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생각이 아무리 간절하다 하여도 입 밖으로 내어 표현할 때
그것이 왠지 도에 지나치다 싶은 말은 듣는 사람을 민망하게 한다.
그와 관련한 가장 흔한 예가 사랑하는 남녀가 나누는 대화가 될 것이다.
사랑은 유치할수록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것은 정작 당사자가 아닌 제 3자가 듣기엔
온 몸에 닭살이 돋는 야릇한 느낌을 갖게 된다.
예전에 임금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차마 민망한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들을 두고
그 충성도를 가리기도 전에 그냥 '간신'이라는 명칭을 붙여 준다.
요즘 세상에도 구석 구석에 간신들이 참 많구나 싶다.
오늘 아침 뉴스를 접하면서 나는 왠지 모를 민망함을 또 경험했는데
어제 화제가 되었던 최원석 회장과 장은영씨의 이혼과 관련한 기사의 일부이다.
제목부터가 왠지 민망하다.
최원석 “이혼은 미안함의 표현”..장은영 “버거움 누적”
그들은 미안해서 이혼한다는 말을 할 만큼 서로에게 다가 올 삶의 모습에 대해
예측하거나 생각해 보지 않고 결혼을 했다는 말인가?
부부가 함께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동안 진심으로 자신의 배우자에게
서로가 미안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까 싶어진다.
나 역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며
오십 중반의 남편이 약간의 코를 골며 잠든 모습을 어쩌다 마주치게 되면
그의 얼굴에 자리한 세월의 주름살이 모두 내 탓인 양 생각되어 미안하고 마음 아파지는 순간이 많다.
가장으로서의 살아야하는 삶의 짐이 결코 가볍진 않았으리라 싶어지면
곁에서 별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하고 남편의 그늘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내가 미안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 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미안한 마음이 드는 순간들이 많다.
세상의 모든 부부는 그렇게 서로 미안해 하고, 또 서로에 대해 서운해 하기도 하지만
신뢰하고 고마워하면서 서로 어깨를 토닥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너무 미안해서 이혼해야 한다면 이혼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갈 부부는 몇이나 될까?
이 기사의 타이틀은 왠지 읽는 사람을 기만하는 느낌까지 드는 것이다.
기사를 조금 인용해 본다.
"이 변호사는 "지난 4월 변호사 사무실에서 합의서를 쓸 당시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증언했다. 그는 "최 전 회장은 '젊은 나이에 시집 와 10년
넘게 마음 고생을 많이 시켰습니다. 장 이사가 좀 편안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혼은 내 미안함의 표현입니다'라고 말했다.
장은영도 '회장님은 정말 남다른 인물이십니다. 그릇 자체가 다른 분이십니다.
그런 큰 사람의 아내로서 나는 너무 평범한 사람이라 나도 모르게 버거움이 누적되어
있었나 봅니다. 무엇보다 연로하신 시어머님께 죄송합니다'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이를 뒷받침하듯 장은영은 남편을 상대로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시집와서 10년 넘게 고생한 아내가 편안해지도록 하기 위해 이혼을 결정한 남편,
남편의 그릇이 남다르게 커서 연로하신 시어머님께는 죄송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혼을 한 아내라고 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청구소송도 하지 않은 착한 그녀로 우리는 그들을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의 이혼이지만 이 부분에서 왠지 불쾌하다.
불쾌하기도 하지만 온 몸이 오글오글 오그라드는 듯 하다.
부부로 살아 온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어떤 오해가 이렇게 서로를 갈라놓게 되었는지는 알길이 없으나
결별을 두고 서로가 말하는 이야기는 각본에 따라 앵무새처럼 대본을 읽는 것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또한 민망하기 짝이 없다.
이 기사를 쓴 기자의 의도가 무엇인지가 훤히 보이기도 하지만
그리 안타깝고 미안하다면 더욱 더 속 깊은 사랑을 함께 엮어갈 수 있어야하지 않은가?
그들은 서로를 선택하던 그 순간부터 그들에게 다가 올 삶의 다양한 형태들을
미루어 짐작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다고 본다.
'떠날 때는 말 없이' 라는 말이 있다.
그냥 말 없이 서로 등을 돌리는 편이 차라리 쿨해 보일 것이다.
그래도 한 마디 꼭 해야 한다면 "부끄럽다", 혹은 "죄송하다"라는 간단한 멘트도 있는 것이다.
여성편력이 화려한 최원석 회장의 곁을 떠나는 그녀의 속내도 어쩌면 약간의 세월이 흐른 후,
'진실을 말하다'라는 제하로 세상에 또 한 번 화제로 탄생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의 진실이라는 것이 전혀 궁금하지 않으며
나이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구경한 듯한 기분이 된다.
솔직히 말한다면 이혼기사를 보면서 무수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 내 그럴 줄 알았다" 라는 말로 혀를 쯧쯧 찼을 것만 같다.
더 이상의 뒷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민망한 기사를 접한 아침이었다.
첫댓글 다만 사랑이 부족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