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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자 경향신문 문화면에 ‘유교 탄생의 비밀’이라는 책을 낸 김경일 교수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 분은 1999년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을 내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분입니다. 이 분이 유교 문화를 이루는 조상 숭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싸움과 교감 속에서 저절로 형성될 수밖에 없는 거대한 존재에 대한 경외감, 타 종족들 간의 쟁투 속에서 선별해 갈 수 밖에 없었던 친족 조상들에 대한 애착이 혼합되면서 정치적으로 정비된 가치와 규칙, 그리고 통합체가 유교문화다”. 즉 자연 재해 속에서 거대한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다른 종족들과의 싸움 속에서 조상들에 대한 애착이 결합되어 조상신을 만든 것이고 거기에 정치적으로 가치와 규칙을 섞어 만든 것이 유교 문화라는 것입니다. 이분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라는 책을 내고 유림으로부터 소송을 당하였지만 그 때 말한 것들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합니다. “한국 정치. 경제. 사회에 유교 문화의 영향이 여전하다. 특히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엇인가를 하려는 사람들을 절묘하게 좌절시키는 게 유교문화”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이후 조상숭배, 제사 지내는 문제로 교회를 핍박하고 종교적인 문제로 제사를 안 지내는 사람을 핍박하고 불효자라고 낙인찍는 일을 주변에서 참 많이 봐 왔습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 전도하게 되었을 때 “교회 다니는 사람들 제사도 안지내고 효도도 모르는 사람들이죠. 우리 집에 형님이 교회 다니는데 제사 안 지낸다고 해서 저희 집에서 모시기로 했어요. 형제들 간에 의 다 끊어 놓고 교회 다닌다는 사람들 상종도 하기 싫어요.” 이렇게 대놓고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분 상하지 않게 “부모님께는 살아 계실 때 효도해야 합니다. 교회 다니는 분들은 기일에 제사 대신 추도예배를 드리면서 생전에 부모님의 사랑과 뜻을 기립니다.”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이 깊이 뿌리내려 제사지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를 중요시 했던 유교는 처음에는 정말 좋은 뜻으로 시작했지만 예의 틀에 갇혀 형식 지상주의가 되어 버렸습니다. 살아생전에는 불효하던 자식들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 때서야 어디서 그런 효자가 나왔나 싶을 정도로 제사를 철저하게 지냅니다. 조상을 잘 못 섬기면 화가 임한다는 생각이 있고 조상을 노하게 하면 큰일 난다는 생각, 집안에 묘 자리를 잘 못 쓰면 집안이 망한다는 생각들이 사람들을 제사에 더 치중하게 만들어 놓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명절 때만 되면 제사상에 올려놓을 음식을 위해 먹지도 않는 음식을 비싸게 시장을 봐다가 제사상에 차려놓고 버리기가 일쑤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기독교식으로 하면 먹을 만치 준비하고 살아있는 사람 중심으로 준비하고 모여서는 추도예배로 드리고 서로 생전의 부모님의 뜻을 기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여 즐거운 자리가 됩니다. 허례허식으로 하지 않으니 간편하고 실속이 있습니다. 준비하는 손길도 힘들지 않습니다.
그 제사상 차리는 문제로 형제간에 얼마나 갈등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다들 제사상 차리는데 시간 맞추어 온 적이 없고 왜 나 혼자 감당해야 되는 거죠?” 하면서 제사상 차리다가 가족 간에 불화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떤 며느리는 한 달에 한 번씩 일 년 열두 달을 제사상을 차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랄 때 얼굴도 못 본 남편의 조상들을 섬기니 그 맘이 정말 하고 싶은 마음에서 제사를 드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분은 저한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시집 잘 못 온 까닭에 매달 힘들게 돌아오는 제사를 드려야하니 정말 힘들어 죽겠어요. 아니! 살아계실 때 부모님을 잘 해드린다면 얼마든지 환영이지만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제사상 차리는 거 부모님들이 그거 알기나 하실까요?” 내 부모를 내가 모시듯 생전의 뜻을 기리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가 진정한 제사일 텐데 기쁨이 없이 짜증이 나서 준비하는 제사가 정말 제대로 된 제사이겠는가 말입니다. 결국 형식적으로 마지못해 드리는 제사이고 본인들도 제사를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긴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곳곳에 살아계실 때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쓰여 있습니다. 십계명의 제 5 계명에 ‘네 부모에게 공경하라 이것이 내가 잘되고 장수하는 길이니라’ 라고 쓰여 있습니다. 또 ‘보이는 부모에게 잘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여호와께 잘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니라’ 라고 쓰여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삶 속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더 부모님과 만날 일이 많습니다. 사회 생활하면서 바빠서 부모를 못 찾아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일주일에 한번 부모님을 만납니다. 같은 교회를 섬기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교회를 다니는 자녀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 가면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함께 한 자리에 앉아 예배드리는 모습을 참 많이 보게 됩니다.
주위에서 보면 정말 신실한 믿음의 가정은 부모님들을 사랑으로 잘 모십니다. 성경의 내용이 모두 그러한 내용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룻기에서 이방 여인이었던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쫒아 자기 나라를 떠나 이스라엘로 와서 여호와를 열심히 섬기며 시어머니를 위해 벼이삭을 주워와 밥을 정성스럽게 지어 대접하고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렸더니 훌륭한 가문의 남편도 만나고 그 남편을 통해 시어머니에게 손자도 안겨주었고 그 손자가 다윗왕의 조상이 된 내용이 룻기의 내용입니다. 바로 여호와를 바로 섬기고 효도를 하면 이런 축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부모님들도 살아 계실 때는 나 몰라라 하다가 돌아가신 다음에 제사상 열심히 차리는 자녀를 원하지는 않으실 것 같습니다. 주위에 그런 분이 계십니다. 젊었을 때 속을 무지 썩이시던 분이었고 부모님이 치매에 걸려 고생할 때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던 사람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산소관리 열심히 하는 분을 보았습니다.
기독교인의 신앙에는 모든 축복은 여호와께로부터 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들은 이미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곁에 계실 뿐입니다. 그 부모님들이 이 땅에 내려와 우리에게 복을 주는 게 아닙니다. 모든 축복의 역사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살아계실 때 효도하고 돌아가신 이후에는 부모님의 사랑과 뜻을 받들어 기억하며 추도예배로 모이는 것입니다.
조상신을 잘 받들어야 축복받는다는 말은 그래서 틀린 말입니다. 돌아가신 부모님, 할아버지 모두 사람이십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 무슨 능력을 발휘해서 자식들을 축복해 준다는 말인지요. 그래서 잘못 믿고 있는 것이고 죽은 귀신을 섬기는 것이기에 제사를 드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옳지 않은 것을 강요하고 제사를 안 드린다고 핍박을 하는 것이니 기독교인들이 오히려 화를 내야 할 상황인데 거꾸로 그들이 욕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어떻게든 그들의 생각을 바로 잡아 주도록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전도를 해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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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귀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샬롬^^
좋은글 잘읽었읍니다.
당연한 이치를 조목조목 이해하기쉽도록
기고해 주신분께 감사합니다.
제사에관해서 추종하는 많은분들께 이런 내용을
설명하면서 전도하는 기회가 더 많았으면합니다.
귀한 댓글 감사드립니다. 샬롬^^
감사합니다~그런데 아랫줄에서 위로 6번째줄에 하느님을 하나님으로 고쳐주면 안될까요
제가 스크렙해서 수정할려고 하니까 안되네요
아! 제가 이글을 기독교문예지에 처음 올렸는데요. 그 때 그 싸이트 운영진에서 선교등으로 모금활동하는 것을 금하려고 은행명을 차단을 했답니다. 그래서 하나은행의 하나가 입력이 안되어 할 수 없이 하느님으로 입력했었죠. 그 이후 문제를 제기해서 풀어주었는데 미처 수정할 생각을 못했네요. 감사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샬롬^^
샬롬~~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