우리라 숲에 가려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다. 해서 주변의 표지만 사진으로 남겼다. 보광재 쉼터에 배낭을 내려놓고 오느라 조금 늦게 도착한 노 등산객이 표지를 사진으로 남기며, 한숨 돌리고 나서 인증을 부탁하지, 장갑을 벗다가 중단하고, 마을 주민에게 대신 찍어 주라고 부탁한다. 장갑 벗기가 귀찮아서란다. 약간 짜증은 났으나, 뭐 그러려니 하고, 산 정상에서 트로트 감상이 취미인 등산객에게 부탁해 인증을 남겼다. 그래서 그런지, 노 등산객 본인은 인증을 남기지 않았다.
학산에서 각자 할 일을 마치고, 트로트 애청자에게 작별 인사하고 정상을 떠나, 다시 보광재에 도착한 시각이 1시 30분이다. 노 등산객이 의자에 두고 간 배낭을 추스르는 동안, 바로 내 배낭이 기다리는 천경대 삼거리로 향해, 1시 43분에 천경대 갈림길 위 봉우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보니, 그 봉우리도 직진 고덕산, 좌회전 남고산 갈림길이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하산해, 배낭을 걸어두었던 삼거리 나무 기둥에 도착해 보니, 이정표 앞에서 인솔 대장과 등산객이 그걸 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실 학산을 떠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학산으로 향하는 예닐곱의 일행을 만났다. 그들도 남은 시간의 해결책으로 코스를 늘리기로 한 거다. 그 기준 유유자적한 인솔 대장은 서두를 이유가 없어, 좀 늦게 삼거리에 도착했다.
인솔 대장과 그 일행이 이정표를 보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배낭을 꺼내 둘러메고, 다음 봉우리인 남고산을 향해 갔다. 와중에 기묘한 바위를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며, 가는데, 앞 갈림길에 무언가 이상한 게 있어 가까이 다가가 보니, 두 바퀴 달린 게 뛰어오를 수 있도록 설치한 경사로다. 학산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반대쪽에서 오던 동네 주민 두 사람이 산악회 때문에 등산로가 망가진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다음 특히 강조한 게 오토바이였다. 그게 뭔 소리인가 했는데, 그 실체다. 그리고 남고산성에 도착할 때까지 이렇게 설치된 경사로가 곳곳에 있었다. 계단이라 오르기 힘들어 설치한 경사로가 아니라, 점프를 위한 경사로라, 주민이 더 문제 삼는 거 같다.
산악 오토바이나 MTB가 묘기를 부릴 수준의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자, 저 앞에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비용이 많이 들어간 이정표다. 고로 이 앞에 무언가 대단한 게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갈림길인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보가 없다. 이정표에 있는 지명이 다 생소한 게 날머리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천경대'는 어디선가 본 거 같아, 직진하자, 산성이다. 이번 산행 코스에 있는 남고산성! 그걸 보자 제대로 왔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했다. 그리고 안내문을 보니, 여기는 남고산성의 '동포루지'라고. 일단 산성에 도착했으니, 하산주인 막걸리에는 어떤 안주가 어울릴까 고민하며, 성벽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계속 전진했다. 그렇게 300여 미터를 가는 동안 몇 개의 이정표를 지나쳤는데, 역시 생소하다. 감이 이상해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하니, 다른 길로 가고 있다. 삼거리에서 직진이 아니라, 우회전해야 했다.
짜증이 확 밀려오나, 그래봐야 내 혈압만 올라갈 뿐이라, 흥분을 가라앉히고, 되돌아가는 건 싫어, 혹시 질러갈 방법이 있나, 찾아보니, 길은 없으나, 지도에 의하면 대각선으로 가면 길을 만날 수 있었다. 해서 숲을 뚫고 가려고 시도해봤으나, 오지 중의 오지로 정글도 없이는 통과할 수 없어, 다시 등산로로 올라와 동포루지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성벽에서 내려가 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가자, 인솔 대장을 비롯해 예닐곱의 등산객이 이정표를 보며 설왕설래한다. 해서, 직진하지 말고, 우회전하라고 일러주고, 지나치는데, 바로 가면 뭐가 있냐고 물어 남고산성이라고 했다. 그럼 우회전도 묻는다. 초행이 알 리가 없어, 모른다고 하고, 갈 길을 가자, 산성이 목표인데, 그냥 갈 수 없다며, 다들 직진했다. 그들은 그들의 길을, 나는 나의 길로 우회전해 조금 가자, 등산로는 성벽 아래 성벽을 따라간다. 말인즉 이 길이 산악회가 계획한 코스다.
그 성벽 아랫길을 따라 계속 가자, 길은 다시 성벽으로 올라간다. 거기 올라서서 전·후. 좌·우를 둘러보고 나서야 이 남고산성이라는 게 등산 중 자주 만나는 통상의 산성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규모가 상상외다. 하지만, 지금은 규모에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빨리 내려가야 막걸리를 마실 수 있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성벽 위로 남고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우연히 돌아본 뒤가 장관이다. 고덕산을 비롯해 여기까지 오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당연히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남고산으로 가기 위해 뒤돌아서려는데, 동포루지 쪽에서 말소리가 들린다. 정확히는 안 들리나, 직진했던 등산객이 길 때문에 논쟁 중인 거 같다. 이쪽으로 오라고 알려 줄 수도 없는 상황이라, 그냥 뒤로 돌아, 정상으로 향해 2시 23분에 도착했다.
'여기가 정상이 맞나?'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봉우리 모습과는 거리가 멀고, 다만 정상석 대신, 남고산 소개문이 정상임을 알려준다. 어쨌든 오늘 산행에서 이름을 가진 세 번째 봉우리라, 처음으로 핸드폰용 삼각대를 이용해 인증을 남기고 정상을 떠나 성벽을 따라 계속 가, 2시 29분에 북장대에 도착했다. 북한산성에 남장대, 북장대, 동장대가 있는데, 남고산성에는 북장대, 남장대가 있는 걸 보면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내부에 절도 몇 개 있고. 북장대를 통과해 계속 가자, 저 위로 언덕이 보인다. 산성에서 중요한 장소로 보이는데, 뭔지는 모르겠다. 마지막 깔딱이라 생각하고 돌계단을 힘들게 올라서 보니, 전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앞에는 전주 시내 전경 사진이 있고, 그 옆에는 '억경대'라 음각한 비석이 있다. 그런데 비석이 아니라, 전주 전경 사진의 '억경대 億景臺에서 바라본 전주 시가지'라고 쓴 한자를 보고야, 이곳의 목적을 알았다.
억경대에는 도착했을 때 중년의 한 쌍과 남성 등산객이 주변을 조망하며 사진을 찍거나, 인증을 남기고 있었다. 그 후 그들이 하산을 시작하고 나서 좀 있다가 나도 따라 내려갔는데, 바로 아래 정자가 있다. 그들은 다시 주변을 조망하기 위해 정자로 올라갔지만, 정자의 위치가 억 경대보다 좋을 거 같지 않아, 무시하고 통과해 계속 하산했다. 그런데, 그 길이 바위가 뾰족뾰족 튀어나온 바위 능선으로, 여차하면 대형 사고다. 해서 조심조심 내려가 암릉 구간을 지나자,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다. 날머리는 대승사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 즉 좌회전해야 한다. 그런데 직진하면 약수터다! 사전에 아무런 정보도 없던 곳이다. 해서 약수 한잔하겠다는 일념으로 날머리를 무시하고 약수터 방향으로 갔다.
사거리 이전 이정표에 의하면 약수터까지 700m로 가까운 거리라 약수터로 향했는데, 안 보인다. 이왕 내려온 거 약수를 마시겠다는 일념으로 계속 가는데, 저 앞에 큰 안내문이 서 있다. 당연히 약수에 관한 내용으로 생각하고 가까이 가보니, 견훤의 일대기를 기록한 글이다. 남고산성에 견훤? 궁금해 남고산성으로 구글링하자, 견훤이 고덕산성을 쌓았고, 그걸 조선시대에 개축해 남고산성으로 불렀다는 글이 있다[기사]. 어쨌든 약수터가 아니라는 것에 실망하고 약수를 찾아 계속 내려가는데 등산로 여기저기 노랗게 익은 열매가 떨어진 게 보인다. 작은 호두처럼 보여, 주변에 호두나무가 있는지 찾아봤으나, 없다. 그렇다고 노란 열매가 달린 키 큰 나무도 안 보인다. 열매의 정체가 궁금하기는 하나, 지금 중요한 건 약수라 열매의 정체는 묻어두기로 하고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데, 등산로 옆 나무 울타리에 잔뜩 달린 노란 열매가 보인다. 탱자나무 울타리에 잘 익은 탱자다!
탱자라는 걸 확인하자, 이제는 우선순위가 약수에서 탱자로 변경됐다. 분위기로 봐서, 탱자나무 울타리가 보호하는 건물의 주인장은 탱자에 관심이 없는 거 같아 내가 수확하기로 했다. 해서 먼저 바닥에 떨어진 것 중 상태가 아주 양호한 것을 줍고, 탱자가 달린 가지를 당겨 열매를 땄다. 원래 탱자 수확은 장대로 쳐서 떨어트려 줍는데, 주인장 허락 없이 그 짓을 할 수는 없어, 길고 굵은 가시에 찔려가며 탱자를 수확했다. 애초 술 담금용으로 300~500g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었던지라 대략 그 정도라 생각되는 순간 수확을 멈추고 비닐봉지에 담아 배낭에 넣고, 다시 약수를 찾아 떠났다. 이미 탱자를 수확할 때 바로 아래가 삼거리로, 날머리는 좌회전 약수는 우회전해야 한다는 걸 이정표를 보고 알고 있었다. 그 이정표에 의하면 '좁은목 약수터' 왕복에 400m다!
가치는 물맛에 좌우되겠지만, 왕복 400m면 다녀올 만하다. 해서 배낭을 두고 다녀올까 하다가, 혹시 다른 길이 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대로 메고 약수를 향해 우회전해서 조금 내려가니, 마을이다. 아무리 봐도 마을에 약수터가 있을 거 같지 않아 주변을 둘러보니, 마을 입구 왼쪽으로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해서 망설임 없이 그 길로 들어가 100여 미터를 가자 잘 정비된 산책로가 도로를 향해 내려간다. 그 중간에 체력 단련장과 이정표가 있고. 약수터까지의 거리는 100m. 이정표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며 보니, 숲속에 있을 거라는 예상을 깨고 도로변에 있다. 그리고 마을 주민이 빈 병을 한 상자 들고 와 약수를 담고 있다. 멀리서 약수를 받는 모습만 보고 저걸 다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약수터에 도착해 전경을 보고 안심했다. 여섯 개의 수도관에서 약수가 쏟아지고 있다. 해서 그중 하나를 차지하고 일단 물맛 보고 물통에도 받았다.
약수를 마시고 나서, 등산 앱의 지도로 현 위치와 날머리인 남고아파트 위치와 거리를 확인했다. 멀지 않다. 도로를 따라 가면 대략 500m다. 그런데, 등산 앱의 지도로 현 위치와 남고아파트까지의 거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현 위치의 해발 고도를 보게 됐는데, '-13'이다. 즉 난 지금 13m 바닷속에 있다. 아무래도 핸드폰이 문제인 거 같다. 하긴 꽤 오래 썼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로를 따라 아파트로 향해 가는데, 주변의 경치가 익숙하다. 물론 내가 이 동네에 왔던 적은 없다. 그런데, 무언가 익숙하다. 해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파트로 향해, 목표보다 30분이나 늦은 3시 3분에 남고아파트 앞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는 거로 이번 전주 고덕산행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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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보다 30분 늦었다고는 해도 마감까지 1시간 30분이나 남았다. 이제부터는 막걸릿집을 찾아 들어가 하산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런데 날머리에서 버스가 기다리는 다른 산행과는 다르게 버스가 경각산행의 날머리인 벌재에서 4시에 출발할 예정이라, 등산화를 벗거나, 배낭을 벗어 버스 짐칸에 넣어 두는, 호강을 누릴 수 없다. 따라서 등산 때 그 모습 그대로 막걸리, 집을 찾아 다녔다. 사실 약수터에서 남고아파트로 향해 오면서, 계획대로 아파트로 하산한 등산객이 식당을 찾아 전주천 방향으로 가는 걸 보고, 바로 따라갈까 하다가, 산악회 버스가 정차할 위치를 확인하고 움직이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 정류장까지 갔다. 이미 그들이 떠나는 걸 봤기에 식당을 아파트 주변에서 찾는 걸 포기하고, 그들을 따라 전주천 방향으로 갔다. 그런데, 없다. 해서 다시 약수터 방향으로 올라가며 식당을 찾다가, 다리를 건넜다. 그러자 왜 이 동네가 익숙했는지 기억이 났다. 여기서 조금만 내려가면 한옥 마을이고, 그 입구 매운탕 집에서 2021년 4월 10일 친구와 모악산 하산주를 했었다.
강을 건너면 가볍게 막걸리 한잔할만한 식당이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어, 전주천 주변에서 식당을 찾으며 한옥마을 방향으로 내려가 결국 친구와 하산주를 마셨던 매운탕 거리에 도착했다. 그 직전에 저 멀리 보이는 오늘 산행지 고덕산을 감상하고 사진으로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매운탕 거리에서 외부에 있는 각 식당의 차림표를 보니, 혼술할만한 안주 없이, 다 매운탕이다. 당시에는 메뉴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아 상황을 몰랐다. 어쨌든 여기만 믿고 왔는데, 실망이 크다. 그런데, 한옥마을이 시끌벅적하다. 무슨 비빔밥 축제 비슷한 걸 하는 모양이다[기사]. 축제라면 술이 빠질 수 없고, 한옥마을이면 당연히 막걸리를 파는 주막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한복 입은 젊은이들로 가득한 한옥 마을로 들어가 주막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막걸리 한잔할만한 곳을 찾아 한옥마을 중심거리를 관통하는 동안 술을 파는 곳은 있었다. 축제의 일환으로 모주와 이가주? 를 선물용으로 파는 거! 거의 한옥마을의 끝이 보이는데, 주막은 못 찾았다. 그 시각이 3시 33분, 날머리인 아파트까지 돌아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남은 시간은 40분 정도다. 주막을 찾기 위해 30분을 헤맸지만, 포기하고 돌아가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거리를 헤매는 동안 이탈리아 카페거리에 기와지붕을 얹은 걸 한옥마을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인사동과 다를 바가 없다. 막걸리를 포기하고 한옥마을 중앙에서 전주천 가의 도로로 빠져나와, 남고아파트로 돌아가기 위해 천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인파를 뚫고 기와지붕을 뒤집어쓴 카페 거리를 통과하느라 지친 몸을 끌고 아무 생각 없이, 아니, 전주에 대한 분노에 찬 욕을 퍼부으며 돌아가고 있는데, 길목에 식당이 보인다. 술이 아니라 밥이 전문이나, 간단하게 막걸리 한잔할 수 있을 거 같아 들어가, 메뉴를 보니, 남원 생막걸리가 눈에 띈다. 해서 주인장에게 막걸리 한잔하려는 안주는 뭐가 좋은지 물어보니, 메일전병과 육전을 얘기해, 육전을 주문했다. 조금 있으니, 내가 아는 전주 식당이 아니라, 이탈리아 커피 거리의 식당다운 밑반찬과 '남원 생막걸리'가 나왔다. 더운밥 찬밥 가릴 때가 아니라, 만사에 감사하며 먼저 막걸리 한잔했다. 그리고 3시 45분경 주문한 육전이 나왔다. 지치고 배도 고파 정신없이 육전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다 보니, 한 병을 비웠다. 배는 찼는데 막걸리가 부족해 한 병을 더 주문했다. 새로 나온 걸 반병 정도 마시자, 배는 터질 거 같고, 버스가 기다리는 아파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4시 10분경 식당에서 나와 축제로 요란한 전주천을 따라 올라가다가 다리를 건너, 남고아파트를 찾아갔다. 주막을 찾느라 헤맨 덕에 그 동네 길거리는 빠삭해 가장 빠른 길로 가, 4시 19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도 앱이 17분 걸린다는 거리를 9분 만에 도착했다. 그런데, 벌재에서 출발한 버스가 아직 도착 전이다. 길을 건너기 전 신호를 기다리며, 건너의 등산객을 보니, 다들 한잔했다. 어디서 마셨는지 궁금해진다. 길을 건너 그들과 합류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4시 21분에 버스가 예상과는 다른 방향에서 나타났다. 그럼 길을 건널 이유가 없었다. 해서 서둘러 다시 길을 건넜으나, 주체하지 못할 정도 취한 등산객과 동작이 늦은 등산객 덕분에 4번의 신호가 바뀌고 나서야 모두 서울로 가는 산악회 버스에 탈 수 있었다.
덕분에 처음 공지한 마감보다 7분 정도 늦은 4시 37분경 서울로 출발했다. 그런데, 버스가 고속도로 진입하기 위해 전주 시내를 관통하며, 거의 모든 신호대기에 걸려, 지체가 많이 됐다. 그런데, 막걸리 한 병 반을 마셨는데, 화장실을 다녀오지 못해 불안했는데, 고속도로에 접어든 버스가 출발한 지 한 시간도 채 안 된 5시 32분에 여산 휴게소로 들어간다. 볼일이 급한 건 아니나, 미리 볼일을 볼 수 있어, 막걸리 트라우마가 있는 나야 대단히 고마운 상황이다. 그런데, 인솔 대장이 거의 출발하자마자 휴게소로 들어가는 이유를 설명하는데, 하산주의 영향으로 볼일이 급한 사람이 많고, 와중에 토한 사람도 있다고. 다른 때보다 휴식을 길게 가진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해 신갈과 죽전에서 승객을 내려주고 평소보다 40분가량 늦은 8시 14분에 신사역에 도착하는 거로 전주 고덕산행을 마감했다.
안내산악회 계획과는 달리 '왜목재 → 444봉 → 장신대 삼거리 → 고덕산 → 대성초등학교 삼거리 → 보광재 삼거리 → 샘터 갈림길 → 보광재 삼거리 → 보광재 → 학산 → 보광재 → 남고산 삼거리 → 북장대 삼거리 → 메뚜기 바위 → 남고산성 → 북장대 → 억경대 → 좁은목 약수터 → 남고아파트'의 12.51km(트랭글)를 3시간 55분 동안 달렸다. 이동 3시간 54분, 휴식 1분!
10km 내외, 해발 700m 이하의 가벼운 산행과 조망에는 더없이 좋은 산으로, 한 번 정도는 가볼 만하다.
북한산 같은 동네 뒷산은 등산로가 하도 많아, 길 잃기 십상이나, 어디로 내려가도 시내라 걱정할 게 없다. 전주의 뒷산인 고덕산 또한 어디로 내려가도 목적지 1~2km 내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산악회 산행 계획에서는 알 수 없었는데, 날머리인 남고아파트가 한옥마을과 멀지 않으니, 연계해 다녀오는 게 좋다. 명색이 한옥마을인데, 막걸리 한잔할 주막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