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아래의 본문 말씀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소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 드리는 온전한 십일조는 하나님 아버지의 전적인 뜻이자 명령인 것임이 아닐 수 없으며, 사실상 그에 있어서는 이견의 여지 자체부터가 있을 수 없습니다..
사실상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세계에 있어 그러한 십일조라는 것은 부담이라거나 고민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특권이자 복의 통로로서의 비중이 상호 간에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강력한 것임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다만 잘 통찰해 보면 그렇게 온전한 십일조, 제대로 된 십일조, 하나님 아버지께서 열납하시는 십일조,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부합되고 복이 되기에 합당한 십일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고, 참으로 그 누구나가 그로 인해 말씀 그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으시는 것과 같은 약속된 복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와 같이 온전한 십일조가 가능하고 그로 인해 말씀대로의 복을 누릴 수 있는 자들은 더 이상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가 아닌 가장 먼저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직접적, 실질적으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인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된 자들인 것으로 그것이 바로 온전한 십일조에 관련된 모든 부분들에 있어 전적인 우선이자 전제이며, 근본이고 시작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에서 그렇게 십일조를 믿음으로 함과 함께 약속된 복을 누리게 됨에 있어서도 아무렇게나 가능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고, 실상 인간적인 힘이나 의, 세상적인 능력이나 방법들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일 뿐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는 제대로 할 수도 없는 것인데 사실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기도의 제목인 것이고, 그 어떠한 일들에 있어서도 하늘의 힘과 은혜가 없이는 온전하게 안 되는 것이며, 그에 있어서는 십일조에 있어서도, 진정 십일조야 말로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으로..
참으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누구나 연약함이 없을 수가 없고,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한 여러 가지 면에서 질그릇과 같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인 것이기에 모든 일들, 모든 순간들에 있어서, 특히 십일조와 같은 믿음의 몸부림과 결단들, 결코 쉬울 수 없는 믿음의 실천과 순종에 있어서야 말로 반드시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말씀의 신앙과 함께, 진정 그 어떠한 사안들, 그 어떠한 영역들, 그 어떠한 문제들에서도 변함없는 말씀대로의 믿음과 함께 말씀 그대로의 다양한 복들이 임하게 되고, 갈수록 차고 넘치게 될 수 있음은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그러한 만복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십일조와 같은 재물, 헌물을 위시한 세상 만물의 주인이시고 정말 온갖 복들을 주시는 생사화복의 주재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이고, 뿐만 아니라 바로 그러한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게 하시고 실질적인 믿음과 함께 여러 모양의 복들을 값없이 말씀대로 가능할 수 있게 하시는 길이 되시며 그 누구라도 어떻게든 반드시 그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주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며, 게다가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시어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모든 실제와 누림들, 생생함과 강렬함들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분이기에 심히 당연하고 마땅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실제로 다른 그 무엇보다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더 나아가 신실하고 치열하며 절실하고 뜨거운 말씀의 열정과 함께 가면 갈수록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케 되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됨과 함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응답과 이적들, 복과 열매들 등이 온 지경에 차고 넘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사실상 바로 그러한 은혜와 역사들로 인해 더욱 더 죄악과 세속과 정욕들 등과 싸울 수 있게 되는 것일 뿐 아니라 동시에 더더욱 십일조와 관련된 말씀들은 물론 좁은 길과 같고 십자가를 짐과 같은 말씀들까지도 따르면서 최우선으로 둘 수 있는 것이고, 심지어는 그러한 말씀을 위해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는 강한 군사와 같은 믿음과 그에 약속된 복들로 강렬하고 풍성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3:10)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5년 2월 26일(수)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