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기록’은 언제나 관심을 모은다. 한 시대를 뛰어넘는 과거사에서 ‘처음’이 갖는 의미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역사는 어떨까. 최초의 자동차는? 첫 사망사고는? 가장 먼저 자동차 운전면허를 딴 사람은? 자동차에 얽힌 갖가지 최초의 기록들을 알아봤다.
자동차의 기원은 1482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구상한 태엽 자동차다. 벽시계 태엽을 감아주다 열쇠가 튕기면서 이마를 다치게 됐는데 이때 태엽의 풀어지는 힘을 이용해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태엽자동차가 장난감 수준이라면 진정한 최초의 자동차는 증기를 이용한 자동차라고 할 수 있다. 1678년 벨기에 북부 플랑드르의 성직자였던 페르디난드 베르비스트가 중국 황제를 위해 만들었다는 60㎝ 크기의 작은 증기 자동차다. 이후 1769년 프랑스의 공병장교 니콜라스 조셉 퀴뇨가 대포를 견인할 목적으로 발명한 증기자동차도 꽤 유명하다. 시속 5㎞에 방향전환이 어렵고 수시로 보일러 물을 채워야 하는 불편이 있었어도 당시에는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평가받았다. 어느 날 제동장치가 없는 이 차를 파리 시 교외에서 몰고 가다 정지하지 못해 벽에 충돌해 일어난 사고는 최초의 자동차 사고로 기록됐다.
니콜라스 퀴뇨의 증기자동차. <출처 : Roby ate en.wikipedia.org>
국내에서는 1901년 세계여행 도중 우리나라에 들렀던 시카고대학 교수 버트 홈스가 자동차 한 대를 빌려 타고 서대문 인근을 지나다 소달구지를 피하지 못하고 충돌한 사건을 첫 사고로 기록하고 있다. 1913년 당시 총리대신이던 이완용의 아들 이항구와 이완용의 사위 홍운표가 요정에서 흥청망청 술을 마신 뒤 전세택시를 타고 기생들과 놀러 가다 일곱 살 난 아이를 친 것이 첫 사고라는 의견도 있다.
퀴뇨의 증기자동차, 최초의 교통사고
최초의 사망사고는 1869년 8월 여성 천문학자로 이름을 떨쳤던 메리 워드가 아일랜드 시골 길을 달리던 중 구덩이에 차가 크게 흔들리면서 튕긴 후 철제바퀴에 깔려 그 자리에서 사망한 사건이다. 앞서 1834년 주행 중은 아니지만 차가 전복되면서 석탄으로 동력을 얻는 보일러식의 증기엔진이 폭발해 화부와 승객 두사람이 현장에서 숨을 거둔 일도 있다.
특히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 최초의 자동차 규제인 ‘적기조례’가 만들어지게 된다. 당시의 자동차는 부피가 크고 속도 또한 빨랐다. 또 검은 석탄 연기로 길가의 빨래를 쉽게 더럽혔고 무쇠 재질의 바퀴가 도로를 파헤치면서 주민들의 민원이 줄곧 제기돼 왔다. 여기에 자동차와 경쟁 관계인 마차·기차 업자들의 의회 로비까지 더해지면서 자동차 규제가 현실화됐다.
결국 1865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이른바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이라는 ‘적기조례’를 만들고 자동차의 운행을 제한했다. 간략히 살펴보면 자동차에는 3명의 운전수를 태우고 이 중 한 명은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가지고 전방 55m 앞에서 자동차가 오고 있다고 소리치거나 후방 55m에서 자동차가 지나갔다고 붉은 깃발을 흔드는 일을 맡았다. 또 최고속도는 시속 6.4㎞ 이하, 특히 시가지에서는 시속 3.2㎞로 제한했다. 이 제도는 1896년까지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자동차산업의 위축을 가져왔다.
전기자동차 루나 로버(우측). 1971년 7월 우주선 아폴로 15호에 실려 세계 최초로 달에
착륙해 최고 시속 16㎞로 약 35㎞를 달렸다.<출처: wikipedia>
최초의 자동차규제, 속도·인원 규정
최초의 가솔린자동차는 카를 프리드리히 벤츠가 발명한 삼륜차 ‘벤츠 페이턴트 모터바겐’이다. 1883년 10월 독일 만하임에 세계 최초의 자동차 공장 ‘벤츠 & 시에(Benz & Cie)’를 세운 그는 1885년 드디어 세계 최초로 가솔린엔진의 3륜차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0.85마력의 힘을 내는 1기통 4엔진의 이 차는 배기량은 954cc에 차체 중량은 250㎏, 최고 시속은 16㎞였다.
최초의 하이브리드카는 포르셰의 창업주인 오스트리아 출신의 페르디난드 포르셰 박사가 1899년 내놓은 믹스테(Mixte)이다. 엔진의 힘으로 전기를 만들어 다시 모터를 구동하는 방식이다. 100여 년 후인 1997년 10월 출시된 프리우스(Prius)는 친환경적인 기능을 자랑하면서도 1ℓ의 연료로 보통 자동차보다 2배 이상 달렸다. 출시 당시 일본 기준 연비는 ℓ당 28.0㎞였다. 프리우스는 2009년 200만대를 넘어서며 세계 최초로 하이브리드 양산에 성공했다.
세계 최초의 양산 하이브리드 자동차 도요타 프리우스.<출처 : Gnsin at en.wikipedia.org>
세계 최초의 자동차회사는 1888년 독일에서 가솔린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카를 벤츠에게서 특허 사용권을 사와 1889년 설립된 프랑스의 파나르 르바소로 기록됐다. 미국에서는 1903년 설립된 포드사에 앞서 1893년 찰스 듀리에가 그의 동생 프랭크 듀리에와 듀리에 모터 왜건 회사를 설립했다. 이에 앞서 자동차 생산 쪽에서는 올즈모빌이 1902년부터 생산 라인을 가동하고 있었고 이어 포드사가 수천 대의 차량을 생산하며 부흥기를 열었다.
처음으로 시속 100㎞를 돌파한 전기車
최초로 운전면허를 획득한 이는 1893년 3월 프랑스의 파리경찰이 실시한 최초의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한 에밀 르바소다. 출발과 정지, 커브 주행으로만 면허를 발급했던 당시 최초로 액자크기의 면허증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1913년 일본인이 운영한 최초의 운전면허 학원인 ‘경성자동차 운전자 양성소’에서 면허를 딴 이용문씨로 전해졌다. 반면 미국 유학을 갔던 이진구씨가 국내의 이씨에 앞선 1905년 뉴욕에서 운전기술을 배워 현지에서 면허를 취득하기도 했다.
자동차로 가장 처음 시속 100㎞를 돌파한 이는 벨기에의 자동차광 카뮈 제나티다. 카뮈는 1899년 4월 당시 전기자동차로 최고시속 64㎞를 기록하며 유명세를 타고 있던 영국 귀족 사세로프 루바경에 도전장을 던졌다. 3㎞ 자갈길 코스의 경주를 마친 결과 루바의 전기자동차는 시속 69㎞를 기록한 데 반해 카뮈의 전기자동차는 시속 103㎞를 보이며 루바의 콧대를 꺾었다.
최초의 국산자동차는 1955년 8월 자동차 정비와 재생 업체였던 국제차량공업에서 제작한 대한민국 최초로 자동차 생산의 시작이라는 의미의 ‘시발’(始發) 자동차다. 국내에서는 최초의 지프형이기도 한 시발자동차는 미군 지프의 부품을 재생해 사용, 국산화 논란에 휩싸였으나 1963년 5월 단종되기까지 누적대수 2,235대를 생산하며 큰 족적을 남겼다.
이밖에 최초의 운전사는 1915년 영친왕의 미국제 오버랜드를 운전한 윤권씨가, 1919년 3월 경성자동차 강습소에서 23세의 나이로 면허시험에 합격한 전주 출신의 최인선씨가 최초의 여성 운전자로 등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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