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수상]
♣︎파경(破鏡)과 족자의 운명 (제12회 세계문학상 <수필 부문 대상> 수상작 임)
두산 ㆍ 이 병 준
전 직장에 근무하던 시절의 후배에게서 참으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부산에서 한 직장에서 근무했던 후배 K였다. 만나보니 자기는 IMF 이전에 전직을 해서 ㅇ ㅇ투자금융회사에 근무한다고 하면서 내가 다닐 때 결혼했던 친구와는 이혼을 했고, 지금은 공무원인 아내와 결혼해서 아이도 하나 있다고 하면서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는 근황 설명을 하고 난 뒤에, 특별히 부탁할 일이 있다고 했다. 옛날 자기 결혼식 때 내가 선물해 준 친필 서예 작품 족자를 내놓는 것이었다. 그 족자의 내용은 [자식이 효도하면 양친이 즐거워하고 집안이 화목하면 만사가 이루어지는 법이다. 손님 접대는 풍성하게 하되 살림살이는 겸손하게 하라. 어진이는 아내를 사랑하고 현숙한 여인은 남편을 공경한다. 일천구백ㅇㅇ년ㅇ월ㅇ일 K군과 J양의 결혼을 축하드리며, 명심보감 치가편에서 가려 쓰다. 두산] 이다.
용건이란 이 작품의 내용 중 이혼한 J양의 이름을 빼고 재혼한 지금의 아내 이름으로
고쳐서 써주면 표구는 자기가 하겠다고 하면서 해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친구 결혼 할 그 당시의 생각이 되살아났다. ㅇㅇ은행 부산지점에 근무할 당시 K는 실력도 있었고, 얼굴도 탈렌트 뺨칠 정도로 쌍꺼풀진 눈에 수려한 외모로 여성펜이 많이 따르는 타입이었다. 그 당시 과장인 나에게 상담한 고민의 내용은 같이 근무하는 여자 행원인 J를 사랑한다고 했다. J는 이미 모대학 강사와 대학시절부터 사귀고 있었다. 나는 J를 불러서 현재
K주임과 강사 중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 정직하게 대답하라고 했다.
"과장님, 저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K주임과 강사에 대한 감정이 오십대 오십으로 반반입니다."
그러면 넌 나쁜 사람 아니냐. 이미 사랑하는 애인이 있다면 당연히 단호하게 네 의사를 분명히 해서 거절했어야지, K주임이 결혼할 마음 먹을 만큼 마음 틈새를 열어준 것은
네 잘못이 아니냐?"
질책을 하고 K주임에게는 "J양의 너에 대한 애정의 감도가 50대 50 이라면 실패할 확률이 100%이다. 너를 향한 마음이 51%도 아니고 49% 라고 하면, 더욱 이것은 결혼을 마음먹을 정도의 시기까지 도달된 것은 아니다." 라고 분명히 얘기해 주었는데도 자신 있다고 결혼하더니 결국 일 년 만에 이혼했다는 얘기였다.
잠시였지만 후배가 들려준 얘기는 나를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우선 내용이 후배 자신의
파경에 대한 얘기다. 차라리 그 당시 족자보다
거울을 선물했으면 어느 일방이 깨어 없애버리면 그만인 것을. 내가 선물한 족자의
문구에 많은 사람이 얽매어 속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신랑ㆍ신부 이름을 넣은 축하문구가 화근이 된 것이다. 생각하니 너무
친절하게 괜한 짓을 했구나 하는 후회의 느낌도 들었다. 작품조차도 불태워 버리면
그만인 것을 들고 와서 사정하는 후배가 딱하고도 처량하게 느껴졌다.
나는 후배에게 "요즘 세태에 비춰볼 때 이혼을 그다지 심각하게 불행하다고만 생각할 문제는 아니다." 라고 위로의 말을 해주면서
"자네가 원하는 내용이 표구 기법상 '짜집기'
라고 하는데, 작품을 고쳐 표구는 되지마는
깨끗이 없애버리는 게 좋지않겠느냐?" 고
했더니, "제가 상사로 모셨고 인생의 가장 큰
고민을 상담했을 적에 그 명쾌한 해답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표구까지 해서 주신 선물인데 너무나 염치도 없고 민망해서 다시
새작품을 부탁드리기가 면목이 없습니다."
는 얘기였다. 이제는 작품 내용대로 살아갈
자신이 있어 드리는 부탁이니 꼭 자기 청을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작품을 짜집기하는 것은
빛바랜 벽에다 페인트칠하는 꼴이니 차라리
새마음으로 글씨 한점을 다시 써주기로 마음
먹고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 친구는 양친이
일찍 돌아가시고 안 계시기 때문에 옛날의 그
족자 내용보다는 좀 더 색다른 내용의 글을
써주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니 좋다고 해서
'알베르 까뮈' 의 글을 써주기로 했다.
'우리들 생애에 저녁에 이르면, 우리는 얼마나
타인을 사랑했는가를 믇고 심판 받을 것이다.
타인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타인을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내 자신의
내적인 평화도 함께 따라온다. 감정은 소유되지만 사랑은 우러난다. 감정은 인간 안에 깃들지만 인간은 사랑 안에서 자란다.'
위 내용에 연달아 이번에는 결혼식 날짜와
지금의 아내 이름은 넣지말자고 했더니 '두 번
실패는 하지 않겠다' 고 하면서 재혼한 지금의
아내 이름과 재혼한 날짜를 꼭 써 달라고 했다. 그 눈빛과 간절한 모습에 자신감이 느껴졌다. 즉석에서 후배에게 먹을 갈게 하고
일필휘지해서 써 주었더니 기뻐하는 모습이
천진하고 보기에 좋았다. 본인으로서는 참으로 쉽지 않게 부탁한, 어쩌면 난처한 내용의 일이었지만 이외로 가볍게 받아들인
내 마음이 썩 유쾌하지만은 못했다.
다음부터 써줄 결혼식 축하 휘호에는 특별히 부탁받아 쓰는 것 외에는 절대 신랑ㆍ신부 이름은 넣지 말아야겠구나 하고 생각을 하며 삶의 무상함과 회의감에 갑짜기 서글픔마저 겹쳐 조수처럼 밀려옴을 느꼈다.
이름 석자만 넣지 않았어도 내 작품이 두사람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지도, 아주 난처한 경우를 당하지도 않했을 것 아닌가. 이름만
넣지 않했으면 '파경' 이 되어도 찢어서 나눠
가질 일이 없으니 재활용의 자리에라도 곱게
버려만 준다면 어떤 마음씨 고운 이가 글씨
내용이 좋다고 살짜기 되가져 가서 자기 방에
걸어놓고 애지중지 감상하며 수명을 연장해
줄 수도 있는 일 아니겠는가.
한갓 말 못하는 무생물인 족자의 운명도 변덕스런 인간들 마음에 따라 때로는 존귀한
대접을 받기도 하고, 애물단지가 되기도 하며,
아예 버림받는 신세가 되기도 하는구나 생각하니 인간의 변덕이 결국엔 '파경'도 불러
오고 짜집기 잘하는 표구사도 찾게 되는 일들이 서글픈 현실로 다가오게 되니 오늘 하루 종일 나는 삶의 회의와 우울과 번민 속에
침잠하는 기나긴 하루였다.
과거를 거울 삼고 진솔한 반성의 바탕 위에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삶에서 죽음이 두려운 건 아니다.
인간은 '꿈'을 상실했을 때 죽음과 같은 삶이
되는 것이다. 맑게 갠 날의 저녁노을이 아름답듯이 인간도 고난을 이겨내면서 자기
몫을 다했을 때 자신이 걸어온 한뉘의 발자취도 노을빌처럼 곱게 빛날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를 낄 구멍이
없다."는 괴테의 말과 "삶다운 삶을 살아야
죽음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음을 명심하라."
는 법정스님의 말씀이 경책(警責)의 죽비 소리로 뇌리에 쟁쟁하게 울려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