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봉 베네딕토(가수, 자전거 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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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걸어 다니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4~5km쯤은 가볍게,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10km 정도까지는 조금 무리를 해서 걸어 다니곤 합니다. 지금 제가 사는 삼각지에서 여의도까지 약 5km 거리. 처음 원효대교를 걸어서 건널 때는 끝이 안 보이는 듯싶더니 걷다 보면 어느새 한강을 훌쩍 건너 목적지에 도착하곤 합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시작한 이 ‘걷기’는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점 외에도 제게 많은 것을 가져다줍니다. 혼자 이것저것 생각해 볼 시간도 많아지고 무엇보다도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쳐 왔던 많은 것들과 마주하는 기회가 됩니다. 열심히 장사하시는 분들, 건널목에서 누군가와 통화하는 사람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까르르 웃어대는 아이들, 중국인 관광객, 무료 급식을 기다리는 긴 줄과 지하도에 종이상자로 아예 방을 만들어 놓은 노숙인들…. 아름답고 신나는 모습부터 피하고 싶고 눈살 찌푸려지는 장면까지 ‘바로 이런 게 사람 사는 게지’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신만의 창이 있고 그 창을 통해 세상을 본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는 만큼 알게 되고 그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을 하는 거죠. 그래서 누구나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고 바른길을 걷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 이 창문이 같은 곳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방향도 제각각일뿐더러 높이도 다 다르게 설치돼 있어 어느 창을 통해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각자 전혀 다른 풍경을 바라보게 됩니다.
아파트나 주택을 거래할 때 경관(요즘은 주로 View라고 하더군요)에 따라 가격이 달라집니다. 창문이 어느 쪽으로 나 있는가에 따라 그 집의 가치가 정해지는 거지요. 시원한 강이나 바다, 웅장한 산을 바라볼 수 있는 창을 마다할 사람은 없겠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하는 우리들의 창은 어느 쪽으로 나 있어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이 바라보시던 바로 그쪽을 함께 바라봐야 하는 게 아닐까요?
걸어 다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름다운 쪽으로만,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쪽으로만 가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가난한 이들의 모습, 깔끔하지 못하고 마음이 불편한 모습은 되도록 피해 버리고 좀 돌아가더라도 밝고 화려한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예수님처럼, 낮고 어려운 곳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늘 말로는 강조하지만 실은 그저 약간의 금전적인 소위 ‘자선’을 베풀고(물론 금전적 도움도 무척 어렵고 훌륭한 일입니다만) 그것으로 내 의무를 다한 것처럼 낮고 어려운 곳은 마치 시찰하듯 차를 타고 휙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얼마 전 방한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몇 번씩이나 차에서 내려 아기들을 손수 축복하시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하셨음에 감동을 받았으면서도 정작 나 자신이 차에서 내리고, 누군가와 함께할 줄은 모르고 있는 거지요.
시작하고 나면 힘들지 않은 일들이 있습니다. 바로 ‘걷기’ 같은 일들이지요. 처음에는 엄두가 안 나다가도 막상 부딪쳐나가다 보면 할 만해집니다. 멀게만 보이던 목적지에 어느새 도착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게 익숙해지면 다음번엔 훨씬 수월해지는 거죠. 창문부터 바꾸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은 자주 보고 익숙해지다 보면 함께하기도 수월해질 테니까요. 조금 힘들고 불편해도 많이 걷는 것이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듯이 낮은 곳으로, 어려운 곳으로 함께함으로써 생각지 않게 주어지는 큰 기쁨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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