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통·주택시장 소형 선호 무 반개, 달걀 1팩 6개…
포장 줄였더니 대박행진 초소형 아파트값 급등
'아기 울음 분석기'라는 제품이 있다. '워킹맘(일하는 엄마)+홈대디(살림하는 아빠)'로 이루어진 가족이 늘면서 육아업체에서 남성 주부(主夫)나 초보 아빠들을 겨냥해 내놓은 상품이다. 아기가 울 때 배가 고픈지, 지루한지, 짜증 났는지, 졸리는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바로 알려주는 상품으로 가격은 3만원 안팎이다.이뿐 아니다. 유통업체들은 홈대디들을 위해 남성 전용 기저귀 가방, 아빠용 청소기, 초보용 밥솥 같은 제품도 내놓고 있다. 신세계 백화점은 여자 화장실에만 있던 기저귀 교환대를 남자 화장실에도 설치했다. 통계청은 이 같은 트렌드를 반영해 '2008 한국의 블루슈머(새로운 소비자)' 중 하나로 '요리하는 남편, 아이 보는 아빠(홈대디)'를 꼽기도 했다.
요즘 신세계 이마트의 최대 효자 상품은 가족 구성원이 한두 명인 소비자 수요에 맞춘 이른바 '990 상품'이다. 포장 단위를 판매가 990원에 맞춰 무는 반 통, 감자·양파는 2~3개, 달걀은 6개들이 식으로 만들었다. 지난 2월 초 이마트는 10여개 야채를 중심으로 내놓았는데, 두 달 만에 20만개 이상이 팔려나가는 '대박'이 됐다.
깜짝 놀란 이마트는 '990 상품'을 가공식품 부문으로 확대해 국수나 어묵 등을 끓이면 곧바로 1인분 식사나 간식이 될 수 있도록 포장했다. '990 상품' 품목 수는 50여개로 늘었고, 지금까지 모두 100만개 이상 팔려나갔다. 신세계 방종관 프로모션 팀장은 "1~2인 가족이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막강한 소비 파워가 있는 줄 우리도 몰랐다"며 "새로운 가족 형태가 만들어 내는 트렌드를 좇기 위해 전담팀을 두고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재구성되는 가족 형태'는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우일렉트로닉스는 2년 전부터 13.2m²(4평)형·19.8m²(6평)형 에어컨을 내놓았는데, 매년 50%대의 매출 신장을 보이고 있다. 주 소비층은 독신·맞벌이 가족이 주로 거주하는 오피스텔 등이다.
일반 가정용의 절반 크기도 안 되는 미니 드럼 세탁기(6kg) 역시 매출이 쑥쑥 자라고 있다.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은 초소형 미니세탁기(2.6~3.3㎏)까지 내놓았다. 대우일렉트로닉스 채경아 차장은 "미니 가전품은 전통적으로 일본 시장 정도를 겨냥했지만, 요즘은 국내 소비 기반이 더 단단해졌다"며 "요즘은 혼수용 제품 못지않게 미니 제품이 잘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 ▲ 신세계 이마트의‘990 상품’코너. 가족 구성원이 한두명인 소비자 수요를 타기팅해 포장 단위를 작게 만든 식품들을 선보여 대박을 터트렸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주택 시장에선 소형 평형 미니 아파트·오피스텔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지난해 12월 입주한 삼성동 힐스테이트 46㎡형은 호가가 크게 뛰어 4억원이 넘는 매물도 많다. 관악구 봉천동 관악캠퍼스타워 53㎡형은 연초 대비 3000만~3500만원가량 올라 현재 1억1500만원 정도에 매물이 나와 있다.
이들 미니 아파트는 대부분 정부의 재건축 정책에 따라 억지로 생겨난 천덕꾸러기였지만, 1~2인 가족 소비자들이 선호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혼자 사는 가족이 늘면서 한 건물 내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한 유형의 주택, 출퇴근이 편리한 도심의 소형·기능성 주택이 인기를 끄는 것"이라고 말했다.
'딩크펫(DINK+pet) 가족'처럼 애완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늘면서 애완 관련 산업도 뜨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명에 육박하고, 애완 관련 산업의 시장규모도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한국펫산업협회). 애완동물을 위한 병원은 물론, 호텔·카페·유치원·미용실·의류 등은 물론 애완견 장의사란 직업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애완동물 관리비용에 대한 할인 혜택을 주는 신용카드며, 치료비·수술비를 보장해 주는 애완동물보험 등도 있다. 대구산업정보대학 서승교 교수(애완동물관리과)는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애완 시장 규모가 커진 것은 '1~2인 가족' 팽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또 재혼 가족이 늘면서 재혼 전문 결혼정보업체까지 생겼다. 결혼전문업체 한 관계자는 "작년엔 재혼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가 매출 2위로 올라서 업계에서도 큰 화제였다"며 "결혼정보 시장에서 재혼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년 전 5% 정도에서 현재 20% 수준으로까지 높아졌다"고 말했다. 연세대 경영대 이동진 교수는 "1~2인 가구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이라며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나 홀로 가정이나 2인 가구가 지향하는 가치관이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분석과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