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칼럼니스트 서찬휘님께서 운영하시는 '만화인(http://manhwain.com/xe/)'
구 사이트에서 발췌했던 내용인데, 마침 다시 찾게 되어 올려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우리말 번역의 본좌라고 생각하는, 윤희선 번역작가와의 대담입니다.
2004년 GTO 마지막 녹음 때이며, 성우 팬들에게도 유익한 정보가 될 것 같아, 염치불구하고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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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337년 4월 14일(물의 날), 투니버스에서는 「GTO」의 마지막 녹음이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친 녹음의 마지막날이어서인지 분위기가 묘하게 들떠 있었죠. 오니즈카 역의 성완경 성우님은 "오늘은 난 조연"이라면서 녹음 도중 빠져나와 후배들의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보고 계시질 않나,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이사장 역의 손정아 성우님조차 NG를 내시면서 "끝내기 싫은가봐"를 연발하시질 않나. 2시부터 6시 반까지 이어지는 녹음 도중 재미난 광경이 많았지요.
이 날, 마지막 녹음을 기념해 투니버스 사옥을 오랜만에 찾은 손님이 계셨습니다. 번역가 윤희선 님. 「카우보이 비밥」부터 시작해 최근의 「GTO」, 「달빛천사」에 이르기까지 투니버스에서 방영된 다양한 작품을 작업하신 분이십니다. 분당에 위치한 투니버스 사옥과는 너무 멀리 계시는 터라 직접 찾으신 건 거진 몇 년 만이었다 하시더군요.
정말 몇 없는 기회가 아닐 수 없었지요. 놓칠세라 이 분과의 대담을 시도했습니다.
특히나 '만화영화 번역' 관련해서 들을만한 내용이 담겨있다고 생각되네요.
참. 사진은 극구 사양하셔서 못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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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은 어느 정도 되시나요?
: 한 7∼8년 된 거 같아요. 투니버스 생기고 나서 한 1년 후 부터 했어요.
어떤 계기로 번역일을 시작하시게 됐나요?
: 예전엔 책 번역을 했었어요. 게다가… 광고를 봤거든요.
뽑고 그러는 거… 아카데미 출신이거든요. 아카데미에서 선생님 하시는 거 보고…
재밌으니까. 그러니까, 이거 하면 좋겠다… 해서 하게 됐지요.
책 번역 같은 거 하셨다면, 문장 번역하는 것하고, 영상 보고 듣고 나서 번역하는 과정하고 상당히 틀리잖아요. 맛이. 자신이 보는 만화영화 번역의 맛이란 건 어떻다고 생각하세요?
: 맛이요? 아하하. 글쎄요. 특별하게는… 재밌게, 보면서 재밌게 할 수 있다는 거 아닐까요.
원래부터 만화영화는 굉장히 좋아하시는 편이었나요?
: 네. 옛날부터 그랬어요. 시작하기 전에는 만화영화를 좋아했거든요.
출판 만화도?
: 아뇨, 방송 만화.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이 일 하면 내가 좋아하는 걸 하는구나… 생각을 그렇게 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만화영화를 오히려 안 봐요. 내 것만 하게 되고…
좋아하는 게 일이 되면… 안 좋아요. 아하하하. 저는 그렇더라고요.
(이 부분에서 매우 동감한 나머지, 질문자로서의 자신을 망각하고 잠시 '역시 그렇죠!'하는 잡담으로 빠지고 말았음)
그러면, 작업하실 때 오로지 방송 나오는 것만 가지고 참고해서 하시나요, 아니면 원작 만화 등을 참고해서 하시나요?
: 원작만화요? 아 네. 그건 조금 참고해요. 미리 가르쳐 주시거든요. 신PD님(주 - 투니버스 PD 신동식 님)이… 만화로 나왔다. 그럼 찾아보고, 만화책으로 나온 건 시간 될 수 있는 한 찾아보고. 다는 못 봐도, 앞의 몇 편이라도 조금… 「GTO」도 좀 보고… 그랬죠.
아무래도 번역이란 걸 하다보면, 일본어하고 우리말하고 어순만 비슷하지 사실은 굉장히 틀리잖습니까.
: 아, 네. 전혀 달라요. 솔직히 말하면.
그런거- 표현의 차이라든지, 왜 특히나 우리나라의 경우 섣부른 매니아들이 많아서 '직역'하라고들 하잖습니까.
: 네. 아주 참…
그런 것에 대한 관점, 그리고 자신이 우리말로 표현할 때 주안을 두는 건 무엇인가요.
: 음- 저는 일단, 우리말로 표현할 때는 '일본어가 안 보이게'. 번역을 딱 해 놨을 때, 그 문장 보고서 일본어가 안 나오게요. 근데 만화책 같은 걸 보면 딱 보면 일본어가 바로 나오거든요.
아. 네. 그건 그래요. 소설도 그렇고.
: 그러니까. 전 그런 번역은 우리말이라 생각 안 하거든요. 그게 제가 번역할 때 중점이고… 그 다음엔… 제가 번역을 해 놓고 처음엔 그걸 모니터링을 했어요. 사람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나… 그렇게 보면 직역이 안 된 거에 대해서 막- 뭐라고 들고 일어나잖아요. 마음이 되게 아팠었는데. 지금은 무시를 하려고 하죠. 조금만 더, 일본어에 대해서 조금만 더 알고 그러면 그건 또 조화가 되더라고요. 얘기를 또 해주는 사람이 있고. 불법 만화(주 : 여기선 동영상 등을 이야기)만 많은 것 때문에 진짜 우리말이 뭔지 사람들이 몰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따끔하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
: 제가 그런 건 별로 자신이 없어서… 아하하.
아하하. 그럼 말을 바꿔서.
말 그대로 완전히 우리말로 들리게-가 주안이시잖아요? 약간 돌려 말하자면 '의역'이라 할 수 있겠네요. 의역이라고 하면 말이 좀 이상한가?
: 의역이요. 의역이 내용을 달리하는 게 의역이 아니라요.
'우리말로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똑같은 내용인데 "아- 참 그 내용이지"인데 절대로 그 문장에서 일어가 바로 안 나오게. 그게 전 의역이라 생각하거든요.
「GTO」처럼 일본이름 그냥 나오게 해도…
: 그건 전혀 상관 없는 거고, 문장 자체가… 내용은 똑같은 내용인데 우리말인 게 있고, 일본어인 게 있어요. 번역만 해놨을 뿐이지 일본어인 게 직역이고, 우리말이 의역이고.
번역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 비밥.
이유는요?
: 여러모로 공부가 된 작품이에요.
워낙 할 때 성우 캐스팅을 멋지게 해주셔서 무척 마음에 들기도 했고요.
그럼 마지막으로, 영상 번역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해주고픈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 "우리말 공부를 열심히 해라." 일본어는 좀 모자라도 된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그게 우선이다?
: 네.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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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성완경 성우님은 마지막 녹음을 기념한 뒷풀이 자리를 비롯해 몇 번이나 윤희선 님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셨습니다. "이렇게 입에 쩍쩍 달라붙는 맛이 나고, 내가 토씨 한 번 안 고치게 만드는 번역을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였지요. 보통 번역이 연기로 풀어내기 어렵거나 할 때 PD와 성우들이 고쳐서 하기도 하는데, 윤희선 님은 그럴 필요가 없는 수준 높은 번역을 하신다는 말씀이지요.
성완경 성우님께서는 심지어 "번역자가 내 머리속에 들어왔다 나갔다 싶을만큼 내가 하고 싶었던 대사들이었다"라는 말씀까지 하셨는데, 세간에서 말하는 '원판'을 수 년전부터 돌려보며 「GTO」의 오니즈카를 연구해오신 분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정도면 말 다 했지요. 「GTO」에선 교감 역을 맡으셨던 베테랑 김정호 성우님도 번역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실제로 연기를 하는 입장에서 이런 정도의 칭찬이 나오게끔 하는 번역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대담 내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말'에 대한 깊은 애정과 배려, 그리고 꾸준한 연구입니다. 통신이나 누리그물(인터넷)을 통해 우리말을 잘못 쓰고 있는 이들이 넘쳐나는 상황이고, 만화영화를 좋아한다는 이들은 아예 어순과 어휘조차 우리말인지 일본어인지 모를 말들을 개념 없이 마구 내지르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리고 그런 경향을 방송사와 보통의 시청자들에게도 강요하려 들곤 하지요.
비록 10여분 가량의 짧은 대화였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참으로 잘 된 번역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하겠습니다. 번역자를 희망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작품을 보는 우리가 섣불리 '번역' 운운하기 이전에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지요. 대담 도중은 물론 이외에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 점을 몹시도 안타까워하고 계셨고, 또 중요하게 여겨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피력하시는 모습에서 많은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말 공부를 열심히 합시다'.
이번 대담이 주는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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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선 님의 번역작
「달빛천사」
「GTO」
「기동무투전 G건담」
「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 DX」
「D4 프린세스」
「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
「GO GO 다섯 쌍둥이 2」
「엑스 드라이버(eX-D)」
「다!다!다! 2」
「바이스 크로이츠」
「천방지축 이나 탁구부」
「우당탕탕 닥터 지」
「더 파이팅」
「미소의 세상」
「신기동전기 건담W」
「나의 지구를 지켜줘」
「총몽」
「은장기공 오디안」
「EAT-MAN」
「A.D.Police(1999)」
「더티페어 FLASH」
「괴짜가족」
「시티헌터 TV Special」
「선계전 봉신연의」
「버블검 크라이시스」
「다이나기가」
「로도스도 전기 OVA」
「천지무용 In Love」
「카우보이 비밥」
…등등.
- 난 강하진 않지만, 내 바람은 높은 곳을 날아.
찬휘였습니다. (4337. 0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