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신발을 가지런히 >
- 文霞 鄭永仁 -
이른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가지러 나간다.
현관 바닥에는 운동화 한 켤레만 빼 놓고 다른 네 켤레는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다.
오늘 세상 삶이 고단했나 보다. 어떤 녀석을 자빠져 있고, 다른 신발은 나동그라져 있다.
집사람 운동화는 손주 보느라고 지친 듯이 제멋대로 쉬고 있고. 며느리 긴 부츠는 허리가 반이 꺾인 채 벽에 기대 서 있다. 백수가 된 아들 운동화는 쳐진 어깨처럼 앞코가 시르죽어 있다.
그나마 기운 남아 있는 신발은 손주 녀석 거다. 그 신발도 학원에 시달리고 있는 지 콧중둥이를 박고 코를 골고 자는 듯하다.
백수인 내 신발만 가지런하다.
현관에 벗어던진 신발 가족들을 보면 가정 형편을 대변하는 것처럼 고달파 보인다. 하루 종일 최하위 계층으로 온갖 고달픔 다 당하다가 겨우 이제야 쉬고 있다. 주인 몸무게에 하루 종일 짓눌리고, 뜨겁고 차갑고 질척거리고 더러운 것을 바짝 붙어 다니다가 이제야 돌아와 쉰다. 발과 신발은 불가촉천민처럼 묵묵히 소명을 다한다.
그러나 기중에 자꾸 커지는 것은 손주 것뿐이다. 거기다가 다른 사람 신발들을 무채색의 시르죽은 검정색이지만, 손자 것만은 컬러풀하다. 신발도 신세대답다.
얼마 전에 침을 맞으러 한의원에 갔다. 신발장이 있는 벽에는 이런 방(榜)이 붙어 있다. '비싼 신발은 신발장에, 아주 고가인 것은 카운터에 맡기란다. 분실하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단서를 붙여……. 흰고무신을 듣고 가서 비싼 것이라서 카운터에 맡긴다고 하나, 아가씨의 눈이 똥그래진다.
분실하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말이 참으로 묘하다. 그렇다고 방안까지 들고 들어갈 수도 없는 일이고. 마치 시골 잔치에 할머니들이 신발을 상 밑에다 모셔 놓고 음식을 먹는 꼴이니……. 그래서 그런지 이즈음은 개별신발장에 열쇠까지 목욕탕처럼 준비하는 음식점들이 늘고 있다.
신발 정리!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불가촉 같은 존재가 아닐까?
확실히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신발들을 보면 마음이 심란하다. 영국 도둑들은 훔치러 현관에 들어가서 현관 바닥에 신발들이 가지런히 정돈된 것을 보면 그냥 나온다고 한다. 평소에 그렇게 주의하나 훔치기가 여간 어렵다는 생각에서이다.
우리는 아주 사소(些少)한 것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다.
나와 집사람은 지극히 사소한 것 때문에 티격태격한다. 나는 치약의 꽁무니부터 짜 쓰지만 집사람은 배때기를 눌러서 쓴다. 집사람은 변기 엉덩이 받침대를 내려놓지만 나는 올려놓는다. 신발도 마찬가지다. 나는 가지런히 놓아야 직성이 풀리지만, 집사람은 제멋대로 벗어 놓는 것에 이골이 나있다.
이는 나의 강박관념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면 제자리에 있지 못하고,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얼마나 사회가 소란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 자리에 적합한 인물이 제자리를 지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논공행상의 떡 하나 주듯하니…….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한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디테일(Detail)을 등한시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 사이에는 무수한 단계가 있고, 흑(黑)과 백(白) 사이에는 무수한 색의 계조(階調)가 존재하는데….
중국학자 왕중추의 『디테일의 힘』이라는 책은 ‘100-1+0’, 100에서 1를 빼면 99가 아니라 한방에 망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의 대국적인 대충 철저를 꼬집은 말이 기도하다. 지금은 디자인의 시대다. 디자인의 핵심은 디테일, 섬세함에 있다. 돌은 부드러운 물을 이기지 못한다. 바야흐로 부계사회에서 모계사회로의 회귀현상은 여성들의 섬세함을 무뚝뚝한 남자들이 이것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한탕주의, 한방주의 등의 로또현상도 이ㅘ 같은 맥락이다.
우주선이나 자동차의 수많은 부품 중에서 하찮은 나사 하나 이상이 생겨도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거대한 고층건물도 결국 벽돌 한 장부터 쌓는 것이다.
신발을 정리한다는 것은 하루의 마지막 마음을 차분히 정리하는 것이다. 내일은 아무렇게나 살지 않겠다는 마음다짐이기도 하다. 하다.
화장실 소변기 앞에 붙은 이런 문구를 자주 접한다, 남자라면!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머문 자리를 가지런히 하는 사람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마무리하는 삶은 의미한다.
오늘 바깥 삶을 현관에다 벗어 놓는다. 온갖 최하위 삶은 궤적을 따라 다닌, 버텨준 신발을 좀 편히 쉬게 벗어 놓자.
신발이 점점 커가는 손자에게 신발을 가지런히 놓으라고 당부했다. 점점 커가는 삶이기 때문에…….
첫댓글 마음에 와 닿는 말씀 이세요 ~
좋은 글..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점점 커가는 삶에 기본이 우선이겠지요. 신발을 가지런히 하고 집으로 들어가면 하루도 가지런하게 정돈될 것 같아요. 늘 진솔한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