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아래의 본문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빌립보의 깊은 감옥에서의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송 가운데 갑작스러운 큰 지진으로 감옥 터 전체가 뒤흔들린 것을 볼 수 있고, 게다가 옥문과 차꼬까지 풀리게 된 이적들이 강렬하게 나타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건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된 분이시며 본질적으로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인 것으로 그에 있어 우선은 그 당시의 바울과 실라가 오늘날의 우리들이 그러하듯이 하나님 아버지께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 것임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을 잘 통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잘 살펴보고 따져보면 그러한 기도와 찬송에 있어 그 바울은 다른 그 누구 못지않게 구약의 율법에 정통했던 이였기에 모세 때에 실제로 홍해 바다까지 말씀하신 대로 가르시고, 여호수아 때 단지 말씀만으로, 진정 말씀대로의 믿음과 함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셨으며, 그 전에 오직 말씀으로 무에서 유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일 등과 같이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말씀 그대로 믿었을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보이시고 약속하시며 계시하신 일들을 그 자신에게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씀 그대로 행하실 수 있고 어떤 식으로든 살아 역사하시며 힘을 주시고 도맡으시는 분임을 전적으로 믿으면서, 바꾸어 말하면 그렇게까지의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으로 기도하고 찬송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렇듯 가장 억울하고 황당하며 원망스러울 수 있고, 또한 한편으로는 두렵고 낙심되며 포기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과 위기에서도 불평과 원망들이 아닌, 세속과 불신앙들이 아닌, 다른 인간적인 방법과 세상적인 방식들이 아닌 그와 같은 말씀대로의 믿음으로, 아니 오히려 힘들고 시련이 크며 위기와 심각들이 클수록 더더욱 신실하고 치열하며 견고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고 기도하면서 찬송할 수 있었던 것이며..
그와 함께 직접적, 실질적인 측면에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그렇게 지진이 나타나고 옥문이 열리게 하시는 이적들 등과 같이 그 정도로까지 생생하고 강렬하며 뜨겁게 일하시고 정말 누리게 하신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그러한 기도를 들으시고 받으시며 응답하시고 예비하시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일 뿐 아니라..
바로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께 그 어느 누구라도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고 반드시 그 이름으로 간구할 수 있는 것인데 실상 그러한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인 것이며 말씀을 온전히 보이신 분인 것이고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며, 근원적, 본질적으로는 그렇듯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분인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면서 다 이루시는 분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조금만 통찰해 봐도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의 기도라는 것도 결국은 말씀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이 육신이 되신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씀에 약속된 일들을, 또한 말씀대로의 믿음을 위해 자신의 뜻과 소견과 정욕들 등이 아닌 오직 말씀대로 구하면서 말씀 그대로 응답되고 이뤄지게 되는 것이고..
찬송이라는 것도 말씀과 별개이거나 직결되지 않는 찬송은 있을 수 없고 아예 찬송 자체일 수가 없는 것으로 실제로 말씀을 그대로 가사로 나타내거나 그렇지 않으면 말씀대로 일어나고 누리게 되며 고백하고 높이는 일들을 음과 가사로 표현하는 것이 찬송에 있어서의 전적인 생명이자 근본이며 실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상 그와 같은 이치와 원리, 실제와 누림들은 시간과 시대들, 공간과 나라들에 따라 달라질 수 없는 것으로 오늘날의 우리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도 어떤 식으로든 말씀의 신앙과 함께, 특히 힘들수록 오히려 더 치열해 지는 말씀의 신앙이 됨과 함께, 더 나아가 바울과 실라처럼 어느 정도까지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느냐와 함께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과 인류 역사의 현장들 속에서 날마다 순간마다의 크고 작은 모든 문제들, 기도 제목들 등에 있어서..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얼마나 생생하시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어떻게까지 기뻐 역사하시어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응답과 이적들, 승리와 역전들, 복과 부흥들이 될 수 있느냐에 있어 생각보다는 더 깊이 연관되며, 사실상 전적으로 직결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사도행전16:25~26)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5년 2월 25일(화)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