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나다움을 지킬 수 있을까?
버티는 힘, 명민하게 비판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힘은 말과 기호로 더욱 딴딴해질 수 있다
일상에, 관계에, 사회에 문제가 있다면 언어감수성이 필요한 때라고 말하는 언어학자 신동일 교수의 따뜻하고 품격 있는 에세이. 언어학자의 시선으로 팬데믹 전후 우리가 목격했던 위험사회의 장면들을 ‘다시보기’하며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잡아낸다. 이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발견하지 못했던 차별과 억압, 대립과 고립을 포착하는 과정이다.
권위주의 문화 속에서 나만의 말투를 버린 채 정해진 대답을 뱉어야만 하는 당신, 편 가르기에 휩쓸려 원하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하는 당신, 차별과 억압 속에서 올바르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당신... 이 모든 당신들이 겪었던 아픔이 언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 언어를 바꾸어서 자유와 사랑을 회복할 수도 있다.
저자는 기의, 기표, 통합체, 계열체 등의 언어학 개념을 통해 비판적 언어감수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갑질 고객과 매뉴얼로 응대하는 직원 간 대화와 같은 일상 풍경부터 시사 문제, 나아가 멜로가 체질, 파울로 코엘료의 책 등 영화, 드라마, 소설까지 삶의 길목에서 오가는 다양한 언어 상황을 살펴본다. 사회를 예리하게 비판하는 문장 속에 숨길 수 없이 묻어나는 따뜻함으로, 저자는 소박하고 올곧은 주체성을 지키면서 살고 싶은 독자에게 손을 내밀고 함께 우정을 나누며 버티는 삶을 응원한다.
👨🏫 저자 소개
신동일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한국인이 ‘또 다른 언어’를 배우거나 사용하면서 발생한 문제적 상황을 개인의 결핍으로 보지 않고 사회구조적 관점으로 탐구하는 언어평가학, 문화언어학 연구자이다. 언어, 기호, 대화, 서사, 담론, 교육, 평가, 심리, 사회, 통치, 정책, 미디어, 콘텐츠, 미학 분야 등을 횡단하며 학제적 연구활동을 한다. 앞으로도 차별의 경험과 부적절한 관행이 언어능력과 언어사용의 의미에 어떻게 개입하는지 주목할 것이며 언어감수성과 언어통치성 연구에 자유, 차이와 다양성, 횡단, 도시공간, 생태, 실용 등의 가치를 보태고자 한다. 국내외 전문 학술지에 140편의 논문을 게재하고 『담론의 이해』, 『앵무새 살리기』, 『접촉의 언어학』 등의 책을 출간했다. 자유, 사랑, 존귀한 삶의 양식을 찾을 때 언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공부하고 있다.
📜 목차
시작글
1부 분투하는 그대에게
1장 착해야만 하는 그대에게
1 “고객님 죄송해요”
2 서바이벌 오디션, 혼내는 몰래카메라
3 아이돌 스타의 90도 폴더 인사
4 승무원의 친절한 말과 갑질 고객
5 진흙탕이 되는 직장
2장 차별받는 그대에게
1 ‘우리 사람’만 찾는 학교 문화
2 여자 월드컵 축구팀의 동료애
3 청탁하는 꼰대와 거리 두기
4 “한국말이 서툴러 때렸습니다”
5 ‘순수한 의도’를 따지는 의도
6 축구를 보지 않아도 되는 이유
3장 버티고 있는 그대에게
1 캐서린의 마라톤 완주
2 할머니처럼 버티기
3 감정 흡혈귀로부터 독립
4 일 중독에서 벗어나기
5 큰 스승에게 구하는 것
6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2부 자유와 사랑을 되찾으며
4장 자유를 다시 찾기 위해서
1 코로나 시대에 꿈꾼 자유
2 반지성주의를 경계할 것
3 빼앗긴 금메달에 관해
4 폐쇄된 언어사회
5 공공정책과 민주주의
6 마스크 1
7 마스크 2
5장 온전하게 사랑하기 위해서
1 나르시시즘에 대하여
2 싸이와 김장훈; 사랑과 미움
3 사랑은 낭만이 아니라 기술
4 소유와 존재
5 사랑을 꿈꾸는 이유
3부 버티는 삶, 언어의 힘
6장 랭스코퍼로 버티기
1 싱어송라이터로 살아가기
2 소설로 버티기
3 드라마로 버티기
4 읽고 보이는 것으로 하루를 버티기
5 미니멀리스트로 산다는 것 1
6 미니멀리스트로 산다는 것 2
7장 버틸 수 있는 언어의 힘
1 대면으로 다시 만나야 하는 이유
2 MZ 세대와 소통하고 싶은 분들에게
3 단일언어 사회 바깥에서
4 명절의 언어잔치
5 불이행의 정치, 정치인의 언어
6 노아의 언어를 상상하며
7 언어에 관한 상식, 언어 연구자의 역할
8 담론과 언어감수성 교육
9 언어기술은 자기배려의 기술
후기
부록: 자유, 사랑, 언어에 관한 지침
1 자유에 관해서
2. 사랑에 관해서
3. 언어에 관해서
📖 책 속으로
언어에 관한 비판적인 감수성을 가진다면 우린 자유를 속박하고 사랑하는 관계를 왜곡하는 여러 종류의 고립과 고통에 대해 좀 더 민감할 수 있습니다. 아픈 것을 아프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느낄 뿐 아니라 아프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궁금해하고, 다른 삶의 방식은 없는지 탐구하게 됩니다. 언어감수성이 생기면 우리는 더욱 경청하며, 질문하며, 대화에 참여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논증을 만들게 됩니다.
---「시작글」중에서
요즘은 뉴미디어에서 ‘참교육’ 콘텐츠가 넘칩니다.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혼내는 내용입니다. 공공장소에서 민폐를 끼치는 아이 엄마, 노인, 학생 등이 참교육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설정된 ‘민폐’의 상황이 지나치게 편향적입니다. 악인은 너무 쉽게 드러나며, 응징을 위해선 폭력까지 동원됩니다. 가해자는 고초를 겪고 엄벌을 받습니다. ‘참교육’ 콘텐츠는 공공의 분노를 자극하면서, 복수하고 처벌하는 행위성으로 정의를 가르치려고 합니다. 나는 그런 콘텐츠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지난 수년동안 격리와 고립을 견디어야 했고 혼내고 가르치고 지시하는 계몽에 너무 지쳤습니다. 그걸 보고 화면 밖에서 고만한 리얼리티를 흉내 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문화권력이 우리의 삶에 자꾸만 침투한다면, 서로 다르지만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성은 사라집니다.
---「서바이벌 오디션, 혼내는 몰래카메라」중에서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 모두 금전적 가치로 계산되는 지금 세상에서는 상냥한 표준언어도 매매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비싸게 구매한 컴퓨터나 자동차에 하자가 있다면 거칠게 불평하듯이, 고객은 친절한 언어도 비싸게 돈을 주고 산 것으로 생각하기에 무뚝뚝한 직원의 말을 참지 못합니다.
---「승무원의 친절한 말과 갑질 고객」중에서
비원어민, 언어소수자, 혹은 여러 언어를 자원으로 동원해서 소통하는 멀티링구얼(multilingual)은 종종 지배적 사회규범으로부터 언어적 타자로 소외됩니다. 자신의 모어로부터 만들어진 관계와 교육의 경험을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고, 그저 영토화된 권력 언어의 소유주들에게 외국인이고, 비원어민이며, 부적합한 언어사용자로 위치되곤 합니다. 폐쇄적인 언어사회는 다양한 언어들을 조합하여 사용하는 필요나 재미, 또는 언어학습의 서로 다른 관심이나 속도를 좀처럼 존중하지 않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언어를 잘 배우지 못해, 언어 시험 성적이 낮아서…. 언제나 특정 언어의 결핍 단면에만 골몰합니다.
---「“한국말이 서툴러 때렸습니다”」중에서
음악이나 미술을 포함한 다른 분야에서도 순수와 실용이 구분되곤 하며 순수한 분야는 위계적으로 더 나은 속성처럼 인식됩니다. 사랑, 우정, 결혼, 진학, 창업, 기업경영, 혹은 정당을 만들고 정치운동을 하는 걸 두고서도 우리는 ‘순수한’ 정신, 자세, 비전 등에 관해 따집니다. 정치인의 봉사활동을 두고 ‘순수한’ 의도를 따지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대개 ‘순수’ 항목에 힘이 실리는 건 기득권력을 유지시키는 담론전략일 뿐입니다. ‘순수’가 강조되는 언어사회는 ‘순수한’ 언어를 지키는 기득권력이 있습니다. 거기선 ‘비-순수’를 차별합니다. ‘순수’가 있다고 전제하고 ‘비-순수’의 의도를 가려내고 배제합니다. 순수한 속성은 잘 보이지도 않고 구분하기도 힘든데 말이죠.
---「‘순수한 의도’를 따지는 의도」중에서
바쁘게 일만 하면 살아가는 의미가 시간성이나 인과성의 통합체적 요소로만 촘촘하게 채워집니다. 성취감이나 경쟁의식에 중독된다면, 인접된 의미 정보가 온전하게 채워지지 못할 때 불안하거나 우울하게 되죠. 그래서 우리는 통합체적 요소를 다소 느슨하게 배열하고 계열체적 선택에 즐거움을 찾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일 중독에서 벗어나기」중에서
많은 가정의 구술문화는 주로 TV가 이끌어갑니다. 명절이 되어 북적일 때도, 손님들이 다 가버리고 난 후에도, 거실 가운데 위치한 커다란 TV는 누군가가 꺼낼 말을 찾아줍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은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하다가 켜져 있는 TV 방송의 해설자가 되어버리죠. 명절에 가족이 다시 만나 서로 위로하고 재충전을 해볼 작정이라면 그놈의 TV부터 치워야 합니다. 분명 상처받고 지친 누군가가 있습니다. 침묵이 있어야 누군가 말을 꺼내기 시작합니다.
---「명절의 언어잔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