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속에서 사심이나 본능이 올라온다. (지금 아이들 역사수업 준비로 다시 읽는 함석헌 선생님의 "고난으로 본 한국 역사" 내용)
그러나 처한 상황에 따라 양심을 지키고 이상을 쫒는다는 것이 사회와 제도 속에선 오히려 불합리하고 선하지 못하게 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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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을 꾸었다.
군대를 다시 입대하는 꿈이었는데 (남자들이 트라우마를 겪는다는)
군에서 컨닝했다고 자백하라는 꿈이었다.
난 컨닝하지 않았고 (내가 보니 감독하던 선생이 문제를 유출했고, 문제를 유출받은 친구가 나와 친해서 함께 공부했는데 나에게 그 내용을 가르쳐 준 거였다. 내용에 대햔 답을 본 선생은 이건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내용이라 갑자기 문제가 나와 당황했고, 그 답을 쓴 나를 자신이 문제를 가르쳐준 사람의 시험지를 본 컨닝범이라 확신하게 된 거였다.
그 친구가 함께 잘하기 위해 자신이 유출받은 문제를 함께 나눠 공부했다는 건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거다. 그 선생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생각의 수준이, 그 사람의 도덕적 수준이 아닐까?)
선생은 컨닝을 인정하지 않는 나에게 자백을 강요했고 난 양심상 컨닝한 적이 없었기에 거짓을 말할 수 없었다.
나이많고 계급이 높던 선생은 모두 시험중지를 외치고 연병장에 선착순 집합시켰다.
선착순!
운동 선수출신들이 많던 부대에서 근무했기에, 군에서 제일 싫어한 선착순.
아무리 이 악물고 달려봐야 선출인 그들보다 잘 달릴 순 없었다.
사람들은 선착순이라니 달려나가며 니 신발, 내 신발 없이 아무 신발이라 신고 달려나갔다.
어짜피 달려나가봤자 후미 축에 속할 거고, 얻어 맞거나 막타워 뺑뺑이 돌테니 난 남 신발 아무렇게나 신고 나가기보단 내 신발을 신고 나가서 도덕적으로 낫고자 노력했다.
실은 이게 군에서 5년동안 치열하게 투쟁했던 내 생존전략이었다.
난 너희들보다 그래도 도덕적 우위에 있어. . . ㅜㅜ
갑자기 떨어진 집합 명령에 다들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난 북적이는 신발장 앞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애들이 거의 나간 후에 내 신발을 찾아봤으나 있을리 만무하고...
짝이 안 맞는, 심지어 발끝만 들어가는 작은 활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발끝만 들어가니 당연히 뛸 수 없었고, 어정쩡한 태도로 뛰어 나갔다.
근데 요 모양새가 누가봐도 ㅡ 심지어 내가 봤더라도 반항하는 폼새. . .
구령대에서 보는 선생의 입장은 어떻겠는가?
그러나 사정을 말할 수 없는 곳이 군대 아니 사회아닌가?
선착순 뺑뺑이를 돌렸다.
나만 세워둔 채.
내가 자백? 거짓?을 말할 때까지. . .
옆 동료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지쳐가다가 점점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저 자식때문에 우리가 힘들어...'
사실이나 상황이 어떠했는진 중요하지 않았다. 어짜피 힘든 그들에게는.
사실은 늘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달라지고 상황은 개인 내적으로 다르게 느낄 수 있기에 둘 다 객관화하는 일은 어렵다.
선생인 감독관이 본 사실도 있을테고 그가 느끼는 상황도 있을테니. . .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공감의 원천은 자기 자신 아닌가? 내가 편하고 내게 좋은 것은 당연히 좋아하고 내가 힘들고 불이익이 생기는 것에는 거부를 표하는. . .
시간이 지나고 다른 이들이 흘리는 땀이 많아질수록 몇몇은 내게 사실대로 말하라 화를 내며 겁박했고, 다른 몇몇은 그냥 거짓으로 컨닝해서 죄송하다고 말하라 했다.
선택은 둘 뿐인가?
그러나 난,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몇 없어 보였다.
난 운동장 구령대 단상으로 올라가 그 선생의 목을 세게 밀쳐버렸다.
있는 힘껏, 화(怒)를 다해.
*
잠이 깼다.
뭐 이리 복잡한 개꿈인가
라고 치부하기엔
현실에서 비슷한 일들이 일어난다.
쩝,
다시 잠을 청한다.
# 2.
경찰서였다.
난 내가 왜 경찰서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군 관련 컨텐츠를 다루는 얍삽한 보수우익 유튜버가 형사였다. (사상이 보수우익이라고 다 꼴통은 아니다. 양심과 이성 면에서 사심없이 사상ㅡ생각을 살아내는 이들도 있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깨어있다는 사람이나, 그들이 모였다는 곳에서 개인의 사심에서 출발한 이기주의나 집단 이기주의를 볼 수 있다.)
어쨌든 캥기는 것 없는데 경찰서에 와 있기에 당당했다. 참고인으로 와 있나 했다. (사실 왜 경찰서에 와 있는지 몰라 답답하고 긴장도 있었던 듯).
내가 잡혀온 이유가 폭행이란다.
엥, 폭행?
나 대안학교 선생이라고요.
그건 모르겠고 누군가 고소했으니 그렇단다.
누군가 했더니, 아까 이전 꿈에서 꾼 선생 폭행.
시간이 흘렀는데. . . 어찌어찌 그 군에 있던 선생이 인터넷을 통해 날 우연히 알게 됐고, 그래서 고소했단다.
아. . . . . .
그 사람의 문제 유출이나 나의 결백 따위는 이젠 증명할 수 없는 사정이 되었고 남은 것을 물질적인 나의 가해행위.
난 그때의 상황들을 자세히 설명했으나 그런 긴 설명은 사건을 해결만 하고자하는 경찰의 입장에선 쓰잘데없는 이야기. 인간 개인 내적인 것 따위는 자기에겐 증명할 수 없는 어떤 것. 증명할 수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따위는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되니 자기에게 얘기하지 말란다. 헉.
심지어 경찰들은 오늘 회식이라고 빨리 정리하고 나오라는 상황.
그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그런게 아니라고 강변해봐야 경찰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을 뿐.
심지어 비슷한 전과도 있다며 내 과거의 폭력 전과를 경찰이 찾아내었다.
말도 안 된다고 항변했지만 경찰이 과거 전과 기록을 읽어주니 정말 그랬던 기억이 올라왔다.
기억은 사라져도 기록은 남는단다. (헐... 자신의 기록만이 정당하다는 걸 전하기 위해 삼국사기를 쓴 후, 참조한 책들을 세상에서 없애버린 김부식의 예는 어찌하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