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갑습니다...대구에 흰색치마입니다..^^ 영어공부도 중요하지만 잠깐 머리도 식힐겸 저의 사랑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첫사랑의 가슴 아픈 사랑처럼 이번 추석에는 모두들 따뜻한 마음을 가지자는 의미에서 저의 러브스토리 이야기를 선사합니다..
아마 그녀가 떠난건 1991년 이었을 겁니다..그녀는 나이가 나와 동갑이고 저와는 매우 친하게 지냈습니다..왜냐하면 그녀의 집과 울 집의 거리는 10m밖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본명은 김성희..앞으론 성희라고 지칭하겠습니다..
내 친구 성희는 아빠가 없었습니다...그래서 엄마와 언니 한 명이 식구의 전부였죠..당연히 성희엄마와 저의 할머니는 아주 친한 사이였고 우리는 정말 허물없는 사이로 지냈습니다..
그리고 성희집은 동네에 조그마한 가게를 했습니다..그러니까 15여년 전만해도 동네에 구멍가게같은 조그마한 가게가 많이 있었지 않습니까...
어릴때부터 군것질을 밥먹듯이 한 저는 그 가게를 자주 찾아가곤 했습니다..새우깡도 사고,때로는 울 할머니가 늦께 오는날에는 성희언니와도 게임도 하면서 정말 친하게 지냈습니다..당연히 성희와도 친했구요,,
우리는 나이가 동갑이었지만 학교는 달랐습니다..성희는 성남초등학교고 저는 계성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그래서 학교에서는 마주치지 못했죠...그리고 우린 피아노학원에도 초등학교때 같이 다닌적이 있습니다..거기서 이름대신에 저는 성희를 '화야'라고 불렀습니다..왜 그렇게 불렀는지는 저도 자세히 기억은 못하겠습니다..아마 '화야'라고 부르는게 더 편해서 그렇게 불렀지 싶습니다...
화야와 나는 싸우기도 많이 싸웠습니다...짖굿은 장난도 철이없던 저로서는 많이해서 화야언니한테도 꾸중도 듣고 암튼 싸우면서 더 정이 들었다고 하는데 더 맞을 것 같습니다...
화여언니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 한 사람으로 기억됩니다..몇 년 전에 울 동에 반장아주머니가 그러던데 경북대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그 이후는 잘 모르겠습니다...
암튼 그러고 1991년이 되었습니다..화야는 이사를 갔고 저는 더이상 화야를 보지는 못했습니다...아마 서부정류장 근처로 이사갔다는 것만 알지 정확한 위치는 저도 잘 모릅니다...
그 때 조금만 철이 들었어도 주소같은걸 적어놓는건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아쉬움이 남습니다...
문득 화야와의 같이 보냈던 시간들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요즘 시대를 살면서 자꾸 머리에 떠오르는건 왜 일까요..
그리고 꿈까지 나타난건 왜 일까요...
아마 그녀와의 추억이 지금 더 소중하게 생각되서 자꾸 나타나나 봅니다...
성희...그리고 화야하고 불렸던 성희를 지금은 한 번 만나고 싶네요...
울 토익 900을 위해 가족여러분들도 좋은 추억을 이번 추석에는 만들기를 바랍니다...안뇽^^
첫댓글 ..님 여자세요? 왠 언니....ㅡ,.ㅡ
^^
첨에 성인 광고 글인줄 알았어여, 제목만 보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