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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혜란(헬렌 매켄지), 매혜영(케서린 매켄지) 자매는 1913년,1915년 부산 좌천동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은 부모님들이 호주인 선교사 였기 때문에, 한국 사람은 아니였다.
하지만, 맥켄지 가(家)는 호주 사람들이 였지만, 한국과 한국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였다.
(매켄지 선교사는 스스로 매씨라 칭하고 1910년도에 나병환자들을 위한 병원, 상애원을 설립 운영했었다.)
그녀들은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한국음식을 좋아 했으며, 고등학교때 까지 한국에서 생활했다.
그래서 자신들은 한국사람, 부산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일본이 2차 대전 전쟁 준비에 들어가면서, 모든 서양 외국인들은 추방 당한다.
이때, 매 자매도 부모님을 따라 고국인 호주로 돌아갔다.
그녀들은 호주로 돌아 가서, 각각 의대와 간호대를 졸업했다.
그후, 한국전쟁이 나고, 한국에 대한 안 좋은 소식들이 날아 들었지만, 그녀들은 오히려 한국행을 결심 했다.
주위에서 그녀들을 말렸지만, 1952년 2월 그녀들은 전쟁 중이던, 고향 부산으로 돌아왔다.
이 때, 언니 매혜란은 38살, 동생 매혜영은 36살이였다
전쟁 중이니, 의료인력이 부족할거라 생각 때문이 였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그녀들은 거부 당했다.
당시, 부산에 피난 온 사람들 중에 의사들은 많았던 것이다.
대신, 의약품이 부족 했다.
의외의 상황에 실망한 그녀들은 병원을 나서다, 다급히 의사를 찾는 한 남자를 보게 됐다.
아내가 출산을 하다, 잘못 됐다는 것이다.
매 자매는 즉시 그 사람을 따라 나섰다.
하지만, 도착해 보니, 이미 산모와 아이는 죽은 뒤 였다.
이 일이 있은 뒤, 매자매는 피난 온 산모들에 대해서, 조사 했다.
피난시절이라, 대부분, 길이나 역에서 출산하는 경우가 많았고, 더러운 환경 때문에, 감염과 영양실조로 많은 산모와 아기들이 죽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1952년9월17일, 두 자매는 부산 좌천동에 있던, 부산진 교회의 유치원을 빌리고, 하야리아 미군부대에서 침상 10개를 공여 받아, 산부인과 전문병원을 차리게 된다.
두 사람은 환자가 돈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아무 환자나 받았다.
매 자매의 병원 문은 365일, 24시간 열려 있었다.
환자는 몰려들기 시작 했고, 많은 새 생명이 이 병원에서 태어났다.
두 자매의 의료 숙련도는 나날이 높아 졌다.
호주의 신기술 병원, 돈 받지 않는 병원, 다 죽어가던 환자도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살아서 나오는 병원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매 자매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 중 60%이상이 돈 한 푼 없는 환자들이 였다.
하지만, 그녀들은 환자들을 차별하지 않았고, 병원비가 없어서 도망치면 끝까지 추적해서, 아기 용품과 분유등을 지원해 줬다.
그녀들은 병원직원 채용에도 특별 전형이 있었는데, 과부와 집없는 사람이 채용 1순위 였다.
매 자매는 자신들만으로는, 손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산부인과 여의사들 양성 프로그램도 같이 운영 했다.
많은 산부인과 여의사와 간호사들이 매 자매 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보냈다.
매 자매들은 이 들에게 기술보단, 봉사의 정신과 환자에 대한 애정을 가르칠려고 노력 했다.
이런식으로, 매 자매는 한국에서 산부인과 전문 병원을 20년 동안 운영 했다.
그 사이, 매 자매 병원에서 태어난 아기 수는 무려 29만여명을 넘었다.
병원 설립 20년이 되던 1972년 어느날, 매 자매는 아무 조건 없이, 한국인들에게 병원을 넘겨줬다.
그리고, 1976년까지 더 근무하다, 한국에 올때 가져왔던, 낡은 가방 하나씩만 들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두 자매는 20년 동안, 월급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
두 사람은 호주로 돌아갔지만, 언제나 자신들의 병원 생각 뿐이 였다.
무료환자 때문에 항상 적자였던 병원이 망하면 어쩌나 부터, 병원에 돈이 없어서, 돈없는 환자를 거부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대부분이 였다.
1974년, 두 자매는 호주 전역을 돌며, 병원 지원 모금 활동을 벌였고, 결과로 당시 돈 10억원(지금으로 치면 100억 쯤 되지 않을까?) 정도를 모금해서 한국으로 보냈다.
이 매켄지 기금의 지원으로, 병원은 계속 무료환자를 받을 수 있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두 사람은 2005년 동생 매혜영이 멜버른 자택에서 , 언니 매혜란은 2009년 카라나 양로원에서 , 90세, 96세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시에도 돈 없이 병원을 찾아 오는 사람이 있다면, 도와주길 바란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두 사람은 일신 기독병원 창립자 였고, 한국에 지대한 공이 있는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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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한다는 말로는
부족한 표현이 되겠네요
그래도 정말 감사합니다.
그곳에서도 한국의 아이들을
보호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