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천국도 극락도 허상인 것을/이병준
가끔은 타인의 심경를 헤아릴 때가 있다.
어떤 계획도 일정도 없이 참으로 무료한 어느날에. 내가 외로움을 느끼거나 진짜 아무 생각없이 하루 시간을 처멍하게 몇 시간을 책상머리에 앉아 보내면 하염없이 멍청한 시간을 수월찮게 보내고 견디다 보면, 식사 때는 넘었는데 집사람은 부재중이고 배꼽시계가 출출하게 배고픔을 알려올 적엔 얼큰한 찌게에 소주 한 잔이 그리워 진다.
이 슬픈 경지의 시간, 절실하게 이해되는 분
들이 있다. 골초들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적에 담배 한 개피 꺼내 피우는 그 심경을, 커피 매니아들이 한 잔의 커피향에 취해 스스로를 달래고 정서적 안정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 같다.
술도 어쩌면 지독한 그리움의 맨 밑바닥을
끍어 비워내는 작업일 수도 있다. 상상의 촉각을 녹여내서 희,노,애,락의 깊은 그 심연
의 정조에 침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저녁, 식사시간으로는 조금 늦은 7시경 뼈다귀 해장국에 소주 1병, 술 1/3가
량은 남기는 도량을 실천했다. 그 정도가 가장 기분 유지에 좋기 때문이다.
우산을 받쳐들고 집으로 귀가하는 길, 갑짜
기 이승엔 안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천국과 극락이 과연 있는 것일까, 있다면
원하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오늘날 무수한 맹신도행을 자처하는
분들이 가보지도 못했고 갔다가 되돌아온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을 만나서 천국과 지옥, 극락에 대한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절, 예배당, 성당에 착실하게 다니 면서 헌성금이나 열심히 받치면 죽어서
원하는 그 곳으로 갈 수 있을 줄 알고 열심히 실천한다. 교회 성당 절에 아주 착실히 다니
면서 헌금 및 시주금 많이 받치면 그 대가의 보상으로 설마 그 곳을 갈 수 있겠지 라고 보
편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 생각이 허무
한 망상이요. 욕심인 것을. 죽음이 인간으로서 완성이라면 그 사실만으로도 만족할 일이지 천국이나 극락을 꼭 가야겠다는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인간의 무모한 욕심 덩어리가
아닌가.
이미 천국이니 극락이니 그 곳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내 평생의 행적이 업경(業鏡) 에는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어, 내가 살아 생전에 선한 공덕과 자비행을 행했다면 가기 싫어도 가게 될 것인데 그 반대의 경우로 평생을 살다가 가는 분이 억만금을 갖다가 바쳐본들 갈 수가 있겠는가. 절대 갈 수가 없어야 신의 정의를 실천함이요 최후 심판의 지렛대가 아니겠는가.
악업의 소행을 평생 저지른 인간에겐
과(過)의 징벌을, 무량한 대보살심의 공덕
으로 덕행을 쌓은 분에게는 인간사의 공덕
(功德), 바른 길(正道)이기에 어찌 그 곳을 가지 못할 수가 있으랴. 누굴 탓하고 불만을 펼 수 있는 일이 아니거늘. 《평소 살아 있을 때 베풀어 공덕 쌓고 가야지》내일 이승을 등진다면 우리 인간의 살아온 행적이 적나라
하게 지을 수 없게 기록되어 있을 것인데, 열혈 신도인 체하고 헌금이나 많이 갖다 바친다고 제 행적의 악행과 지독한 에고이
즘의 'F'학점이 어찌 천국문 들어갈 'A'학점
으로 바꿔질 수가 있겠는가. 참으로 어리석은
무지랭이는 곤충도 아니요, 금수(禽獸)도 아니요, 미물도 아니요, 오로지 인간만이 가야할 절대 피해갈 수 없는 중생의 길인 것을 어찌하랴. 운명인 것을 또 어찌하랴 .
그러나 천국(극락)에 들어가는 딱 한가지 길이 있다면 자질구레한 잘못과 저지른 죄야 무수히 많겠지마는 그 중에서도 꼭 자신의 양심상 속죄하고 가야될 일이 있다고 생각되면 일심으로 정진 진실한 참회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스스로 자신을 고통 속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그다음 神에게 구원을 청하는 길이 참된 속죄와 구원의 바른 길(正道)이라고 생각한다. 참회와 속죄의 기도는 인간이 지음 받을 적의 순진무구한 마음 상태로 회귀(回歸)하는 참마음이기 때문이다. 구원받으려면 거기에 버금가는 양심의 참회가 선행되어야할 것이다.
살인, 사기, 기망, 무고, 반역등의 큰 죄는 원초적으로 속죄 받을 가능성에 의구심이 든다. 나는 그보다도 자신의 탯줄을 잘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에게 불효한 죄가 인간 양심 불량의 죄중에 가장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들은 호의호식하면서 갖은 고난 고통 다 견디시며 자식을 키워준 부모님 세대의 그 조건없는 희생과 은공을 몰라서야 어찌 자식이라 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인간일 수 있겠는가. 문제는 불효에 대한 참회와 후회의 느낌은 대부분 자식들이 늘그막에 깨닫게 되니 참효도를 할 시기를 놓쳐버린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부모 한 분 먼저 보내드리고 한 분 남은 부모 모심에 대해서도 효도를 진솔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린다는 서글픈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