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날씨, 광복 70주년이라 온갖 축제가 벌어지는 광화문을 뒤로 하고 서울역으로 향한다. 부산 썸머비치 울트라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지하철을 갈아타면서 울트라 마라톤 출발 장소인 해운대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도착했다. 부산 썸머비치 울트라 마라톤은 서바이벌 형식의 대회다. 주최 측에서 물과 음료만 지원하기 때문에 자신이 섭취해야할 먹거리를 배낭에 짊어지고 뛰어야 한다. 배낭에 파워젤 몇 개와 영양갱, 홍삼사탕, 홍삼액과 매실액, 물을 각각 500ml씩 넣었다. 배낭 무게가 4kg 정도나 되는 것 같다.
100km 대회 참가자는 290명으로, 이 가운데 여자는 25명에 불과하다. 오후 6시 드디어 출발. 대중가요로 더 유명한 동백섬(지금은 동백공원)을 지나 곧바로 해운대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하루 피서를 마무리하려는 사람들이 샤워장 앞에 길게 줄을 서기 시작한다. 해운대 해수욕장에 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운대를 지나 달맞이고개로 접어들었다. 말로만 들어본 달맞이 고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줄줄이 늘어선 카페촌으로도 유명하다지만 달림이 입장에서는 반갑지만은 않다. 긴 언덕과 내리막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초반이기는 하지만 달맞이 고개를 걸어서 올라간다. 주로 내가 맨 앞에, 남편이 가운데, 이석초 님이 맨 뒤에 서서 달렸다.
송정해수욕장 입구에 도착하자 때마침 해가 지기 시작했다. 파장 분위기가 완연한 피서객들을 또 다시 구경하면서 천천히 달려간다. 10km지점에서 생수를 나눠주고 있다. 다행히 구름이 많이 끼고 바닷바람이 불어와서 생각보다 덥지 않다. 해안도로를 지나서 산길로 접어들자 시골 냄새와 함께 풀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래, 울트라는 바로 이 맛이지, 하고 속으로 되뇌인다. 아직까지 20km도 지나지 않은 초반인데다 50km 울트라 참가자들까지 합쳐져서 달림이들이 거의 한 차선을 점령하고 소리 없이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다.
오후 9시, 25km 지점인 기장군청에 도착했다. 50km울트라 반환점이자 두 번째 급수지점이다. 생수 이외에 가래떡과 토마토가 놓여있다. 50km 주자들은 여기에서 되돌아가고 100km를 뛰는 달림이들만 남으면서 주자들간의 간격도 차츰 멀어진다. 여기서부터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잘못된 길로 갔다가 되돌아가는, 이른바 ‘알바’를 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30km 정도 지나자 발목과 발바닥이 이상하게 자꾸만 저릿저릿한 느낌이 전해온다. 도로 옆 버스 정류장에서는 어떤 달림이가 상의를 다 벗고 옷을 갈아입고 있다. 예비군복을 입으면 아무데서나 소변을 보는 용기가 생기는 것처럼 달림이 복장으로는 정류장에서 옷을 갈아입는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낮이었다면 지루했을 것 같은 도로지만 한밤중이 되자 시원한 바람과 함께 호젓한 느낌도 들어서 한적한 분위기를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시간은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다. 다음 급수 지점인 44km 지점까지 가기는 너무 멀어 37km 지점인 해변에서 파워젤과 홍삼액을 챙겨먹었다. 때마침 캠핑 나온 사람들에게서 콜라 한 잔을 얻어마셨다. 이때의 콜라 한 잔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맛이다. 나사 해수욕장을 지나 울산 간절곶 입구에 도착했다. 새해에 가장 빨리 해가 뜨는 지역으로 알려지면서 최근 유명 관광지로 급부상한 곳이다. 간절곶도 처음 밟아본다. 간절곶 등대가 밤 12시에도 서치라이트를 비치고 있고, 맞은 편에는 대형 소망우체통이 달림이들을 내려다본다. 반환점인 50km 지점의 간절곶의 송정공원에 도착하려면 짧지만 경사가 심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2번 지나야 한다. 드디어 반환점 도착. 시간은 이미 새벽 1시가 가까워졌다.
반환점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시래기국밥 한 그릇씩을 나눠주고 있다. 골인지점까지 유일한 식사다. 밥을 먹고 잠시 휴식하기로 했다. 이석초 님은 힘이 많이 들어서인지 식사 후에 곧바로 누워서 휴식 중이다. 고비사막 이후 낫지 않은 발목이 후반에도 버텨줄 수 있을지 나까지 걱정이 된다.
다시 배낭을 메고 몸을 추스린 후에 곧바로 출발한다. 조금 전에 지나왔던 길이지만 그새 바다는 물론 도로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해수욕장에서 간간이 소주잔을 기울이던 피서객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도로에 달리는 차들도 크게 줄어들었다. 유럽 어느 나라의 궁전 같았던 드라마하우스도 이제는 잠에 빠졌다.
달림이에게는 가장 견디기 힘든 시간이 돌아왔다. 그동안 참았던 졸음이 몰려오면서 다리가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가로등이 없는 곳은 주변이 깜깜해서 후레쉬를 켜도 빛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 달리는 속도가 조금 느려지면서 시간조차도 더디게 흘러가는 느낌이다. 한편으로는, 바로 이런 시간에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게 된다. 어찌 보면 울트라 마라톤의 묘미는 이런 데 있는 지도 모른다. 번잡스럽게 살아오면서 잊고 지냈던 작은 일이며, 어릴 때의 추억까지도 왠지 모르게 떠오르곤 하는 것이다. 새벽 3시, 드디어 울산에서 부산으로 다시 들어섰다.아직까지 급수지점인 75km 지점까지는 한참을 더 가야 한다. 몸이 졸리면서 가라앉는 느낌도 줄어들면서 다시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한다.
평지에 가까운 도로를 천천히 달리는데 배낭 속에서 새벽 5시 알람이 울린다. 매주 일요일 새벽, 마라톤 정모에 참석하기 위해 일어나는 시간이다. 거리에는 어느 새 우유배달 아저씨가 지나가고, 폐지 줍는 할아버지도 종이박스를 거둬가고, 어디선가 닭이 울어댄다. 일찌감치 문 여는 가게는 불을 켜고 또 다른 하루를 준비한다. 몇 kg에 달하는 배낭 때문에 어깨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75km 지점인 기장 군청에서 가래떡과 방울토마토로 요기를 하고 다시 힘을 낸다. 80km지점을 통과한 것은 새벽 6시. 아침해는 이미 떠올랐고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해안도로는 산책하기 좋은 분위기다. 발바닥의 통증만 없다면... 오르막을 걸어가면서 보는 아침 해와 동해바다, 저 멀리 보이는 해광사 풍경은 한 동안 잊지 않을 것 같다.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발이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이석초 님의 명언)
다시 달맞이고개. 걸어도 끝이 없는 듯한 언덕이지만 무념무상의 마음으로 묵묵히 올라간다. 해운대 백사장을 지나는 길. 따가운 햇빛이지만 덥다는 느낌이 별로 없다. 드디어 저 멀리 요트경기장이 보인다. 세명이 차례로 골인지점을 통과한다. 오전 9시 29분. 총 15시간 29분이 걸렸다.
100km를 뛰면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꾹꾹 참아가면 그렇게 먼 거리를 뛰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자기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힘든 목표를 이뤄내는 보람을 느끼고 싶어서? 이것 하나만은 확실한 것 같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난다고 해도 꿋꿋이 견뎌낼 힘을 갖게 됐다는 것. 마라톤이 주는 교훈이 바로 그런 것은 아닐까.
첫댓글 대단하십니다 여자로서 작은체구인데도 어디에서 그런용기와 힘이나는지?
언제보아도 에너지가 넘치는모습 보기좋습니다
항상 몸관리 잘 하시어 롱런하시길~~
고생많으셨읍니다 완주축하드리며 빠른회복 바랍니다
완주를 축하하며 빠른 회복과 다음 여정을 기대합니다.
정말 어디에서 그런 용기와 힘이 나는지 놀라워요. 완주 축하합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완주를 축하드립니다. 100k가 전부 다 눈에 들어오는것 같습니다.
축하합니다.
부회장님 최곱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않는 열정에 경의를 보냅니다 ~~울트라보다 가을 대회에 깜놀만한 기록 경신을 기대해봅니다
내가 실제 달렸던 것 처럼 생생 하네요.
달리기를 한 것일까?
아득합니다.
저 때문에 3시간 이상 늦어졌다는 사정을
늦게나마 알려드립니다.
어젯밤 갑비고차를 뛰는 분들을 보면서, 내년에도 또 뛰고 싶다는 마음이 새록새록 생깁니다. 모두들 감사드립니다.
이석초님, 보는 내내 존경스럽고 멋있었습니다. 3시간 늦어졌다니 그럴리가요~^^
마라톤이 주는 교훈도 있지만 부회장님이 주는 교훈이 있네요 ... 남자 탈의 보가를 돌갘이 하라 ?? 대단하심 ................니다..
100k 생각만해도 까마득한 거리...대단하시네요...드립니다
완주 다시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