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녀들이 초등학교 3학년, 1학년 때였다.
청명한 가을 초입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주말이면 어김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갔다.
가능한 한 자연 속에서 다양한 추억을 경험케 해주고 싶었다.
평소엔 가족 네 명이 함께 다녔는데 그날 따라 아내에게 바쁜 일정이 있어서 아이들만 데리고 갔었다.
산 능선에 몇 군데 '산불감시탑'이 있었다.
감시탑에 올라가면 전망이 매우 좋았다.
당연했다.
산불을 감시하기 좋은 곳에 감시탑을 세울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키가 작은 아이들이라 높은 곳에서 멋진 풍경을 보고 싶다고 했다.
'산불 감시원' 아저씨들이 자주 왕래하지 않는, 일부러 후미진 곳을 골라 감시탑에 올랐다.
과연 전망이 끝내줬다.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그런 기쁨과 즐거움은 단 몇 초에 불과했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윙윙' 거리기 시작했다.
'말벌떼'였다.
큰일났다 싶었다.
어린 애들만 아니었으면 번개처럼 줄행랑을 치고도 남았을 터였다.
젊을 때라 '우사인 볼트'처럼 순식간에 그곳을 피해 달아났을 것이다.
달리기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내 곁엔 사랑하는 애들이 있었다.
애들을 '산불감시탑'에 남겨두고 아빠가 먼저 탈출할 순 없었다.
세상에 그런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내가 죽더라도 자식을 먼저 보호하는 게 부모의 '존재이유' 아니던가.
벌떼 소리를 듣자마자 순식간에 내 점퍼를 벗었다.
본능이었다.
자동반사였다.
그리고 두 아이들을 그 점퍼로 감쌌다.
그런 다음 계단으로 내려가자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안전했고 애들에겐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사지는 극심한 고통으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벌떼의 공습을 막아날 재간이 없었다.
속수무책이었다.
감시탑 계단을 내려와서 애들 팔을 붙잡고 뛰기 시작했다.
내가 점퍼를 벗어 애들을 감싼 이후로 불과 10-15초 정도 였을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애들에게 만큼은 아무런 피해가 없기를, 제발, 제발..."
감시탑을 내려와서 애들 손을 잡고 약 40-50미터 가량을 정신없이 달렸다.
다행스럽게도 벌떼는 따라오지 않았다.
우선 애들 상태부터 살폈다.
애들은 온전했다.
천운이었고 그저 감사했다.
애들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그때부터 나의 고통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팔, 다리는 말할 것도 없었고, 목 뒷덜미, 눈두덩, 머리카락 속까지 아리고 쑤셨다.
"아이고 주여...."
나는 원래 왠만한 고통엔 꿈쩍도 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본격적으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가을철 말벌은 지독하기 그지 없었다.
자연이고 뭐고, 일단 집으로 가자 했다.
택시를 타고 왔다.
집에 도착해서도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저녁 무렵에 아내가 외출을 마치고 돌아왔다.
처음엔 근심어린 눈빛으로 "어쩌다 이리 됐느냐"며 걱정을 많이 해주었다.
얼음찜질까지 시켜주었다.
고마웠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내가 조금 살만해 지자 아내는 참았던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사진도 찍어가며 신나게 놀려댔다.
"아이고 우리 남편 눈탱이가 밤탱이가 됐네. 근데 밤탱이가 되니까 더 멋진 걸? 애들아. 안 그러니?"
"으이그, 남 속도 모르고 놀려대다니, 웬수가 따로 없네 그려"
애들도 깔깔거리며 환하게 웃었다.
양쪽 눈두덩이 점점 부어올라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팔, 다리, 뒷목 등 기타 부위의 통증은 얼굴에 비하면 이무겻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만 하기가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벌초나 산일을 하다가 말벌에 쏘여 '쇼크사' 하는 사람들도 있다.
매년 신문, 방송에 그런 사건 사고가 심심찮게 나오는 걸 보면 벌떼의 습격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자연도 그렇고, 말벌도 그렇고 쉽게 생각하면 절대로 안 된다.
벌떼의 공격은 그 자체로 큰 형벌이자 무서운 재앙이다.
자연이 좋긴 하지만 각종 위험요소도 도사리고 있으니 항상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아내가 밤탱이 됐다며 놀리면서 찍었던 사진을 훗날에 다시 보니 나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애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점에 대해 재삼재사 감사할 따름이다.
하늘이 도운 결과였다.
아직 어린 애들이다.
자연 속에서 언제나 해맑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기도할 뿐이다.
파이팅이다.
2012년 6월 12일.
2년 전 초가을에 찍었던 사진을 바라보다가 그때의 아픈 기억을 반추하며 몇 자 적었다.
사진만 봐도 여전히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지는 듯하다.
얼굴이 팅팅 부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