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지혜종자 없애고 정신 어지럽게 하는 독약”
통도사 율학승가대학원장 덕문 스님
오늘은 오계(五戒) 중에서 마지막 계인 불음주(不飮酒) 계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술을 마시지 말라는 계목입니다. 술은 한자로 술 주(酒)자를 씁니다. 중국 고대 문헌에 뱀을 잡아먹고 사는 짐새라는 새가 나옵니다. 그 짐새의 깃털을 물에 담갔다가 마시면 독이 돼 사람이 죽는다고 합니다. 술이라는 것은 짐새의 독과 같아서 불자들의 지혜를 죽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물 수와 짐새 짐자를 조합해서 술 주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람 취하게 한다면 모두 술
계 지키는 울타리 무너뜨려
결국 오계를 범하게 만들어
술 마시면 36가지 허물 생기고
집중력 떨어져 수행도 힘들어
부처님 제자라면 술 멀리해야
수계를 할때 하지 말라는 의미의 계목들이 많습니다. 살생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사음하지 말라는 등 조금은 강제로 제재를 가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율장(律藏)을 보면 그런 강합적인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시와 계를 잘 지키기는 것은 능히 천상에 태어나는 방법이 되기도 하고 그 인을 심는 일이기도 하다. 욕심은 부정한 것이며 더러움에서 벗어나는 일은 큰 즐거움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나서 삼귀의계(三歸依戒)와 오계(五戒)를 잘 지키는 방법을 설명하셨습니다. 보시는 복이 자라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지계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어떠한 인연도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줍니다. 복이 무럭무럭 자라게 하고 오는 인연들을 최상의 인연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내 목숨이 필요하다고 누군가가 이야기하면 흔쾌히 내놓을 마음이 있는지, 꿈에서라도 내가 삼귀의오계를 받은 불자라는 의식이 작용을 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게 계를 수지한 참다운 불자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불음주 계목은 어떤 취지에서 생겨났는지 설명해보겠습니다.
“술을 마신다는 것은 사람을 취하게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인도에는 여러 가지 술이 있으니 사탕무나 포도, 여러 가지 꽃으로 술을 빚는다. 우리나라는 주로 곡식으로 술을 빚지만 모두 마시지 말아야 한다. 다만 중한 병이 걸려 술을 가지고서야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은 대중에게 고하고 먹을 것이요, 까닭 없이는 한 방울도 입에 대지 못하는 것이고 심지어 술 냄새를 맡지도 말아야 하며 술집에 머물지도 못하고 남에게 술을 먹이지도 못한다. 옛날에 의적이 술을 만들었으나 우 임금이 통절하게 끊었고 주 임금은 술로 연못을 만들었다가 나라가 망하였거늘 수행하는 사람이 술을 먹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수치이니라. 옛날 어떤 우바새가 술을 먹고 다른 계까지 범한 일이 있거니와 술을 한 번 먹는 데 36가지 허물이 생겨나나니 작은 죄가 아니니라. 술을 즐기는 사람은 죽어서 똥물지옥에 들어가며 날 적마다 과보가 돼 지혜종자가 없어지나니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독약이어서 비상이나 짐독보다 더하니라. 그러므로 경에 이르기를 차리라 끓는 구리물을 마실지언정 술은 먹지 말아야 한다 하였으니 어찌 경계하지 아니하랴.”
‘사미율의’에 나온 내용입니다. 재가불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은 아니지만 술에 대한 원칙은 이런 것입니다. 사실 술이라는 개념은 더욱 확장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취하게 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는 것은 모두 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약·환각제·본드·담배 등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불음주계는 술만이 아니고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실수를 유발하게 만드는 모든 음식들이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불음주계는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수계라는 의식을 통해 만들어지는 계체(戒體), 두 번째는 수행과의 관계, 세 번째는 사회적인 부작용입니다.
수계를 하면 생기는 몸이 있습니다. 계체입니다. ‘사분율’에서는 무표색(無表色)이라 합니다. 우리 몸은 육안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표색(表色)입니다. 육안으로 보이거나 감지되지 않지만 천안을 통해 보이는 형체가 없는 몸 이것이 무표색입니다. 무표색의 계체 유무에 따라 지계자가 되기도 하고 파계자가 되기도 합니다. 절에 아무리 오래 다녀도 삼귀의오계를 받지 않고 계체가 이뤄지지 않은 사람은 부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삼귀의오계를 수지하고 무표색의 계체를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계체는 어떤 작용을 할까요. 계는 성계(性戒)와 차계(遮戒)로 나눠집니다. 성계는 그 계를 범하게 되면 계체가 깨어져 버리는 계를 뜻하고 차계는 성계가 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울타리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계 가운데 살도음망(殺盜淫妄)은 성계가 되고 불음주계는 반성반차(半性半遮)입니다. 절반은 성계의 성질이 있고 절반은 차계의 특징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파사론’에는 불음주계 하나를 범함으로써 오계를 다 범하게 되는 그런 실례가 기록이 돼 있습니다. 한 우바새가 먼 길을 갔다 오는 길에 목이 말랐습니다. 그래서 물을 찾다가 마침 마루에 있던 한 그릇의 물이 있는 것을 보고 마셨습니다. 그런데 마시고 나니 술이었습니다. 술이 한 잔 들어간 상태로 마당을 돌아다니는 닭을 보니 갑자기 잡아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닭을 잡아먹었는데 마침 닭 주인인 이웃집 아낙이 닭을 찾으러 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다른 생각이 들어 그 아낙을 욕보이게 됩니다. 결국 관가에 끌려가게 됐는데 그곳에서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술 한 번 마심으로 인해 오계를 모두 어기게 됐습니다. 도둑질을 하고 살생을 했고 이웃집 여인을 범했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술은 직접적인 성계는 아니지만 성계를 범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하고 계를 지키는 울타리들을 모두 허물어버리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불음주계는 대단히 중요한 계율입니다. 불자들이 이를 꼭 명심해야 합니다.
물론 오계를 받긴 하는데 다는 지키지 못할 것 같다고 고민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가능하면 모두 받아 지켰으면 좋겠지만 불가피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전계사 스님이 “잘 받아 지키겠습니까”라고 물을 때 “죄송합니다. 제가 능력을 빨리 키워서 멀지않은 장래에 다 받을 수 있게 하겠습니다”하는 마음으로 다짐만 하지 않으면 그 계는 안 받는 것이 됩니다. 그 계를 받지 않아도 다른 계를 지키게 되면 그것도 지계자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살펴보면 부처님은 참 자비로운 분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처지에 따라 계를 가려서 받을 수 있는 방편까지도 마련하셨다는 점을 참고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불자라면 다 받아 지닐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삼귀의계를 받게 되면 각 계목 하나에 12명의 지계신장이 보호해 줍니다. 삼귀의계면 36명입니다. 오계의 계목 하나에는 5명의 지계신장이 옹호해줍니다. 그러면 25명입니다. 삼귀의오계를 지키면 61명의 최고 경호원이 생기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불음주계와 수행에는 어떤 연관관계가 있을까요. 불교의 가르침에는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이 있습니다. 계(戒)로 인해 정(定)이 생기고 정(定)으로 인해 혜(慧)가 생겨납니다. 이를 삼학이라고 합니다.
계를 지키는 힘이 강해지면 고요히 선정, 즉 정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음주를 하게 되면 그런 마음을 잃게 됩니다. 부처님 당시에 강조했던 수행법으로 오정심관(五停心觀)이 있습니다. 탐심이 많은 중생에게는 부정관(不淨觀)이나 백골관(白骨觀)을, 성내는 마음이 많은 사람은 자비관(慈悲觀)을,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인연관(因緣觀)을, 집착이 많은 사람에게는 계분별관(界分別觀)을, 마음이 심란한 사람에게는 수식관(數息觀)을 하게 했습니다. 관법수행은 순간순간 일어나는 변화를 잘 관찰해야 합니다. 그러나 술을 마시게 되면 그런 능력이 사라집니다. 한국불교의 전통수행법인 간화선이나 염불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술을 마시게 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면 수행증진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과학문명이 발달해 부처님 말씀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길도 늘어났습니다. 사람은 24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을 일으킬까요.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5만 번 내지 6만 번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집중해야 하는 곳에 내가 가진 능력을 극대화하는 게 수행입니다. 평상시에도 그렇게 집중하는 힘이 떨어지는데 술을 먹으면 다른 생각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고 망상을 피우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과연 제대로 된 수행이 가능할까요. 부처님 제자라면 절대 술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허구를 만들어내고 곤란한 일을 만들고 사회적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바로 술입니다.
술을 마시면 실수를 하게 되고 국가적으로도 알코올 중독자들로 인해 많은 예산이 소요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계를 잘 실천하는 것은 불자들의 수행을 증진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더욱 맑고 밝게 만드는 길이기도 합니다.
경전에 보면 술을 마심으로써 생기는 36가지 허물이 기록돼 있습니다. 재물이 흩어지게 되고 질병이 많아지고 서로 다투게 되고 죽이고 해치는 일이 많아지고 지혜가 점차 없어지고 복덕이 줄어들고 비밀스런 일들이 드러나며 근심과 걱정이 많아지고 부처님을 공경하지 않고 나쁜 친구를 사귀고 착한 벗들을 잃게 된다는 등의 내용입니다. 이런 허물을 줄이기 위해서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며 이를 실천했을 때 우리 삶은 더욱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이런 오계를 대승계(大乘戒) 정신으로 확대해 실천해야 합니다. 대승계에서는 삼취정계(三聚淨戒)를 강조합니다. 삼취정계는 섭률의계(攝律儀戒), 섭선법계(攝善法戒), 섭중생계(攝衆生戒)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섭률의계는 불음주계를 받아 잘 지키는 것이고, 섭선법계는 술 마시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맑고 밝은 마음으로 긍정적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술 대신 마실 수 있는 대체음료를 개발하는 것이 될 텐데 차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담배를 대신해서 향을 피우는 문화도 고매한 인품을 개발하고 청정해질 수 있는 좋은 방편이 될 것입니다. 이런 문화를 가까이 하는 것이 섭선법계이고 이것을 더욱 많은 사람, 즉 사회와 중생을 위해 널리 회향하는 것이 섭중생계입니다. 정리=임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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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문은 7월25일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봉행된 ‘2015 신행실천 계율산림법회’에서 덕문 스님이 설법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 덕문 스님은 통도사에서 성파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통도사 승가대학, 봉선사 능엄학림, 파계사 영산율원 연구원과정을 마치고 파계사 승가대학 강사, 통도사 율원 교수사를 역임했다. 현재 조계종 단일계단 교수사·갈마사, 사미계 수계교육 유나, 계단위원회 계단위원, 영축총림 통도사 영축율학승가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출처: 법보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