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의 한 섬인 우리 고향에서는 오뉘죽이라는 팥죽을 즐겨 먹는다. 큰 무쇠솥에 쌀과 팥과 물을 넣고, 소금으로 알맞게 간을 한 다음, 두 곡물의 형체가 완전히 허물어지고, 그 향미가 미묘하게 어우러질 때까지 장작으로 불을 지펴 만든 죽이다. 조리법은 이렇게 매우 간단한데 문제는 소금이다. 옛날에는 바닷물을 가마솥에 넣고 불을 때어 얻어낸 화염을 썼으나, 해방을 전후해서 더이상 제조되지 않는 이 화염의 자리를 천일염이 대신 차지하였다. 천일염은 알다시피 바닷물을 햇빛에 말려 얻은 소금이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는 죽 솥에 천일염을 넣지 않을 수 없게 된 후 제맛을 지닌 오뉘죽을 먹을 수 없다고 마지막 병석에서까지 한탄했다. 천일염은 바다에서 그저 짠 기운만 건져낸 가짜 소금이어서 화염의 맛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뉘죽에 넣은 소금이 화염인지 천일염인지 그 맛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은 그때에도 별로 많지 않았다.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외할머니가 '제대로 된 죽 맛' 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외할머니가 세상을 뜨면서 오뉘죽의 맛을 지정으로 아는 혀도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내가 천일염에 관해 나쁘게 말해서는 안된다. 천일염만 하더라도 좋은 소금이다. 사실 우리 고향 섬은 한국의 중부 이남에서 최초로 천일염을 구워냈을 뿐만 아니라 단위 지역으로는 한때 가장 많은 소금을 생산했다. 그 염전의 대부분이 논과 밭으로 바뀐 지금도 시장에서 가장 질이 좋다고 평가되는 소금이 그 섬에서 나온다. 내가 그 섬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몇 분 선생님들이 5학년 학생들을 이끌고 천일염의 제조 과정을 연구하여 전국과학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 바로 그 5학년에 내가 속해 있었으니 그때만 해도 나는 소년 과학자였던 셈이다. 내가 했던 일은 물론 미미하다. 선생님들이 종이풀로 염전의 모형을 만들 때 그 종이풀을 이겼으며, 3개월에 걸쳐 염전 관찰일기라는 것을 쓴 정도다. 그러나 이 덕택에 지금도 누가 염전에서 소금을 굽는 방법과 절차를 말하라고 하면, 지루함을 참고 들어줄 사람만 있다면, 두어 시간을 혼자 떠들 자신이 있다.
외할머니가 들으면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라고 하겠지만, 천일염이 바다에서 짠맛만 건져낸 가짜 소금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같은 천일염이라도 질이 다르고 맛이 다르다는 것이 그 증거일 수 있겠다. 우리 섬의 어른들은, 비록 오뉘죽의 맛에 날카롭지는 못했어도, 소금 그 자체의 맛에는 너나없이 귀신들이었다. 소금 한 알갱이를 입에 넣으면, 섬의 동쪽 염전 소금인지 서쪽 염전 소금인지, 초여름 소금인지 늦가을 소금인지, 어김없이 알아맞혔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맹세코 사실이다. 이 어른들은 지금 거의 모두 세상을 떴으며, 살아 있더라도 여든 줄의 노인이다. 내 또래 이후의 힘깨나 쓸 만한 장정들은 하나같이 서울 사람이 되었고, 소금의 생산 방식도 소금 맛을 망치는 쪽으로만 달라졌으니, 이 어른들을 마지막으로 소금 맛을 아는 미각이 사라질 것이며, 아예 소금 맛이라는 것조차 없어지고, 이 세상의 모든 소금은 그저 짠맛을 지닐 뿐이리라.
나는 방금 '소금 맛의 귀신' 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비유가 아니다. 흙에 따라 계절에 따라 소금 맛의 미묘한 차이를 만드는 조화의 귀신이 개펄과 바람 속에 숨어 있고, 어른들은 그 귀신과 내통을 하고 있었으니 그들 역시 귀신이 아닐 수 없다. 귀신들은 소금에만 붙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때 이 땅에는 그런 귀신들이 참 많았다. 안방에는 술을 익게하는 귀신들이 있었고, 건넛방에는 메주를 띄우는 귀신들이 있었다. 또다른 방에는 엿기름을 엿으로 만드는 귀신들이 있다. 우리 할아버지는 생전에 안방에는 결코 엿 항아리를 들이지 못하게 했다. 엿이 술을 '탁한다' 는 것이었다. '탁한다' 는 말은 닮는다는 뜻이다. 엿 항아리가 안방에 들어간다고 해서 엿이 술을 닮다니, 어린 시절의 나는 이런 생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일종의 미신일 것이라고만 치부했다. 안방에는 누룩곰팡이의 뜸씨가 살고 있고, 건넛방의 벽지에는 메주 곰팡이의 뜸씨가 스며들어 있따고 깨닫게 된 것은 아주 훗날의 일이었다.
어느 집이건, 집에는 성주신이 있고, 부엌에는 조왕신이 있고, 변소에는 측신이 있는데, 이 신들은 모두 뜸씨들과 다른 것이 아니라고 이제 나는 생각한다. 이 신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왔고, 우리와 함께 그 영검이 깊어졌으며, 또한 우리 운명의 많은 부분을 지배했다. 그것들은 우리와 숨결을 교환하고 냄새를 교환했다. 그것들은 우리의 고독한 몸을 세상의 만물과 이어주는 연결선이며, 그렇게 맺어온 관계의 흔적들이며, 세상과 사랑을 나눈 내력들이며,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남은 기억의 시간들이었다. 그 귀신들의 조홧속을 몸과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느끼며 살아가는 동안, 저 오뉘죽의 마지막 혀였던 우리 외할머니처럼 우리들도 모두 죽기 전에 귀신이 된다. 그래서 이 귀신들이 없다면, 한 사람이 백 년을 살았어도, 단 한시간도 살아보지 못한 셈이 된다. 우리 가족이 서울로 모두 이사한 후, 어머니는 며느리인 내 아내에게 청국장 담는 법을 가르치려고, 일곱 번 콩을 삶았으나 일곱 번 모두 실패했다. 고향 집의 청국장 귀신이 서울의 아파트에까지는 따라오지 않은 것이다.
이후 나는 제사상 앞에서 절을 해도 건성으로만 한다. 이미 우리 집에 귀신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귀신들은 사라졌다. 내 몸과 마음은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진정으로 연결되지 않을 것이며, 내가 살아온 흔적은 모두 규격 봉투에 담겨 구청의 쓰레기차에 실려갈 것이다. 요즘 말로는 이 귀신들을 뭉뚱그려 타자라고 부르는것 같은데, 이 새로운 이름이 그 귀신들과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이어줄 것인지, 아니면 그나마 남은 맥을 완전히 끊어놓을 것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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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뉘죽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재주가 신기하고 앞뒤로 막힘이 없이 일을
잘 처리하면 귀신같다고 했던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