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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524주일 [율법이 모든 인간에게 확정한 정죄]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롬3:19-21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연인인 상태에서 영적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영적 상황에 대한 무지]
자신이 처해 있는 영적 현실에 대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처한 대단히 중요한 사실들을 모르고 있다.
즉 인간은 영원한 멸망의 세찬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것은 하루 이틀 있다가 없어질 상황이 아니라, 영원히 나쁜 상황이고, 그런 상황에 빠져 나올 수 없는 현실 속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정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기서 헤어나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 내게 닥쳐진 심각한 문제는 어떤 것인가.
이것을 먼저 아는 것도 쉽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그럴 것 같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뭔가 한없이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부끄럽게 느끼면서도, 계속 그 길로 가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의 인식 속에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인간 행태 전체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세상에는 안정된 질서가 전체를 감싸고, 균형있게 가지 않는다.
뭔가 우리 사회는 혼란이 있고, 이런 혼란은 거짓된 의도를 통해서 더욱 부추겨진다.
이런 불안정 속에서 우리는 헤매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참 우주적 질서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이 있을지라도, 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 거짓과 참된 것을 일부러 거절하는 것들이 가득해서, 우주의 절대질서가 도전을 받고 있다.
그 속에서 사는 우리는 분별하는 능력이 너무 부족하다.
그저 세상이 이해가 잘 안될 뿐이다.
인생이 매우 불안한 상태에 있다고 의문을 갖고 있지만, 절대 질서가 눈앞에 확 밝히 보이지는 않는다.
각 개인들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완전한 절대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혼란함 속에서 계속 헤맨다.
옳은 것을 하고, 옳지 않은 것을 거절할 수 있지만, 때로는 계산하여 옳지 않은 일들도 한다.
경우에 따라, 이런 결정이 그저 무작위로 이루어진다.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행동한다.
이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어제도 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할 것이다.
불완전한 상태를 내가 더욱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대단히 의심스러운 삶의 굴레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고민하기 보다는, 아예 모르겠다고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
인생에서 큰 충격을 받은 상황 속에서 부분적으로만 생각하지, 가급적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굉장히 중요한 영적 자아의 문제를 고민하기 보다는 모르겠다고 그냥 지나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은 옳은 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따라간다.
이 세상은 나의 오늘을 잘 속이면 누구든지 속일 수 있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나보다 조금 떨어진 미래에 대해서는 매우 무책임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절대원칙이 아니라, 옳지 않은 것에 항상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리를 내려주시고, 진실을 알게 하신다.
[진리는 참과 진실에 대한 정보]
진리를 알면, 우리 현실을 알게 되고, 그렇게 해서, 우리를 살려주시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 개인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정보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다.
우리에게 영원토록 펼쳐진 운명이라면, 하나님께서 진리로 알려주실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망가트려도 책임지지 않는 세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그렇다면, 잘 들어야 할 것이다.
더러는 귀에 듣기 싫어도, 그 명령이 거북스러워도 따라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진리로 이끄시는 모든 것에 대해서 순종하는 자들 되자.
[모든 인간을 향한 율법의 선고]
본문은 엄청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타락한 인류가 죄에 빠져 있는데, 그동안 회개하지도 않았다. 그런 인류에 대해 내리신 하나님의 유죄선고가 공포된다.
모든 사람이 율법이 말하는 것은 온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임을 다 알고 있다.
율법은 문맥에 따라 다르지만, 본문에서는 구약성경 전체를 말한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포함한다.
마음의 율법을 받은 사람들도 포함된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율법이 적용된다.
율법의 법적 효력이 적용되는 범위는 온 세상이다.
그러므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온 인류다.
율법이 선포하는 것, 성경이 말하는 대상은 온 인류다.
예외가 없다.
모든 인간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율법의 권세 아래 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몇주간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점을 잘 알고 있다.
롬2:11-15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유대인은 기록된 율법 아래 있다. 유대인에게는 모세의 율법이 있다.
이방인도 율법을 갖고 있다.
조금 낮은 수준의 율법이 아니라, 동등한 수준의 율법을 갖고 있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주어져 있다. 그들의 마음에 기록된 율법이다.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 없이 망하고, 율법 아래서 범죄한 자는 율법 아래서 심판받는다.
결국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지 율법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기록된 성문법이 없어도, 양심의 법 아래 있다.
양심, 마음의 생각, 마음에 새긴 율법.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온 우주의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분의 통제 아래 있다.
그분이 세상에 율법을 주셨다.
율법은 그의 주권 아래 있는 모든 자에게 주신 것이다.
[최종 선고 앞에 오로지 침묵만이]
인류는 구속받지 않은 자연상태에서 유죄선고에 대해서 방어할 어떤 것도 없다.
모든 기소들은 확정된 유죄다.
여기까지 오면,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모든 입을 막는다고 말하고 있다.
율법에 의해, 최후 유죄선고가 내려진 자들, 곧 모든 인간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게 된다.
더 이상 변명할 수도 없고, 공적 결론이 내려진다.
그 선언을 보며, 멍하게 초라한 모습으로 있다.
완전히 나락에 떨어진 자신을 맞이하면서, 무력하게 서 있게 된다.
모든 입을 막는다는 것은 법적 용어다.
법정에서 피고가 반박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 앞에 입이 다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고는 어떤 인간도 감히 변명할 수 없는 최종판결이다.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함이다.
이것은 신약성경에서 한번 나온 말인데, 죄가 확정된 상태에서 판결이 반복될 가능성이 없이, 그 형벌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이것은 재판장이신 분이 죄를 고발하는 원고로서, 피고인인 인류에 대해 반드시 처벌한다는 결론이다.
공의를 실현하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
더 이상 변명할 수 없고, 최종선고를 내렸기 때문에, 죄인에게는 절대적 침묵밖에 없다.
계8:1,5-6
1.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간쯤 고요하더니
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6.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아직 완전히 멸하기 전에, 마지막 때에 이 세상에 치명적인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
천사가 나팔을 불기를 준비하고 나서, 일곱번째 인을 떼실 때, 온 세상에 완전한 적막이 온다.
이 적막은 폭풍전야 같다.
이 때의 침묵은 재앙이 오기 직전의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율법으로 의로워질 자는 없다]
본문에서는 혹시 아주 예외적으로 율법을 다 지켰다고 할 자도 있다고 할까봐, 미리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실 자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을 가능성은 없다.
율법을 완전히 지켜서 의롭게 될 사람은 없다.
그런 시도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에 물들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훌륭할지라도, 바탕이 더럽다.
진심으로 선하지 않다.
인간은 그럴 능력도 없고, 그렇게 할 마음도 없다.
마음의 바탕은 늘 악을 향해 있다.
율법을 통해 자기가 지옥에 떨어질 것을 구원할 수 없다.
율법은 사람을 의롭게 만들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만 천하게 드러낼 뿐이고, 율법은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말할 뿐이다.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아담 이후에 타락한 모든 인류 중에 율법의 요구를 충족 시킬 자는 전무하다.
인간은 이 분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능하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 때문이 아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받을 자가 없다.
시143:2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로마서에서는 인생이라고 하지 않고, 육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할 육체가 없다고 한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 뿐]
육체라는 표현은 영적인 것은 완전히 무능하다는 것이다.
율법은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것만 말할 뿐이다.
율법 아래서 사망 외에 다른 선고를 내릴 수 없다.
인간에게는 사망만 합당하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기 때문이다.
롬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율법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이 아니다.
오히려 죄를 잡아내는 근거가 된다.
율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닫게 해서, 회개하는 길에 이르게 한다.
누가 율법을 대하고, 자기 죄를 깨닫고, 통회하면, 가장 중요한 율법의 목적은 이룬 것이다.
율법 자체는 해결책이 아니라, 해결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아무리 순종해도 죄의 문제는 남아있다.
갈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예수님을 제외한 어떤 인간도 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원의 손길이 필요하다.
율법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 오기까지만 필요하다.
율법은 문제점을 드러내기 위한 과정이다.
유대인들은 이점을 오해하고 있었다. 율법을 잘 지켜서 의인이 되려고 했다.
[유대인의 문제 아닌가]
우리 중에도 약간 그런 생각을 가진 자들도 있다.
우리는 이방인이여서, 로마서의 말씀은 직접 상관없다고 할 수도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로마서의 말씀은 우리 이방인에게 말하고 있다.
너희 마음에 율법이 기록되어 있다.
비록 유대인이 아닐지라도, 너희 마음의 율법은 똑같은 권위로 정죄하고 있다.
그러므로, 로마서를 읽던 아니든, 모든 인류는 죄 아래 있다.
너희도 심판자의 공의에 의해, 율법이라는 장치를 통해 정죄받고, 멸망을 선고받았다.
오늘은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주 예수 만나기 전에 우리는 선고가 이미 내려져 있었다.
그러므로, 감히 변명할 생각은 하지 말라.
아무도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다.
너희는 영원한 지옥의 멸망을 판결 받았다.
여기서 충격받지 않을 자가 없다.
인간 세계 모두 여기서 대충격을 받고, 떨고 있어야 한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인류에게 닥친 일들 중 가장 무서운 하나님의 계시다.
여기서 절망을 체감하지 않을 자가 없다.
그냥 설교소리로 듣는다면, 너무 모르는 것이다.
모른다고 선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르고 지옥에 갈 수 있었던 자들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인간은 인간을 두려워하고, 세상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런데...잠깐...대반전!]
로마서는 여기서 대반전을 주고 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
이전까지 율법에 의해서 인류가 정죄받아, 비극적인 절망에 짓눌려 있었다면, 이제는 새로운 희망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인류, 완전히 타락해버린 인간, 자기 영혼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인간에게 다른 길을 소개하고 있다.
망하는 길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소개하고 있다.
로마서는 그동안 하나님 없이 사악한 인간의 어두움을 그렸는데, 이제 복음의 소망을 말하고 있다.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모든 인류를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라는 구석에 몰아넣고, 현실을 직시한 다음, 소망의 은혜의 창문이 조금 열린다.
구원은 좁은 틈 사이 빛으로 내려쬐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의의 빛이다.
[나타났다! 하나님의 의가!]
마침내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완전히 다른 루트로 온 것이다.
율법의 존재는 유대인에게 왜곡된 신앙을 발전시켰다. 그러므로, 오히려 더욱 지옥불에 가까워졌다.
인류에게 절실한 것은 율법이 아닌 하나님의 긍휼의 손길이었다.
이미 존재했던 것이 마침내 나타났다.
구원의 진리는 예수 오기 전에도 이미 있었는데, 이제는 드러나게 되었다.
[마지막 희망...긍휼하심과 희생]
율법 외에 구원의 희망,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한 불행에서 구원하시려고 예수를 보내주셨다.
이것은 우리가 잘난 점이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는 오직 죄와 사망, 멸망에 합당함뿐만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것이다.
이쁜 구석이 하나도 없지만, 하나님의 인자하신 성품으로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하나님의 긍휼은 그냥 대충한 것이 아니다.
남아 돌아서 그냥 주신 것이 아니다.
그 아들을 희생할만큼, 완전한 헌신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분이 우리의 운명을 바꾸었다.
그분이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주인공이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우리의 영원한 희망, 영원한 행복, 축복이다.
마음 속에서 간절히 사모하는 행복의 근원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기치 있는 것도 없다.
내 삶보다 귀한 것, 내 영원한 존재보다 귀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께 영광돌리고, 우리 주위에 계속 고백하는 자들 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