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볕이 눈부신 안동의 오늘
가을처럼 별명이 많은 계절이 또 있을까? 천고마비의 계절, 추수의 계절, 단풍의 계절, 독서의 계절...오색으로 물드는 단풍 만큼이나 다채로운 이름을 가진 게 가을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을 꼽으라면 바로 '낭만의 계절'이 아닐까 한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가을은 그 어떤 때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계절이 아닐 수 없다.
가을을 맞아 책 한권을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시린 가을 공기를 녹여줄 따뜻한 연인의 손을 잡은 채 여행길에 올랐다. 칙칙한 잿빛 도시의 풍경을 뒤로 하고 알록달록한 단풍 구경을 떠나온 이곳은 익히 알려진 하회마을 외에도 볼 거리와 즐길 거리가 참 다양한 도시, 안동이다. 숙소는 한옥 특유의 분위기 덕에 차분하게 가을 감성에 스며들기 좋았던 품질인증 숙소, 풍송재로 정했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다, 풍송재
현대인들의 손길로 완성한 우리 전통가옥
안동 풍송재
안동의 한옥마을은 경상북도가 경북도청 설립을 기획할 당시에 전통과 문화가 잘 보존된 도시인 안동과 예천, 두 도시의 문화 콘텐츠를 도청 신도시에 함께 녹여내서 우리 전통문화가 살아있는 마을로 꾸려내겠다는 의도 하에 조성되었다. 이 때 안동시 풍천면과 호명면, 두 개의 행정구역이 합쳐져 총 8채의 한옥 주택이 있는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번에 다녀온 한옥숙소 풍송재다.
가을을 만난 풍송재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한옥이 주는 정취는 유난히 편안한 인상을 남긴다
풍송재는 전통 방식으로 지어진 한옥이지만, 엄연히 신축 건물에 해당되어 낡은 느낌보다는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이 강했다. 또, 방마다 현대식 개별 화장실이 쾌적하게 완비되어 있어 전통적 느낌과 편리함을 동시에 살린 숙소였다. 숙소의 위치 역시 좋았다. 안동의 자랑, 하회마을과는 10분, 병산서원과는 15분 정도 거리에 있어 여행코스를 짜기에 더 없이 편했기 때문이다.
한국관광 품질인증 마크도 받았다
우아한 풍채로 손님을 반기는 풍송재
진돗개 솔이와 함께 반갑게 손님을 맞는 사장님 덕에 안동의 첫인상이 무척 좋게 다가왔다. 객실의 상태 역시 최상의 컨디션이었는데, 한국관광 품질인증 마크를 받은 숙소답게 객실 내부와 화장실 등이 매우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독채처럼 이용할 수 있는 풍실을 이용했는데, 다른 객실과 다르게 주방이 있어서 인덕션, 전자레인지, 밥솥 등 간단한 요리까지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주방도 딸려 있어 간단한 취사도 가능하다
단정하게 정돈된 객실 내부
호텔처럼 시크하고 모던한 멋은 없어도, 목재와 고운 흰색으로만 정갈하게 꾸며낸 실내 인테리어는 마냥 머무르고 싶을 정도로 잔잔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시골 친척 댁에 방문한 듯 정감가는 이불에서는 조금만 몸을 뒤척여도 사각사각 좋은 소리가 들려왔다. 거리에 울려 퍼지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 없이, 눈앞이 아찔하게 화려한 네온 간판들도 없이, 눈앞을 가득 메운 빌딩 숲 없이 그저 고요하고 차분한 풍송재에서의 하루는 혹시 몰라 챙겨온 책 한권을 진하게 음미하도록 도왔다.
간만에 누리는 잔잔한 여유
'풍성하게 숲을 이룬 소나무 숲의 경치'라는 뜻을 가진 숙소, 풍송재. 이름에 걸맞게 곳곳에 솔 향기가 진하게 묻어나는 아름다운 경관이 숨어 있었다. 난간이 있는 누마루에 올라, 풍송재에서 제공받은 커피와 약과를 곁들이며 선선한 가을 공기와 시간을 보냈다. 곳곳에 쏟아진 햇빛이 따사로워서, 낮인데도 어쩐지 슬며시 잠이 들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전통놀이도 즐길 수 있다
소담스럽게 꾸며진 정원
디테일도 훌륭하다. 객실마다 고무신을 신어볼 수 있게 비치해두고 있는 점과, 어떤 객실에서 창문을 열어도 안온한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마당을 항상 단장해 두고 있는 점, 그리고 아이와 함게 온 가족 여행객을 위해, 전통 놀이도구도 구비해놓은 점을 보면 말이다. 때를 놓치지 않고 만개한 가을 꽃은 마치 오래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킨 듯 자연스럽게도 시선을 끌었다. 부담스럽지 않게 아담한 공간에서 팝콘 터지듯 피어난 꽃들이 사랑스러워, 가만히 앉아 한 송이 한 송이 눈에 담았다.
독서의 계절에 물들다
좋은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은 편하다. 억지로 대화를 이끌어내어 공연히 소란한 시간을 만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서로의 온기와 기척만 닿는 거리에서 각자의 공간과 시간을 가지더라도, 둘이서 함께 만드는 여행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가을에는 시를 읽기 좋다'고 말하며 책 한권을 다시 펼쳐 든 연인을 조금 먼 발치에서 사진에 담았다. 연인은 글과 대화했고 나는 그런 연인이 담긴 사진과 대화했다. 같은 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서 우리가 만드는 여행은 조금씩 달라서 오히려 나중에 함께 추억했을 때 더욱 의미가 깊어지게 될 것이었다.
한옥의 장점과 책을 잇다, 구름에 Off
가을 독서의 낭만을 잊지 않은
당신을 위한 안동의 여행코스
"구름에 Off" 북 카페
스마트폰의 좁은 화면 대신 눈 앞의 자연에 집중하고, 쉼 없이 전개되는 영상 콘텐츠 대신 정제된 텍스트를 눈에 담다 보니 같은 24시간이라도 하루가 길고 알찼다. 읽던 책을 완독한 연인과 함께 다시 탐독할 거리를 찾으러 북 카페, "구름에 Off"를 방문했다. 비움과 채움, 체험과 사유가 공존하는 이 곳은 전통식 한옥 리조트 '구름에'에서 운영하는 한옥형 북카페다.
대칭을 맞춰 지은 한옥 건물이 우아하다
책들로 빼곡히 채워진 카페
약 1,500권에 달하는 다양한 도서를 구비하고 있으며, 소규모 회의나 강연도 가질 수 있는 이 곳. 한옥과 자연환경이 가진 안락함을 바탕으로 '책과 독서'라는 콘텐츠를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냥 도시적이고 세련된 디자인만 추구하지 않고, 이렇게 지방 곳곳에 고유한 멋을 가진 하나뿐인 공간을 만들어 운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한권에 빠져들 준비를 마쳤다
달콤한 빙수와 함께하니 더욱 즐거웠다
담백한 달콤함이 입안에 잔잔히 펼쳐지는 빙수와, 마음에 드는 책 한권을 집어 다시금 가을 독서를 청했다. 속은 든든하게 채우고, 시끄러운 상념은 천천히 비워내는 시간. 카페 이름에 들어간 'Off'라는 단어처럼 항상 예민하게 켜져 있던 다양한 생각들과 관계들을 잠시 꺼둘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가을 정취로 흠뻑 물들은 공원
금빛 낙엽 쏟아지는 공원에서 마냥 머무르고 싶었다
당신에게만 보여주고 싶은 한 폭의 가을,
안동의 비밀정원
낙강 물길공원
파란 하늘 대신 울긋불긋 단풍의 색을 머금은 연못과, 하늘하늘 눈꽃처럼 떨어지는 낙엽들이 어우러져 없던 감성도 샘솟게 만드는 이곳은 안동의 가을 절경을 만끽할 수 있는 낙강 물길공원. 도시에서는 쉬이 만나볼 수 없는 거대한 수목들이 자리를 채워,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설렘이 느껴질 정도다.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이 정겹다
''한국의 지베르니''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경마저 멋스러운 풍송재
잔잔한 가을 정취에 밤이 가는 줄도 몰랐다
낮이 짧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아름다운 안동의 밤도
길어진다는 것
청명하게 반짝이는 가을 햇살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은 하루가 바뀔 때마다 점점 짧아지지만, 그만큼 안동의 정답고 따스한 가을 밤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늘어나기에 아쉽지 않았다. 조금 쌀쌀해진 날씨에 외투를 입고 풍송재 마당에 나와 밤 경치를 구경했다. ‘조금만 더 추워지면 입김이 나오겠다’, ‘이제 한 해도 저물어 가려고 하나보다’처럼 어쩌면 당연하기 그지없는 대화를 나란히 앉아 주고 받는 이 시간조차 바쁜 도심 속 생활에서는 허락되지 않았던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