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과 인문학의 로맨스]1."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원두는 내게 60가지의 영감을 준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원두는 내게 60가지의 영감을 준다.” -베토벤
루트비히 반 베토벤
4지선다형 질문 하나를 던지는 것으로 오늘 에세이의 문을 열어본다.
[문제] 당신은 어떤 것을 가장 선호하는가?
가)이태리 식사 후 마시는 뜨거운 에스프레소 한 잔
나)휴일 오전 바게트와 함께 마시는 원두 커피 한 잔
다)해질 무렵 크루즈 선상에서 마시는 카푸치노 한 잔
라)야경 좋은 카페에서 마시는 아메리카노 한 잔
당신은 어느 것을 선택했는가? 아마도 네 가지 답이 고루 나올 거라 짐작한다. 커피는 위대하고 오묘하고 신비하다. 축 쳐진 몸 컨디션에 금방 활력을 준다. 울화가 있는 사람에겐 시원함을 준다. 창작의 영감이 필요한 작가에겐 쓰디쓴 한 잔의 원두커피가 신선한 실마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앞의 장점 모두를 초월하는 마력이 커피엔 있다. 바로 사람들의 소통을 연결해주는 이음매 노릇이 그것이다. 따라서 맛있는 와인과 양식을 즐긴 뒤 커피 한 잔으로 끝을 맺는 일이든, 호젓한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든, 휴일 낮 음악 틀어놓고 직접 머신에서 내려 마시는 커피든 누구나 다 좋아할 아이템이다. 혹은 남이섬 메타세콰이어 숲길을 걸으며 막 내린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아웃으로 동반하는 맛 또한 기가 막힐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휴일 오전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마시는 직접 내린 원두 커피를 가장 즐긴다. 물론 볶은 지 사나흘 이내의 최신 로스팅 원두로 내려야 그 향이 제격이다. 파리 특파원 시절부터 사귐을 가지면서 이젠 사적으로 만나면 ‘형님, 동생’으로 호칭하는 백건우 선생님이 직접 연주, 녹음하신 데카(Decca)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 음반을 들으며 마시는 금방 내린 원두커피의 향은 삶의 열락 그 자체이다.
글을 쓰는 일이 나의 직업이다. 글이 막힐 때 예전엔 담배를 돌파구로 삼았다. 구수한 연기 한 모금은 말로 표현 못 할 시원함을 가져온다. 담배 연기는 그렇게 막힌 부분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1995년 9월 4일자로 담배를 끊었다. 목 감기가 너무 심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주일을 끊었고 내가 담배를 안 피우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 길로 완전히 끊었다. 아직까지 단 한 개비도 안 피웠으니 24년이 지났다. 그런데 글쓰기는 여전히 내 직업이다. 요즘은 글을 쓰다 막히면 내린 커피 한 잔을 벗 삼아 그 막힘을 뚫곤 한다.
독일 음악을 논할 때 ‘3B’라고 하면 바흐, 베토벤, 브람스를 꼽는다. 그런데 이 세 위대한 음악가가 커피를 가장 좋아한 세 거장이라는 것 또한 묘하다. 특히 그 중에서도 악성(樂聖) 베토벤에게 커피는 사실상 창작의 동반자였다. 오늘 명언과 인문학의 로맨스의 실마리는 바로 베토벤이 커피를 향해 한 말을 갖고 풀었다.
“나는 매일 아침 식사하면서 내 벗인 커피를 단 한 번도 빼지 않았다. 그 친구가 없다면 모든 것이 시들할 것이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원두는 나에게 60 가지의 영감을 준다.”
커피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렇게 말했을까? 베토벤의 커피 사랑은 남달랐다. 매일 아침 커피를 직접 끓였는데 그때마다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직접 볶은 커피 원두를 한 알씩 세어서 60알을 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정확하게 넣어 커피 한 잔을 만들었다고 한다. 손님이 두 명이 오면 어떻게 했을까? 베토벤은 180알을 세어서 커피 석 잔을 만들어 손님들과 함께 그 향을 즐겼다고 한다. ‘60’이라는 숫자는 베토벤과 커피를 논함에 있어 참 의미가 있어 보인다. 볶은 원두 60개를 들여서 내린 한 잔의 커피를 통해 베토벤은 60가지의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이처럼 베토벤과 커피는 창작의 삶에 있어 필수요소이자 불가분의 관계였다. 한 잔의 커피 향이 주는 감성의 자극은 예술가들에겐 곧 영감을 받는 통로였던 셈이다.
커피를 사랑한 위대한 음악가로 바흐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드물 것이다. 음악 용어인 ‘칸타타’가 요즘 우리나라의 커피 제품명으로도 차용된 배경은 바로 바흐의 남다른 커피에 대한 기호 덕분이다. 바흐는 스스로 커피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커피 칸타타>라는 작품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그가 평생을 통틀어 기독교 관련 칸타타는 200곡 넘게 썼고 세속적 주제로는 단 2곡만을 작곡했는데 그 중 한 곡이 바로 <커피 칸타타>이다. 이 곡에 나오는 대사를 통해 바흐의 커피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작품의 짧은 줄거리를 보자. 바흐는 이 칸타타를 통해 일종의 커피 홍보 내지는 광고에 도움을 주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한다.
주인공은 커피를 좋아하는 처녀 리센이다. 그녀의 커피 사랑을 못마땅하게 여긴 아버지가 커피를 끊지 않으면 결혼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했다. 리센은 평소 하루에 커피 석 잔을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할 정도의 커피마니아였다. 하지만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일단 작전상 후퇴를 한다. 즉 부친에게 커피를 끊겠다고 하고 결혼부터 성취하였다. 그리고 결혼을 한 뒤 곧바로 다시 커피를 즐기면서 이렇게 외친다. 바로 <커피칸타타>의 리센의 대표 아리아이다.
“아! 맛있는 커피여! 천 번의 키스보다 황홀하고, 무스카텔 와인보다도 달콤한 그대여. 그대가 없다면 난 기쁨을 얻을 수 없다오.”
3B의 마지막 대가 브람스의 커피 사랑 역시 유명하다. 브람스의 커피 사랑은 이런 일화로 유명하다. 그는 그 어떤 타인이 끓인 커피를 안 마신다는 소문이 따라다닐 정도로 그 자신의 커피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자신이 마실 커피는 다른 누구도 끓이지 못하게 했는데 그 까닭이 걸작이다. 그 누구도 자신만큼 향기가 좋은 커피를 만들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몇 해 전 <신동아>는 이 땅의 커피의 역사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는 글을 실었다. 누구에 의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고종황제가 최초의 커피마니아로 알려진 걸 비판하는 글이다. 고종이 커피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아관파천이었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일본군의 무자비한 공격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1896년 2월 11일부터 약 1년 동안 조선의 왕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에 옮겨 거처한 사건이다. 아관(러시아 공관)으로 옮긴 초기에 이미 오래 전부터 커피를 즐기던 러시아 공사인 웨베르로부터 고종황제는 커피를 처음 대접받고는 그 향과 머리가 맑아지는 효과에 반해 커피에 푹 빠지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실제 러시아 공사관 생활을 마치고 경복궁이 아닌 덕수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지속적으로 커피를 즐기기 위해 ‘정관헌(靜觀軒)’이라는 서양식 건물을 짓고 그곳에서 매일같이 커피의 즐거움을 누렸다고 한다.
이는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신동아>는 그렇다고 해서 이 땅의 커피의 역사가 고종황제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는 주장을 폈다. 이미 아관파천보다 10년 앞선 1886년 윤치호가 중국 상해에서 쓴 일기에 커피를 마신 일을 기록으로 남겼다는 게 그 근거이다. 또 이보다 앞서 1884년 초대 주한 영국 영사로 부임한 윌리엄 칼스는 한성에 부임하면서 숙박시설이 없어 조선 세관의 책임자인 묄렌도르프의 숙소에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커피를 마셨다고 후일 자신의 회고록에 기록했다는 내용도 있다.
요컨대 고종 황제도 비교적 초창기에 커피를 즐긴 인물이긴 하지만 이 땅에 커피를 본격 도입한 장본인이라는 평가는 틀렸다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이야기임에 틀림없지만 필자로서는 어느 얘기가 맞든 상관이 없다. 국비로 미국 유학을 했던 유길준은 <서유견문>에서 “우리가 숭늉을 마시듯 서양 사람들은 커피를 마신다.”고 설명했다. 커피를 소개한 초창기 공식 문서인 셈이다.
유길준이 ‘숭늉 마시듯’이라는 직유법으로 묘사한 커피는 필자도 알아갈수록 오묘하고 대단한 음료라는 생각을 한다. 오죽 커피가 좋으면 파리 특파원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에스프레소부터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등 각종 커피를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이탈리아제 커피 머신 한 대를 장만할 정도였다.
필자는 커피와 와인의 세계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포도와 커피나무의 종류, 재배한 지역, 와인과 커피의 완제품을 만드는 과정 등이 어쩌면 그렇게 다양하고 깊은지 공부하면 할수록 참으로 많은 스토리를 갖고 있는 묘한 음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와인은 나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서인지 이제는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할 듯도 하다. 딱딱한 와인의 세계를 비교적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노하우를 체득한 셈이다. 커피는 와인보다 공부하기가 쉽다. 완전 수준 높은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커피든 와인이든 재배되는 현지로 가서 수확, 생산되는 모든 과정을 익혀야 하지만 말이다.
여러분이 커피의 전문가라면 여기 소개하는 팁은 무시하면 된다. 혹 어떤 원두가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떤 향을 자랑하는지 기초적 정보가 필요하다면 이 짧은 안내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커피는 크게 3가지 종류로 분류된다. 아라비카(arabicas), 로부스타(robustas), 리베리카(libericas) 종이 대표적이다. 아라비카종이 전 세계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남은 30%의 대부분은 로부스타종이고, 리베리카종은 2~3%밖에 생산되지 않는다.
아라비카는 다 자란 나무의 크기가 5〜6m이며, 평균기온 20℃ 전후, 해발 600~2,000m의 고지대에서 주로 재배된다. 열에 약해서 온도가 30℃ 이상으로 올라가면 불과 2~3일 내에 해를 입고 만다. 아라비카는 단맛, 신맛, 감칠맛, 그리고 향기가 뛰어나 대체로 가격이 비싼 편이다. 성장속도는 느리지만 향미가 풍부하고 카페인 함유량도 로부스타에 비해 적다.
로부스타는 아라비카에 비해 강인한 종자로 열악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해수면 기준 0~800m 정도의 아프리카 및 아시아의 열대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다. 잎과 나무의 크기가 아라비카보다 크지만, 열매는 리베리카나 아라비카보다 작다. 다 자란 나무의 키는 8〜10m이며, 30℃ 이상의 온도에 7〜8일 정도 견딜 수 있고, 질병과 열악한 기후에도 강하다. 로부스타는 쓴맛이 강하고 향기도 아라비카종에 비해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다른 커피와 배합하거나 인스턴트커피를 제조하는데 사용한다.
브라질, 콜롬비아 등 중미와 남미, 에티오피아 등에서 대부분의 아라비카가 생산된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 남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로부스타가 주로 생산된다. 브라질은 가장 큰 아라비카 생산지이자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큰 로부스타 생산지이기도 하다.
위의 3가지 기본 품종 커피들은 커피 생산국의 지역마다 독특한 테르와르의 특색이 더해지면서 지역 이름에서 유래한 수많은 세부 품종으로 다시 나눠진다.
에티오피아 커피는 시다모와 예가체프가 대표선수다. 시다모는 에티오피아 남부 시다모 지역에서 생산되는 부드러운 꽃향기와 레몬향을 자랑하는 남성적 커피이다. 반면 예가체프도 역시 남부의 이르가체프라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커피인데 신맛이 나는 커피의 귀부인으로 불리는 종자이다. 코스타리카에서 나오는 ‘따라주’(Tarrazu)’는 산호세 남쪽의 고지대 커피 생산지 이름이자 원두의 이름인데 해발 1200미터~1800미터에서 재배되는 커피로 풍부한 맛, 잘 조합된 바디감, 상큼한 맛을 자랑한다. 브라질은 대표 품종이 ‘세하도(Cerrado)’이다. 브라질은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이다. 수확기에 습도가 감소해 건조한 기후를 갖는 게 이 지역 특징이고 그래서 세하도 원두는 중간급 신맛과 좋은 바디감 그리고 달콤한 맛을 자랑한다. 그래서 블렌딩 커피 재료로 가장 많이 쓰인다.아시아에서는 대표 생산국으로 인도네시아 커피가 꼽힌다. 17세기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부터 커피 재배가 시작되었는데 병충해에 강한 로부스타 커피가 대부분이며 특히 대표적으로 수마트라 산 만델링이 유명하다. 만델링(Mandheling) 부족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풍부한 단맛과 묵직한 바디감 그리고 독특한 향미가 자랑이다. 이밖에도 케냐의 니에리, 콜롬비아의 수프레모 윌라,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 등도 유명하다.
당신이 지금 무심코 마시는 한 잔의 커피, 그 쓴 듯 달콤한 듯 오묘한 향취가 바로 현재 전 세계 어디서나 가장 사랑받는 창작과 소통 그리고 스트레스 해소의 매개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하루에 석 잔 이내라면, 그리고 그것이 불면증 등을 유발하지 않는다면 두뇌를 맑게 하고 혈액순환을 도우며 항산화 물질을 인체에 공급해주는 이 귀한 음료를 왜 마다하겠는가? <청구영언>의 김천택이 술을 찬미하며 “누가 내가 부어 권하는 잔을 마다하리오?”라고 했다. 커피를 사랑하는 필자는 “누가 내가 내려 권하는 커피를 외면하리오?”라는 문장으로 바꿔 외치고 싶을 따름이다.
- 황헌 (경기대 특임교수, 인문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