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 / 곽해룡
충전기가 내장된 강아지 다섯 마리
에너지가 만랩이 되어
저희끼리 뛰고 물고 구르다가
방전된 배터리를 채우러
벽에 기댄 채 드러누운 어미 개의 젖에
플러그를 들이댄다
어미 개의 배엔 아직도
빈 콘센트가 다섯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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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것 / 김봄희
꽃게 살 때 따라온 집게발들이
몸통이 다 떨어져
남은 거라곤 오직
집게 두 개뿐인 집게발들이
움직여
건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아무 것도 무서울 게 없다는 듯
막 움직여
나는
그게 진짜 무섭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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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돌돌, 깔깔깔 / 김성은
세발자전거를 탄 동생이랑
우산을 받쳐 든 형이
돌돌돌 달려간다
빗줄기가 굵어질수록
형의 허리는 점점 굽어지고
엉덩이랑 등은 젖어 가는데
깔깔 웃으며 달리던 동생이
딱 멈춰 선다, 부스럭부스럭
봉지 속에서 과자를 꺼내
형 입에 하나 자기 입에 하나
넣어 주고는 다시
돌돌돌,
깔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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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배추 / 박경임
밭에서 뿌리 잘려 트럭으로 던져지는 배추
잎을 벌리고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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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통의 마음 / 박혜선
좁아도 집이 최고지
빠진 연필이
빠진 지우개가
필통은 자꾸 신경이 쓰인다
집에도 안 들어오고
어딜 떠돌고 있는지
필통은
통 잠을 이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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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적은 없어도 / 방주현
일기 예보를 보니
오늘도 엄마는 전화를 하겠네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조심하라고 집에 계시라고
잔소리하겠네
나한테 할 때처럼
두 번 세 번 말하겠네
할머니는 알았다 하겠지
할아버지도 걱정 말라 하겠지
나처럼 두 번 세 번 대답하겠지만
전화를 끊고 나면
할머니는 호미 들고 텃밭에 나갈 거야
할아버지는 자전거 타고 복지관에도 갈걸
어쩐지 그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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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허물 속 / 송진권
뭐 다른 데도 아니고
지금은 매미 허물 속
등딱지가 터지며 매미는 날아가고
나는 지금 텅 빈 매미 허물 속
매미는 어디로 갔을까
어디에서 무슨 노래를 부를까
이 속에서 만들었던 노래와
꾸었던 꿈을 매미는 생각할까
어디도 아니고
나는 지금 매미 허물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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