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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國立民俗博物館)
국립민속박물관(國立民俗博物館,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은 한민족과 세계 각국의 생활양식·풍속 및 관습과 이에 사용된 도구 및 자료의 수집·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 및 교류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의 소속기관이다. 1992년 10월 30일 발족하였으며,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7에 위치하고 있다. 관장은 고위공무원단 나등급에 속하는 학예연구관으로 보한다.
본 박물관의 역사는 1924년 일본인 민속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해 창립된 조선민족미술관이 모태다. 그러나 실질적인 박물관의 시작 연도는 1946년으로 미군정 시대에 개관한 국립민족박물관으로 본다. 그 후 1950년 국립민족박물관은 국립박물관에 흡수 통합되어 남산분관이 됐지만 1966년에 한국민속관으로 분리되었는데, 당시에는 독립된 직제나 조직이 없어서 문화재관리국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장주근 상근전문위원이 실질적 운영을 맡았다고 한다. 이후 1975년 한국민속박물관으로 바뀌었다.
변천사 만큼이나 본 박물관은 그 위상이 바뀔 때마다 박물관의 위치와 사용하는 건물도 계속 바뀌었다. 본 박물관은 1946년 개관 당시에는 남산 구 시정기념관(통감 관저), 1966년부터 1975년까지 수정전, 1975~1992년까지 경복궁 향원정 뒷편 구 국립현대미술관 건물(1998년 철거)을 사용해 오다가 1993년 2월 구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선원전 터)에 자리잡았다. 현재 쓰는 건물은 경복궁 동편에 위치해 있고, 입구도 동쪽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맞은편 궁궐벽을 뚫고 나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경복궁 서남쪽에 있는 경복궁역 앞 구 중앙청 후생관에 위치해 있으니 착각하지 말 것.
현재 본 박물관 건물 외관은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재들을 조합하여 디자인한 것이다. 건물의 계단은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제23호), 상부의 5층 건물은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 난간 위의 평면과 부속 건물은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난간 아랫 부분과 건물 측면은 금산사 미륵전(국보 제62호), 상륜부 난간은 경복궁 근정전(국보 제223호)에서 따온 것. 말이 따온 거지 사실상 짜깁기한 것이다. 이 때문에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보다 더 높은 괴악한 모습을 보여준다. 2013년에는 해방이후 최악의 건물들에 20위 중 15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 괴랄한 모습 만큼이나 건물의 탄생에 얽힌 비화도 여러모로 대단하다. 1966년 문화재 관리국은 국립중앙박물관 설계와 관련해 "건물 자체가 어떤 문화재의 외형을 모방함으로써 콤퍼지션 및 질감이 그대로 나타나게 할 것이며 여러 동이 조화된 문화재 건축을 모방해도 좋다."고 규정을 정했다. 당연히 이러한 규정은 당시 건축계에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건축계와 문화계에서는 건축의 창의성을 무시하는 일이며 단순한 모방은 전통을 계승하기는커녕 왜곡할 수 있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당시 주요 건축가들은 정부의 이러한 처사를 문화적 만행이라 규탄하며 설계 공모 자체를 거부했고, 결국 응모된 10여 개의 설계안 중에 강봉진의 설계안이 당선되었다. 디자인적으로나 미학적으로 보면 김중업 건축가가 지은 주한프랑스대사관처럼 반드시 기단 만들고 기와 올리지 않은 건물이라도 한국 전통 건축의 미를 계승할 수 있고, 그게 오히려 더 발전적인 방향이다. 하지만 속전속결을 강조하던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는 이런 고려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은 내부 전시관만 둘러볼 수 있을 뿐, 건물 기단 윗부분에 있는 넓은 외부 공간에는 관람객이 자유롭게 거닐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에펠탑이나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미드도 국적 불명인 최악의 디자인이라는 비판을 받다 시간이 지나니 문화적 아이콘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이들이 방문하고 드나들며서 친숙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은 방문자가 자유롭게 둘러볼 수도 없고, 대부분의 방문자들이 한국의 유명 전통 건축물들을 어떻게 따왔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리고 대다수가 모르고 넘어가는 사실이 있는데, 현재 본 박물관 건물 터는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어진들을 모신 건물인 선원전이 있었던 곳이다. 선원전은 일제 시기인 1932년에 장충단에 있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모신 절인 박문사로 팔려나갔고, 더욱이 현 건물을 지을 당시 무작정 땅을 파냄으로써 현재로써는 선원전의 정확한 구조와 위치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결국, 본 박물관 건물은 군사정권 시절 최악의 만행 중의 하나로 정체불명의 기괴한 건물의 건축으로 끝난 게 아니라 추후 이뤄질 경복궁 복원 사업의 진행 자체를 어렵게 만들었다. 경복궁을 훼손한 일본조차도 헤이조쿄 등처럼 100년 단위로 문화재를 장기 복원하는 판인데 말이다. 그 때문에 두고 두고 건축가들이 뽑은 최악의 건축물로 자주 뽑히는 단골 손님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서 결국 현 박물관 건물은 2030년까지 철거될 예정으로 있다. 박물관이 위치한 경복궁은 현재 순차적으로 일제가 의도적으로 훼손한 건물을 복원시키고 있는데 이전 선원전 위치로 2030년 이후 계획에 있기에 2031년 이전에는 무조건 이전이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다.
사실, 숭유억불을 국시로 삼던 조선의 정궁 안에 불교 건축을 짬뽕해놓은 건물이 있다는 괴이함 때문에 2000년대 들어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고 실제로 2001년경 문화관광부는 이전 용역 보고서를 내기도 하였다. 사실, 이 당시만 해도 이촌 쪽의 부지를 매입해 새로 국립 민속 박물관 건물을 지을 예정으로 봤기에 용산으로 이전 가능성이 제일 컸던 상황이었다. 가장 유력했던 부지는 국립중앙박물관 옆 문화체육관광부 부지를 쓸 가능성이 높았으나 지금보다 협소하다는 문제가 있어서 여러 곳의 후보지를 택해서 장기적으로 선택할 예정이였다.
이에 따라 단계적 이전 건립 계획에 의해 1단계로 2020년까지 지원 시설인 개방형 수장고와 정보 센터를 우선 건립하고, 2단계로 2024년부터 2030년까지 핵심 시설인 본관 이전 건립을 추진할 예정이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기존의 후보지가 아닌 행정 수도인 세종특별자치시로의 이전이 유력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1단계 계획인 개방형 수장고 및 정보센터는 현재 경기도 파주시 법흥리에 건설 중에 있다.
그러나 현재 논란이 되는것은 본관의 이전으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문재인 정부 초대 문체부 장관인 도종환 장관이 오래전부터 국립 중앙 박물관 옆 부지에 국립한국문학관 설립[4]에 주도적으로 나섰다는 점. 또한 용산의 문체부 소유부지가 협소하다는 점. 그 때문에 용산 미군 기지 이전 부지 중 일부를 매입해서 박물관 짓는 방안은 서울시의 반대가 심하다는 점. 기획 재정부는 용산 기존 계획 부지와 세종시의 박물관 단지 외의 다른 방안은 사유지 매입에 따른 과도한 예산 집행 문제로 반대한다는 점을 들어서 세종시 박물관 이전이 가장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민속 박물관의 주 관람객이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임을 감안하면 접근성이 나쁜 세종시로의 이전을 극력하게 반대하는 문화계의 반대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전 문제로 인해서 서울시와 용산구, 세종시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박물관의 세종 이전을 반대하며 경복궁 인근 대한항공이 호텔을 지을려다 실패한 舊 미국 대사관 숙소 부지에 이전을 해야 한다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후 2019년 2월. 대한항공에서 舊 미국 대사관 숙소 부지를 연내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여러 회사들이 눈독 들이고 있지만 서울시 허가 없이는 대부분의 개발이 불가능하고 서울시에서 상업과 주거용으로 개발하는 안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정부와 서울시가 공동으로 부지를 인수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마 이 부지를 정부와 서울시가 인수하면 국립 민속박물관이 여기로 이전할 가능성이 크다. 세종시로 이전하기에는 서울시의 반발과 문화계의 반발이 만만치않기 때문이다.
현재 세종시 국립 민속박물관 이전은 격렬한 반대로 이전 타당성 연구용역 발주 자체가 철회된 상태이다. 2019년 2월 22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세종시가 국립 민속박물관을 세종시로 이전하고 국립자연사박물관도 세종시에 건립해달라고 건의했지만 문화계 반발이 심해 가능할지가 미지수이다.
하지만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과밀화 해소, 지방분권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부각되면서 정부안이 힘을 받는 모습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국립민속박물관을 세종시로 이전하기 위한 정부예산안 반영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문화체육관광부는 민속박물관의 세종 이전에 매우 적극적인 모습이다. 실제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2017년 6월 취임과 함께 민속박물관 이전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고, 박양우 현 장관 역시 이전에 긍정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속박물관은 행복도시 S-1생활권 국립박물관단지 2단계(11만 5천㎡) 부지 내 45,815㎡에 1551억원(국비 100%)을 들여 이전하는 안이 유력시된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의원은 국립민속박물관 세종 이전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윤성용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접근성만 본다면 사대문 안에 있는 것이 유리하다"면서도 "더 넓은 전시 공간과 교육시설 등을 확보하고, 침체한 민속학을 살리려면 확장 이전이 필요하다"며 세종 이전이 사실상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종로구 후보인 이낙연은 송현동 부지에 이전을 발표했고, 황교안은 국립민속박물관 세종 이전에 반대하면서 세종 이전이 무산될 것으로 보이지만 송현동 부지는 개발 규제와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를 공원화하기로 하면서 이전이 쉽지 않은데다 정부의 국립민속박물관 세종 이전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에 국립민속박물관이 세종으로 이전될 것으로 보인다.
민속(民俗)은 우리 민족의 삶의 내용과 방식을 담고 있는 생활양식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 속에서 암시적 혹은 명시적으로 표현되는 민속은 우리의 삶을 주도하며 또한 이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 접근토록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또한 능동적으로 세계에 대처하기도 합니다.
우리 국립민속박물관은 바로 이러한 민속을 표현하는 공간이자 집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정의하면, 민속박물관이라 함은 한 특정한 물리적 공간 내에서 한국인과 한국사회, 그리고 한국문화를 대상으로 하여 이와 관련된 사회문화적 내용을 저장하고 있는 문화공간이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우리 박물관의 기본 기능은 민속자료의 수집, 전시, 연구, 사회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바로 민속자료의 수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속자료는 여타 고고학이나 미술사 자료와는 달리 우리 조상의 일상적인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눈에 익숙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민속자료가 생활양식의 변화로 심한 변모 현상을 보일 뿐만 아니라 소멸위기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박물관에서는 급속히 소멸되어가는 민속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 구입, 기증, 기탁 등의 여러 방법으로 민속자료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2017년 10월 현재 131,140점의 방대한 유물을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박물관은 대한민국 제1의 민속생활사 박물관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소장품의 대부분이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들입니다. 강원도 산촌 민속 조사에서 수집한 나무 김칫독, 새색시가 시집 올 때 곱게 입고 온 치마 저고리, 이장을 하다가 출토된 조선시대 출토복식, 힘든 농사일의 동반자였던 농기구, 개인 간의 토지거래 기록인 토지매매 고문서 등과 같이 우리의 인생과 일상, 생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물들입니다. 우리 박물관에서는 이 같은 소장품들을 쓰임새(용도)를 기준으로 분류하여 관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박물관 소장품들을 쓰임새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의생활
입을 것(의생활)은 먹을 것(식생활), 살 것(주생활)과 함께 인간의 생활에서 무척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두꺼운 외투 없이 추운 겨울을 날 수 없는 것처럼 옷은 연약한 인간을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보호해주는 매우 중요한 도구이자 인간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들어주는 날개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예부터 옷은 실용적인 목적에 부합되는 기능성뿐만 아니라 장식성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박물관에는 일반적으로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짚신과 나막신부터 왕이 제사 지낼 때 문무백관이 착용했던 조복(朝服)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던 의복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한편, 의복과 신발 등 몸에 직접 걸치는 것들뿐만 아니라 여자들이 화장할 때 사용하던 경대(鏡臺)와 비녀, 안경집 등의 소품들도 다수 소장하고 있습니다.
2. 식생활
먹을 것(식생활)은 인간의 본능과 연결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입을 것(의생활)과 살 것(주생활)은 인간이 존재한 시점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능과 문명이 점차 발전하면서 생긴 개념이라고 한다면 식생활은 인간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에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루에 한 끼라도 거르면 배에서 신호가 오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인 것입니다. 우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식생활 관련 유물들은 의생활처럼 대상 자체가 아니라 어찌 보면 식생활 관련 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해버리는 음식물은 소장할 수 없기에 우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식생활 관련 유물들은 주로 음식물을 저장했던 그릇들입니다. 밥을 먹을 때 사용한 밥그릇과 국그릇 그리고 수저를 비롯해서 김치나 고추장, 된장 등을 저장했던 항아리와 명절이면 떡을 만들려고 방아를 쳤던 절구 등의 각종 음식과 관련된 유물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3. 주생활
사람은 집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혼례를 치르며 죽음을 맞이합니다. 또한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일이나 손님을 맞이하는 일들도 모두 집에서 일어납니다. 주생활이란 이렇게 집과 관련된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인간이 살기에 가장 좋은 터를 잡기 위한 사상적 체계인 풍수지리(風水地理) 관련 서적을 비롯하여 동서남북을 알기 위한 도구인 윤도 등은 집자리를 잡기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집을 짓는 데 필요한 틀톱, 대패, 자귀 등의 도구도 주생활과 관련된 유물들입니다. 한편, 방 안을 따뜻하게 해주는 화로와 실내에서 간단한 용변을 보게 해주는 요강 등도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밤에 방 안을 환하게 밝혀준 등잔과 촛대도 빠질 수 없으며 옷이나 귀중품을 보관하는 각종 가구도 주거생활과 밀접히 관련된 물건들입니다.
4. 농업
농업은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산업시설이 들어서기 전까지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불과 40~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는 농업에 종사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길게는 우리의 할아버지 때, 짧게는 우리의 아버지 때에 농사를 짓지 않은 집이 드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현재와 같이 도시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농업과 관련된 유물들은 우리의 머릿속에 가장 쉽게 떠오르는 호미, 낫, 쟁기등과 같은 농기구들이 주를 이룹니다. 또한 농사를 짓는데 없어서는 안 될 물을 대는 데 쓰는 도구인 무자위, 용두레 등도 농업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힘들게 농사일을 하면서도 흥을 돋우는 농악대가 사용했던 장구, 북, 꽹과리, 태평소 등의 악기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매우 귀중한 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상업
농업과 어업 등의 1차 생산 활동만으로 필요한 물건을 모두 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물고기와 조개를 많이 먹을 수 있었지만 쌀과 보리 등의 곡식은 잘 먹을 수 없었고 소와 양을 기르는 사람들은 기름진 고기를 많이 먹을 수 있었지만 역시 곡식을 먹긴 힘들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생겨난 것이 바로 상업(商業)입니다. 초기에는 필요한 물건을 서로 교환하는 물물교환(物物交換)이 상업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후 현물의 교환 가치를 국가가 보증하는 일종의 징표라고 할 수 있는 돈 즉 화폐(貨幣)가 나타나면서 상업은 더욱 고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물건을 교환하거나 사고팔 수 있는 시장(市場)에 모여서 서로 필요한 물건으로 바꾸거나 물건을 사고팔았습니다. 상업과 관련된 유물들은 대부분 시장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엽전(葉錢)부터 곡식을 팔 때 양을 재는 도구인 모말, 상인이 숫자 계산을 할 때 사용하는 주판, 물건의 중량을 재는 도구인 저울 등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우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소장품들에는 칼, 활, 화포, 총기류 등의 군사 무기류와 출생, 성장, 결혼, 출세, 사망 등 개인의 일생과 관련된 유물들 그리고 놀이, 기호, 풍류, 음악 등 삶을 즐기는 데 사용된 유물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국립민속박물관은 대한민국 대표 민속생활사박물관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 열심히 소장품의 수집과 보존에 정성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