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 어머니(김교님) 방문기
2015.09.12. 최종은
2015년 9월 12일 가을 아침 햇살이 너무 좋은 아침에 어떤 만남이 있을지! 설레 임과 기대되는 마음, 그리고 오늘 하루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도하며 집을 나섰다.
수장 어머니로 불리는 김 교님 어머니. 처음 만나는 저를 친정에 들리러 오는 딸처럼, 그렇게 웃는 얼굴로 맞아주셨다. 그냥 그 얼굴과 눈빛과 표정과 음성에서 평생을 주님을 사랑하며 살았던 그 삶의 흔적들이 그대로 보였다.
내가 이렇게 살았노라,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놀라운 일을 하셨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살았다는 그런 말씀도 없이 그냥 웃음으로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그저 감사함뿐이다. 라고 말씀하시며 웃으시는 그 얼굴은 천사의 얼굴 이었다.
겸손함, 주님 안에서의 평안함, 주님의 사랑 안에서의 푸근함을 모두 지니고 계신 분이셨다.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나는 이렇게 봉사했다, 나는 이렇게 섬겼다, 나는 이렇게 주님을 믿었다, 라고 한마디의 자랑도 없이 모든 감사를 주변의 믿음의 식구들에게 돌려주시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진리의 영을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믿음의 선배들 신앙의 선배들을 만나서 그리고 믿음으로 지도해 주시는 영적 지도자를 잘 만나서 인생을 평안하게 살아왔다는 어머님의 고백은 정말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하며 사셨던 어머님의 인생의 발자취를 보여주시는 믿음의 고백이었다.
90년을 사시면서 왜 고생되는 시간이 없었겠는가?
왜 힘들었던 시간이 없었겠는가? 왜 어렵고 슬픈 시간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어려울 때 외로울 때 예수가 믿어진다고, 주님을 만나서 어려움 없이 평안하게 근심걱정 없이 지금까지 살아오셨다는 어머님의 고백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귀한 말씀이었다.
16살에 시집왔어요. 세상이 슬프게만 보여요. 왜 기쁘게 안보이고, 이렇게 허망한 세상에서 사는구나 싶고 언제나 예수가 믿고 싶었어요. 마음에서, 예수님 믿고 싶었어. 그런데 이러고 있으면 달이 훤하게 떴어요. 그러니까 달을 보고 저런 달같이 좋은 세상도 있구나. 항상 마음이 외롭지. 뭣이 마음이 든든하고 좋고 그런 생각 하나도 없이 살았어요. 열여섯 살인 게 무엇을 알겠어? 순창(군 동계면 수장리)에서 여기 남원(대산면 운교리)으로 시집 왔지요.
친정어머니가 말씀을 못하셔. 못 알아들어. 그런 어머니하고 세상을 살다 보니까 이 세상은 내 세상이 아니다 싶고 마음에서, 그런데 복 집사 어머니가 저 어디 광주가면 잘 믿는 사람이 계시다고 그래요. 잘 믿는 어른이 광주에 계신다고 꼭 한번 뵈옵고 싶었어. 이 선생님 이라고, 그래서 만났는데 내가 스물넷에 혼자되었어요. 그래서 오늘 이 시간 까지 이 선생님 첫째 이 선생님 정 선생님 김 선생님 오 장로님 그 어른들의 덕으로 오늘 이 시간까지 힘 안 들고 살아왔어요.
힘 안 들고 동광원 은혜로 이런 분들이 도와주고 그래서 어떤지 모르고 기쁘게만 살았는데 이제 나이가 구십이에요. 올해 내 나이가 구십인데 이렇게 어째서 다리가 괜찮을 것 같은데 어째 이렇게 날마다 생활이 잘못 살고 있어요. 그래도 참 동광원 아니면 못살았겠다 싶고 그 은혜가 말로다 할 수가 없어요. 그 은혜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모두 덕으로 살아요. 덕으로, 앞으로 동광원 잘 살면 좋겠어요. 동광원이 잘 살아야 되요.
(방문객들이 와서 인사하고 돌아가시다.)
이 선생님이, 내가 인제 스물넷에 그렇게 애기가 있는지도 모르게 딸(유복녀)을 하나 낳았어요. 세상 뜬 양반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이 선생님이 애기를 업고 있는 나를 쳐다보더니 혀를 끌끌 차세요. 나를 쳐다보면서 세상을 똥으로 여기냐? 고 그런 말을 했어요. 그렇게 아주 내 마음이 위로가 되고 그랬어요. 이때까지 근심 걱정 없이 편안히, 편안히 살아왔어요. 하나님 은혜로.
(지압을 해드리다.)
(어머니 소띠세요?) 범띠에요. 친정어머니는 오 씨고 친정아버지는 김 씨이시고 그리고 성함이 아버지는 김 씨 김 용희, 어머니는 오 응오 그리고 형제자매는 동생 남동생 둘이고 여동생 셋인데 광주에 가서 하나 살고 있어요. 귀일원에, 저는 오늘 이제까지 죽어도 게을러 빠져가지고 힘이 없어. 힘이 없어요. 사람이,
총무님이 귀한 양반이야. 서울서 진도까지 와서 살다가 사모님 너무 애쓰고 사시다가 그렇게 좋은 양반이 가셨어. 살고 보면 모든 것이 헛된 목숨이고 여기 사모님이 돌아가신걸 보고 가슴이 아리고, 한번은 이렇게 얘기해요. ‘아침에 자고 나가면 풀이 그냥 어디서 솟아왔는가 춤을 출려고 하는데,’ 그렇게 세상을 살았어요
우리가 진리의 영을 가르치는 양반을 만나기가 하늘에 별 따기야. 이 선생님 같은 양반은 안 계셔. 이 땅위에는 오 장로님 우리 오 집사님이나 건강 하셔야지. 여기도 모두 이런 (복) 택경 자 양반들이 모두 도와줘야 우리 여자들이 살아요. 여자들은 힘이 없어서 못 살아. 내가 이렇게 있지만 가는 것도 사는 것도 마음대로 못해요.
(어떻게 예수 믿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외로울 때 예수가 믿어져. 내가 외로울 때 내가 외롭고 힘이 없고 할 때 믿어져. 믿음으로 살았어야 이야기가 술술 나오지. 믿음 없이 살았어요.
(결혼해서 시집와서 예수 믿으셨어요?)
예, 나는 나 혼자 살았어. 결혼했다고 해도 바깥양반 일본 가서 살고 결혼 했다고 일 년도 같이 못살았어. 어쩌다가 애기가 하나 있어가지고 어쩐지도 몰라. 그렇게 세상을 살다가 동광원 이 선생님을 만나고 어른들을 만나니까 그 힘으로 살았지요.
정성이 있어야 해요. 뭐든지 정성이 있어야 해. 아 늙은이들은 아무렇게 되어도 젊은이들은 건강해야해. 나는 그렇게 건강한 편이지요. 고향은 순창군 동계면 수장리.
(그래서 수장 댁이네요.)
이 선생님 신앙 전파가 이 땅위에 꽉 찼으면 좋겠어요.
(꽉 차고 있어요.)
사람 생활이 실천이 문제이지 말 많으면 뭣해요? 시집와서 광주 가서 일 년 살다오고 그전에 세상 뜬 양반도 스물여섯 살에 징용 가서 일본 가서 노무자로 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