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일 연중 제9주간 화요일 (마르12,13-17)
복음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13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14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16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지혜로 충만하신 예수님의 놀라운 대응!>
예수님 시대 식민지 유다 사회 안에서 나름 어깨 힘주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었습니다. 최근 그들의 심기를 무척이나 불편하게 만드는 존재가 있었으니, 마치 혜성처럼 떠올라 군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예수라는 인물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예수님께로 집중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분 입에서 나오는 한 말씀 한 말씀이 유다 본산을 강력하게 성토하고 비판하는 내용이었으므로,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그들은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 힘을 합칩니다.
머리 좋고 언변이 탁월한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보낸 이유는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바리사이와 헤로데 당원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잘 어울리지 않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공공의 적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우기 위해 의기투합한 것입니다.
사악한 자들은 먼저 감언이설로 예수님을 칭찬합니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마르 12,14)
웬일로 이렇게 호의적인 모습을?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즉시 난감한 질문 하나를 던집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여기서 말하는 세금은 인두세를 가리킵니다. 이 세금은 로마의 은화로 치루어야만 했습니다. 불과 이틀 전에 메시아로 불리셨고, 또 메시아로서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 ‘바쳐야 한다.’고 대답하시면 백성들 앞에서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됩니다. 인두세는 유다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방인에 대한 복종을 의미하는 가장 증오를 받던 표지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예수님께서 ‘바치지 말라.’고 대답하신다면, 제국에 대한 반역이며 혁명가로 오해받게 됩니다. 적대자들은 이 질문을 통해 예수님을 로마의 적, 폭동의 선동자로 몰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난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지혜로 충만하신 예수님의 대응이 놀랍습니다.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라 하십니다. 데나리온은 세금 바칠 때 통용되던 은화였습니다. 당시 데나리온 동전에는 황제의 초상과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윽고 예수님께서 절묘한 마무리 말씀으로 위기를 넘기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유다인들이 식민지 안에서 황제의 돈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황제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카이사르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하느님의 권리를 더럽히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가르치십니다. 국가 권위와 종교 권위가 저마다 적정한 범위 안에 머문다면 양쪽 다 정당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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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요셉 신부님]
<미래의 유토피아는 없다>
워싱턴 D.C. 지하철 랑팡역,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에 야구 모자를 눌러 쓴 청년이 낡은 바이올린을 꺼내 들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주한 지 6분이 지났을 때 한 사람이 벽에 기대어 음악을 들었고 43분 동안 일곱 명이 청년의 바이올린 연주를 1분 남짓 지켜보았습니다. 스물일곱 명이 바이올린 케이스에 돈을 넣었고 그렇게 모인 돈은 32달러 17센트였습니다.
다음날 신문을 펼친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지하철역에서 공연하던 청년은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날 350만 달러(한화가치 30억 원)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들고 43분 동안 멋진 연주를 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을 오가던 1,070명은 단 1초도 그를 쳐다보지 않고 바쁘게 지나갔습니다.
이 공연을 제안한 ‘워싱턴 포스트’는 현대인이 일상에 쫓겨 자기 주변에 존재하는 소중한 것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현대인의 문제를 꼬집고 싶었던 것입니다.
며칠 전 한 신자분과 대화 중 유토피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언젠가 건설될 하느님 나라. 그것이 유토피아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종말을 향해 가고 있고 결국 주님이 오실 때는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한 대탕녀 바빌론처럼 영원한 바다의 심연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많이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늘 제1독서에서 마지막 날에 이럴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날이 오면 하늘은 불길에 싸여 스러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녹아 버릴 것입니다.”(2베드 3,12)
그렇다면 미래에 유토피아가 이 세상에 건설될 것이라는 희망은 버리는 게 좋습니다. 사실 미래의 유토피아를 말하는 이들은 지금의 행복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요즘 선거철이라 그런지 운전하다보면 여러 후보자들의 공약이 걸린 현수막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은 자주 헛웃음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여전히 미래의 유토피아 이야기를 하는 공약들이 많습니다. 이런 공약들이 먹히는 이유는 우리는 여전히 현재의 상태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가리키는 곳만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속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유토피아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미래의 유토피아를 위해 지금 당장 기도하고 묵상하고 주님에 대해 더 알아가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쳐야하는지를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동전 하나를 가져와보라고 하십니다. 그 동전에는 로마 황제의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런 돈에 집착하느냐고 하시며 황제에게 줘버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에나 집중하자고 하십니다.
하지만 돈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현실적이고 이상주의자라고 말합니다. 돈이 참 행복을 가져다줄 현실적인 대안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행복은 여전히 미래에 돈을 충분히 벌게 되었을 그 때에 있습니다. 우리가 뽑아주어야 할 지도자들은 ‘지금’을 말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미래의 유토피아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하느님 나라’를 말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지금 이 순간 마음만 바꾸어먹으면 만날 수 있는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의 나라입니다. 돈과 상관이 없습니다. 미래에 건설될 눈에 보이는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행복은 지금 이 순간 눈을 감으면 내 안에서 펼쳐집니다. 지금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것이 하느님 나라입니다.
사라져가는 이 세상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그나마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이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대한 비전이 없으셨습니다. 노예제도를 그대로 인정하셨고 로마의 지배를 받는 것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로마에 세금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선거에 나가셨다면 아무도 찍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우리 옆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만 당부하셨습니다.
배부른 돼지를 만들어주겠다는 이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지금의 부족한 현실이 아니라 미래의 유토피아 건설에 대한 환상입니다. 그리고 그 환상을 심어주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입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줘 버리고 우리는 하느님의 것인 우리 자신을 매일 주님의 것으로 봉헌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출처: 복음말씀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