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김숙희 지음 『치매, 엄마가 이상해요』
치매 환자는 사랑 환자
“여보세요? 네, 지금 바로 갈게요.” 식전 댓바람부터 남편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여보, 무슨 일이야?” “엄마가 또 집을 나가셨대! 아버지 전화야.” 치매를 앓고 계시는 시어머니는 종종 집을 나가신다. 벌써 여러 번.
남편은 출근하라 하고 나는 눈곱만 떼고 후다닥 집을 나섰다. 시댁 근처 파출소로 바로 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치매안심센터에서 받아 온 ‘배회감지기’를 어머니 목에 걸어드렸기 때문에 내 핸드폰으로 어머니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경찰차를 타고 경찰 아저씨는 배회감지기의 GPS 이동로로 운전해주시고 나는 어머니를 찾기 위해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어! 저기요, 어머니 저기 걸어가고 계세요.” 어머니는 경주마처럼 오로지 앞만 보고 걸어가고 계셨다. 무더운 여름에 겨울 모피코트를 입으시고는 땀을 뻘뻘 흘리고 계셨다. “어머니, 어딜 그렇게 열심히 가고 계셨어요?” “우리집!”
어머니는 당신이 태어나고 자라신 친정집을 찾아가고 계셨던 것이다. 어머니의 잦은 가출로 우리 부부는 당번을 정해 번갈아 가면서 시댁에서 부모님과 함께 자기로 했다. 어머니의 증세는 점점 심해지셨다. 어머니는 기저귀에 대변을 가득 싼 채 화장실 바닥에 누우셔서 꼼짝도 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덩치가 크시고 나는 왜소하다. 그래서 어머니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서 겨우 기저귀를 벗기고 따뜻한 물로 목욕시켜드리고 새 옷으로 갈아 입혀드렸다. 하지만 어머니를 화장실에서 나오게는 할 수 없었다.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잠든 척 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듯. 어머니는 꼼짝도 하지 않으시고 그렇게 하룻밤을 화장실 바닥에 누워 주무셨다. 식사도 전혀 하시지 않으셨다. 그러다 덜컥 코로나에 걸리셨다. 우린 가까운 병원에 어머니를 모셨고 병원에서 다시 요양시설로 모셨다.
나는 요양시설에 모시는 것은 전문 지식을 갖춘 이에게 맡기는 것이라 어머니에게도 오히려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남편은 죄책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어머니를 뵈러 가기도 하고,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와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요양시설에 모셔 드리기도 한다.
‘기억을 잃으면 그 사람의 자아도 사라지는 걸까? ’
이 질문에 뇌과학자 온조 아야코는 답한다. “기억을 잃어도 그 사람은 그 사람으로 존재한다. 이유는 ‘감정’이다. 감정은 이성보다 앞선 지성이며 생존에 필수적인 능력이다” 라고. 치매 환자는 상세한 내용은 잊어도 감정은 남아 있다. 우리 시어머니도 나를 보시면 환한 미소를 지으신다. “어머니, 제가 누구예요?”라고 물으면, “누구긴 사람이지.”라며 웃으신다. 평소 나를 아껴 주시던 어머니의 감정이 분명 남아 있는 것이다.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서서히 변화가 나타나는 병이다. 시어머니께서 치매 판정 받으시고 ‘방문 요양 서비스’를 받고 계실 때, 시댁 작은집 어머니로부터 “방문 요양 서비스 받으려고 멀쩡하신 분을 치매 걸렸다고 한 거 아니냐?”라는 말을 들었다. 참 어이가 없고 당황스러웠다. 어머니는 치매를 앓으신 지 10년이 넘으셨다. 일찍 치료를 시작하셨기 때문에 증상을 늦출 수 있었다. 치매 치료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치매를 예방하고, 진행을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은 노래 부르기, 가벼운 운동하기, 산책하기, 충분히 잠자기, 물 수시로 마시기,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우유 , 요거트, 청국장 많이 먹기, 오색 채소 먹기, 혀 운동하기이다. 혀 운동은 입을 크게 벌리고 최대한 혀를 쭉 내밀었다 당기기를 여러 번 하거나 , 입안에서 혀를 천천히 크게 돌리는 것이다.
그리고 안전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새롭고 낯선 것을 경험하게 해서 자극을 주는 것도 효과적이다. 또 사랑하는 사람과 정서적 접촉은 심리 건강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누군가 우리 피부를 건드리면, 우리 뇌도 건드린다고 볼 수 있다. 치매 환자들이 신체 접촉을 자주 하면 증상이 약화된다. 마사지로 진정 효과를 크게 얻기도 한다. 시어머니를 쓰담쓰담 안아드리면 심한 감정 기복이 가라앉을 때가 종종 있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에 대해 누구보다 깊게 고민했던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도 치매에 걸렸다. 칸트조차 걸리는 병이라면 누가 걸린들 어쩔 수 없다. 치매에 걸린 환자가 있는 집안은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의 시간을 갖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가족이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나의 시간을 전부 ‘간호’의 시간으로 만들면 삶이 피폐해지고 불행해진다.
의식적으로 취미생활도 하고 친한 사람들과 자주 어울려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탁구 동호회 사람들과 즐겁고 신나게 탁구 치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곤 한다. 어려운 경기에서 득점할 때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환호해서 탁구장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한다. 괴로운 상황이라고 해서 괴로운 감정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느끼는 소소하게 밝은 감정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장 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