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세리프sans serif
김영찬
그러면 뭐가 그리 달라지겠어요?
책 제목이
' Borges and the eternal Orangutans' 라는 데 그렇다고는 하는데
외국어 좀 안다고 으스대면
'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서
귀가 길어질 것도 아닌데
'보르헤스와 그리고 불멸의 오랑우탄'의 정확한 직역을 통해서 횃불 밝은
거리를 걸으면
'국가와 황홀(송상일)'
ㅡ그것은 여자의 구멍에서 비롯된 사건을 끝까지 추궁하겠다는
집요한 의도로 짐작된다 하더라도
나는 낼부터 호주머니 깊숙이 첼로농장이나 하나씩 집어넣고
16분음표처럼 떠돌 예정
스트링 늘어난 첼로가 jabbering jabber 재버보키의 말도 안 되는
시를 모방하려 한다면
이봐! 이스라펠, 이스라펠 그거 정말 생각나나?
나는 잠깐 졸다가 후다닥 깨어나도
아무 것도 짚이는 거라곤 없는
한밤중입니다
오리무중인 나는 아무 것도 짚이는 게 없는데 무너져 폐허가 된
피라미드 돌무더기 위로 올라간 그녀는 아무런 이유 없이
옷을 벗었고
가랑이 벌어진 그녀와 맞닥뜨려 침묵이 흘렀을 때
그것은 별반 놀랄 일도 아니어서
꼬리 접은 오랑우탄이 나뭇가지를 놓아버리는
꿈을
아니 현실을 놓아버리고
허공에 나뒹굴어 등뼈가 부러지는 걸 목격하게 되겠지 아마도, 아마
ㅡ보르헤스와 불멸의 오랑우탄들, 이 무더기로 등장하게 된 연유
리얼리티라는 게 오랑우탄의 언어로는 도무지 통하지 않는
어떤 얘깃거리일 뿐이라는 것
그런 것이기도 하고 그게 아니기도 하기 때문에 순전히
오랑우탄이 제 엉덩이 긁는 일이 요즘 들어 매우 빈번해졌을 뿐, 이다 아니다
계간 『시로 여는 세상』 2017년 봄호 발표
시집으로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와 『투투섬에 안 간 이유』가 있음. 웹진 『시인광장』 부주간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