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회장 선거는 22년만에 경기인 출신 회장이 탄생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각종 언론에서는 사상 최초로 경기인 회장이 나온다고 보도를 하던데 잘못된 보도입니다. 평양제일고와 고려대에서 선수로 뛰었고 산업은행, 대우, 유공에서 감독직을 맡았던 이종환 옹이 1987년에 이미 축구협회장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 조중연, 허승표 두 후보 중 누가 당선되든간에, 이번에 선출되는 회장은 사상 두 번째로 경기인 출신으로서 한국축구의 수장직에 오르게 됩니다.
우선 조중연
- 풍부한 현장 체험 :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해설가로서, 행정가로서 한국축구를 두루두루 체험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동안의 정치인, 기업인 출신 회장들은 물론이고 경쟁자이자 같은 선수 출신인 허승표 후보도 이 부분에선 조중연 후보에게 상대가 안 됩니다. '한국축구'라는 같은 대상을 놓고도 선수가 보는 바가 다르고 지도자가 보는 바가 다르고 행정실무 담당자가 보는 바가 다를 텐데 조 후보의 이런 이력은 각계의 목소리를 조화롭게 수용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 행정능력 : 국가대표팀 전용훈련장 건립, 유소년 상비군제 도입, 2종 클럽 등록제 실시, 코치 라이센스제 실시, 밍기적거리는 서울시와 돔구장 짓자는 야구계를 설득하여 상암 월드컵경기장 건설, 월드컵 이후 전국 각지에 잔디구장 수백 면 신설. 믿기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조중연이 축협에 몸담고 있으면서 '행정실무 측면에서' 세운 공적들입니다. 물론 온전히 조중연 혼자의 공이다라고 할 순 없겠지만, 예컨대 '잔디구장 수백 면' 중(정확히는 8백 몇 면인가 그랬던 걸로 기억합니다) 실제 축협이 주체가 되어서 깐 곳은 약 백오십 면 정도이고, 나머지는 월드컵 붐도 있고 게다가 축협에서 나서서 잔디 까는 거 보고 분위기로 여기저기서 자체적으로 설치한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공은 오롯이 조중연에게 돌아가도 부당하지 않습니다. 또 전무직에서 물러난 후(정확히 말하면 상근부회장으로 취임한 후)에 본인의 정책을 계승해서 새로이 추진된 건들, 예컨대 K3리그 출범이나 동원컵 유소년 리그 등에 대해서도 조 후보의 공헌을 일정 부분 인정해야 할 겁니다. 조중연이 축협에 몸담으면서 이룬 성과는 이 외에도 많지만 제가 굳이 여기서 그런 거 공치사한다는 시선을 받기도 그렇고, 이 정도만 해도 그의 뛰어난 실무능력을 증명하기엔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습니다.
- 정책의 계승성 : 현 정몽준 회장의 후계자 격이 조 후보라는 데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을 거라 봅니다. 그렇다면 정몽준 반대파라 볼 수 있는 허승표 후보보다 조 후보가 회장이 되었을 때 현재 축구협회에서 추진하고 있고 실행하고 있는 각종 정책과 플랜들이 더 스무스하게 다음 집행부로 인계될 것이라는 예상은 쉽게 할 수 있죠. 예컨대 현재 축구협회에서 가동 중인 각종 사업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각급 리그제도 그렇고, 지도자, 심판 양성도 그렇습니다.(조 후보의 경우 심판 자질 향상을 주요 공약에서 두 번째로 꼽을 정도로 무게를 두더군요) 또 현재 축협 예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소년축구 활성화도 마찬가지고요.(여담이지만 집행부가 바뀌는 시기에 협회 유소년분과위의 중심적 위치에 있던 이상철 코치와 하재훈 감독이 이탈한 게 약간은 아쉽네요)
- 인품 : 조 후보의 가장 큰 흠으로 꼽히는 부분입니다. 조 후보는 10년 간 축구협회에 쏟아지는 숱한 비판, 비난을 전면에서 한 몸에 받으면서도 기술위원장과 전무를 거쳐 상근부회장의 직책에까지 올랐지요. 뚝심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집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겁니다. 또한 2002 월드컵 당시 포상금 차등지급 건에서도 보였듯이 종종 독선적인 발언을 하기도 합니다. 이번 선거에 임하면서 협회 주요 임위원직에 다양한 인재들을 수용하겠다고 천명했고, 초중고 리그제에 대해서도 일선 지도자들의 목소리를 고려하여 차근차근 시행하겠다고 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고 있지만 두고 볼 일이죠. 확실히 협회에 오랜 기간 몸담아 왔으며 그것도 기술위원장, 전무, 부회장 등 눈에 띄는 자리만 거쳐 왔으니 공뿐만 아니라 과오 역시 적다고 할 수는 없는 정도입니다.
(차범근 감독 경질 건은 기술위원장직 사퇴로 응당의 책임을 졌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뺐습니다.)
허승표
- 재정적 뒷받침이 가능 : 허 후보는 갖고 있고 조 후보는 못 가진 것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이거군요. 80년대 초에 프로축구가 출범하고 세계청소년대회 4강, 32년만의 월드컵 진출 등 한국축구가 한 차례 발흥기를 맞이했고, 90년대 중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월드컵 개최 및 그 후속효과 등으로 한국축구가 가파른 발전을 달려가고 있는데, 그 중심에 최순영, 정몽준 두 기업인 출신 회장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허 후보는 세 기업의 CEO로 정 회장만큼은 아니더라도 축구협회를 재정적으로 지원해 주기에는 모자람이 없을 겁니다. 이미 사재 500억 원을 털어 드림스타디움을 짓겠다고 공약을 천명하고 있지요. 이 드림스타디움을 하나의 상징으로 삼아 유소년축구의 전반적인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유소년들이 월 10만원으로도 충분히 축구를 배울 수 있도록 하겠단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또한 재정적 여건이 안 되고서야 감히 못 내세울 공약이지요.
- 경영능력 : 조 후보에게 협회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얻은 실무능력이 있다면, 허 후보에게는 대기업 창업주 집안에서 자라 일반 사원에서부터 CEO 자리에 이르기까지 얻은 경영능력이 있습니다. 허 후보 역시 이 점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 것 같은데, 대표적으로 축구협회 예산의 10%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하는 데서도 그러한 전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명령하는 보스보다 행동하는 리더가 되겠다'는 말에서도 노련한 CEO의 냄새가 풍깁니다.
- 공약의 모호함 : 공약을 쭉 훑어 보면 무언가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입니다. 예컨대 등록선수 10만명을 육성하겠다고 하는데, 얼마 전에 나온 통계에 의하면 현재 축구협회 등록선수가 2만4천명이라는데 이걸 어떻게 10만명으로 만들겠다는 것인지가 없습니다. 현재 7백 팀인 등록 클럽 수도 3천 팀으로 만들겠다고만 하고 있네요. 여러 공약 중 가장 첫번째에 내세우는 지방분권화에 대해서도 예산의 효율적 분배 외에는 이렇다할 설명이 없고요.
- 연고이전에 대한 외면? : 분명히 잘라 말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문젭니다. 우선 허승표 후보는 2004년 연고이전의 주역인 허창수와 가까운 혈연 관계입니다. 허 후보와 가장 가까운 인사로 꼽을 수 있는 이용수 교수가, 자신이 축구계에서 갖고 있는 지위와 명망에도 불구하고 연고이전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의 목소리조차 내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 보았을 때, 허 후보가 연고이전에 대해 평소 가지고 있는 태도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기업인 출신이라서일까요? 정몽준 회장 역시 틈만 나면 울산 미포조선의 연고이전설을 언론에 흘렸던 게 생각이 납니다.
(과거 김호, 신문선 등이 협회 집행부에 들어갔다가 한국축구 말아먹을 뻔한 일을 적으려다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해서 지웠습니다.)
이상입니다. 가능한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은 했지만 아무래도 두 후보에 대해 제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차이가 있다 보니... 양 후보측에 대해 더 고려할 만한 사항이나 지적, 반박 환영하겠습니다.
첫댓글 조중연은 안정적인 전진이고, 허승표는 모험적인 변화라고 봐야할까요?
간단하게 보자면 맞겠네요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한국축구팬들이 한국축구의 미래를 좌우할 대한축구협회 차기 회장이 누가될지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깝네요
아무래도 후보자 등록부터 실망을 했기 때문에 그런거 같아요
난.... 준희횽이 나왓으면 어떨까 생각할뿐이고........
이용수 다시 안하시나..ㅠ.ㅠ
사재 500억이 아니라 일단 50억 가능하다고 하던데요.그리고 대기업이 아니라 피플웍스는 축협에 비해서 재정규모가 그렇게 큰거 같지도 않더군요.GS랑 직접적인 연관역시 적어보이고요.혈연적으로는 연결이 되어있지만
아 그렇네요. 전체 예상비용 500억 중 사재 50억을 내놓겠다는 얘길 잘못 썼군요. 허승표가 GS 내에서의 권력다툼에서는 진작부터 소외되어 있다고는 들었습니다만, GS에서 축구계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놓칠 것 같진 않습니다.
지금 현재 대한민국축구의 수준이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K리그의 수준은 또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는가.. 과연 이대로 전진한다고 이대로 나아간다면.. 어떤결과가 나올것인가.. 이제 바꿔야한다 변화해야한다.. 세계흐름에 맞춰 변화해야지만 대한민국축구가 세계적일수 있다는것이다.. 언제까지 변화를 두려워 할것인가.. 모험적이고 변화해야만 살아남을수있는게 현실이고 세계적인것이다.. 언제까지 학연 지연인것이더냐.. 언제까지 프로필이 전부였더냐.. 한탄스럽다 정말.. 한탄스럽다 정말..
솔직히 조중연씨가 백배 낫습니다. 조중연씨가 뭐 98년부터 직살나게 욕을 많이 먹었지만 솔직히 저는 다 이해가 갑니다. 그 자리에서 열악한 인플라에 한국축구를 여기까지 키워온건 정몽준 조중연 투톱이거든요. 사람들이 별로 이를 인정안하는 것 같은데 조중연씨 아니었으면 파주 NFC라던지 유소년클럽, k2, k3라던지 그런거 못했습니다. 이번에 초-중-고리그제도 사실 8년전부터 꾸준히 준비해왔던거구요. p라이센스 지도자 자격증이나 각종 지도자 자격증제도도 생긴지 얼마안됐습니다. 이를 시행하기위해서 축협이 그동안 무지 애써왔죠.
리더자리에 계신분들은 알껍니다. 일을 할 때 독단적이면서 카리스마적으로 이끌어야할 때가 있습니다. 밑에 사람들은 안목이 없으니까 아 왜 또 나서서 저래? 이러지만 분명히 기회가 보이고 시장이 보이면 무리해서라도 전진해야합니다. 제가보기엔 정몽준 전회장 밑에서 조중연 회장이 잘했다고 보구요. 그에게 기회가 돌아가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