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이 일어난 곳은 A-15지구에 있는 대학생들의 기숙사였다. 강반장에게도 이곳은 익숙한 곳이었다. 바로 지환이 다닌 고등학교가 이 지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숙사 안으로 강반장과 윤형사가 탄 차가 들어갔다. 기숙사는 꽤 넓었다. 오층 높이의 건물들 다섯 채가 모여 있었고, 건물 앞에는 작은 잔디밭도 있었다. 그리고 건물들에서 왼쪽으로 십여 미터 정도 가면 작은 놀이터가 있었다. 그곳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모여 있었다.
"파리와 벌들이 골고루 모여있군."
자동차에서 내리며 강반장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이미 놀이터를 향해 있었다. 놀이터의 미끄럼틀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있었다.
"강반장님!"
강반장을 알아본 형사 한 명이 그에게 걸어왔다. 강반장은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며 말했다.
"정황 읊어봐."
"사망 시간은 02시 30분이구요, 사인은 자상에 의한 과다출혈인데, 일단 직접 보세요."
형사는 말하기도 끔찍하다는 듯이 양미간을 찡그렸다.
"비켜요, 비켜."
윤형사가 기자들과 학생들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시체를 구경하고 있던 학생들과 사진을 찍던 기자들이 양옆으로 갈라섰다. 미끄럼틀 바로 밑에 흰 천으로 덮여있는 사체가 있었다.
"열어봐."
강반장의 말에 윤형사가 흰 천을 살짝 들어 올렸다. 동시에 사체를 본 강반장과 윤형사의 입에서 욕지기가 쏟아져 나왔다. 사체는 꽤 미인형인 얼굴에 금발로 염색한 여자였는데, 얼굴을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이 내장을 드러내고 있었고, 팔과 다리는 등뒤로 뒤틀려 있었다.
"씨발, 사람을 이 꼴로 만들어 놓다니……."
강반장의 양미간이 천(川)자를 그렸다. 이십 오년을 현장에서 있었지만 이런 사체를 본 적은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 수도 있단 말인가. 분노가 삭으러 들자 의문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정말 이거 사람이 한 짓이 맞나?"
강반장은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검시관에게 질문했다. 검시관은 우두커니 서서 흰 천에 덮힌 사체를 보다가 말을 했다.
"사람이라고 하기는 그렇습니다. 사인이…저도 믿어지지 않지만 목에 이빨자국이 있더군요."
"그래?"
흡혈귀란 말인가? 강반장의 의아해하는 표정을 보고 검시관이 다시 말을 이었다.
"배도 칼로 가른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생살에 손을 쑤셔 넣어서 찢어버렸다고 할까요? 팔과 다리도…말을 하는 저도 우습지만, 손자국이 있더군요. 그러니까……."
"사람의 힘으로 했단 말인가? 불가능하지 않나?"
"단순하게 관절을 꺾는 건 하는 건 가능합니다. 그런데 저렇게 180도로 비틀어 버리는 건 힘들죠. 사람의 힘으로는."
강반장은 담배를 길게 한모금 빨았다가 내뱉었다. 그러나 가슴속이 시원해지기는커녕 더욱 꽉 막히는 것 같았다.
"일단 지문이 있다면 검시를 해봐. 제우스의 데이터베이스를 열어볼 수 있게 검찰에 협조공문 넣고."
강반장은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며 말했다. 윤형사는 고개를 끄덕인 후, 바지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전화를 거는 그를 보며 강반장은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무언가 불길했기 때문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단순한 사건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무얼까. 그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었다. 육감에 의지하는 방식은 이미 구세대의 전유물이 되었지만, 강반장에게 있어서 그 육감은 전가의 보도였다. 그 날카로운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사건이 해결되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제우스의 도움은 용의자를 찾을 수 있는 것이 겨우 그 한계였다. 그 이상의 것을 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제우스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순간 피해자에게 가장 살의를 가졌던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꼭 살의를 가졌다고 해서 모든 혐의까지 입증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다음은 형사들의 몫이었다.
"뭐라고요? 지금 장난치시는 겁니까?"
윤형사의 고함소리를 들은 강반장이 눈을 떴다. 윤형사는 얼굴까지 붉어진 채로 핸드폰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볼 수 없다니요. 기밀? 도대체 그럼 제우스가 있는 이유가 뭡니까? 이럴 때 필요하니까 있는 것 아닙니까? 이봐요!"
"왜 그렇게 흥분하고 그래? 보는 눈도 많은데."
강반장이 말하자 그제야 진정됐는지, 윤형사는 바지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으며 말했다.
"안 된답니다."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윤형사에게 강반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열람이 안된답니다. 제우스의 열람이. 금지됐데요. 오늘 01시부로."
강반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알 수 없던 불길함, 그 것이 이빨을 드러내고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컴퓨터의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지환은 책상을 강하게 후려치며 벌떡 일어났다.
"말도 안 돼. 말도……."
그가 보고 있던 사이트는 시민뉴스의 홈페이지였다. 홈페이지에 가입한 회원들이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뉴스들을 올리는 사이트였다. 화면에는 오늘 아침 A-15지구의 대학교의 기숙사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한 뉴스가 나와 있었다. 여자의 사체가 발견된 놀이터 주변의 모습과 사체를 둘러싸고 있는 형사들과 검시관의 모습이 찍혀 있었고, 죽은 여자의 증명사진이 화면 한 귀퉁이에 동그랗게 나와 있었다.
"영서 누나가 죽다니. 왜, 왜!"
소년은 절규했다. 또 한 사람을 잃은 것이다. 지키고 싶었던 사람이었는데. 그녀가, 그들이 아무리 자신들을 버렸어도. 화면을 노려보던 지환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침대 위에 놓여있던 모자를 쓰고 벽에 걸려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병에 걸린 것처럼 퀭한 눈을 한 소년도, 어른도 아닌 남자가 거울 안에 있었다. 지환은 오른손을 들어 거울을 쓰다듬었다. 거울 속에 있는 자신만이라도 따뜻한 온기를 느끼기 바라며.
"멍청한 놈. 감상에 젖지마. 지금은…."
싸울 때다. 거울 속의 남자가 말했다. 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섰다.
카페 블루문. 푸른 달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카페는 강반장이 집과 경찰서 이외에 유일하게 찾는 곳이었다.
"오셨어요?"
강반장이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운터에 앉아있던 오너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인사했다. 머리를 은발로 염색하고, 목에는 금으로 된 십자가 목걸이를 끼고 있는 오너는 귀족의 집사를 연상시키게 하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오늘도 손님이 별로 없네."
강반장이 카페 안을 둘러보며 말했다. 천장에는 푸른색으로 된 샹들리에가 은은한 불빛을 내뿜고 있고, 마치 중세유럽의 귀족의 성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고딕양식의 의자와 테이블들. 강반장은 이 카페의 모든 걸 좋아했다.
카페는 한산했다. 창가에 앉은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 한 쌍과 그들의 오른쪽 테이블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청년이 카페 안에 있는 손님의 전부였다.
"그것 때문에 찾는 분들이 많죠. 앉으세요. 곧 가져다 드릴게요. 맥주랑 닭다리, 맞죠?"
오너가 웃으며 말했다. 강반장은 고개를 끄덕인 후, 연인들의 옆 테이블에 앉았다.
"조금만 기다리십쇼, 손님."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웨이터가 강반장의 테이블에 물컵을 놔두며 말했다. 그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물을 마셨다.
'무엇일까…….'
강반장은 사람이 죽은 모습을 많이 보아왔었다. 지금까지 본 시체들만 친다면, 시체 안치소 하나는 거뜬히 채우고 남으리라. 그러나 오늘 본 것 같은 그런 시체는 없었다. 마치 동물에 찢겨진 듯한 시체. 인간이 범인이 아니란 말인가? 강반장의 입가에 쓴웃음이 피어올랐다. 지금은 2052년이다. 영화나 소설에서 일어난 일이 현실에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그런 시대인 것이다.
"손님, 주문하신 맥주와 안주 나왔습니다."
웨이터는 쟁반에 가지고 온 맥주 한병과 구워진 닭다리 두 개가 든 그릇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맛있게 드십쇼."
웨이터가 인사에 강반장은 미소로 답했다. 웨이터가 주방으로 사라지자 강반장은 맥주를 마셨다. 피로와 갈증이 어느 정도 풀리는 느낌이었다. 맥주병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강반장은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보았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사람들과 차, 그리고 밤을 잊게 만드는 네온 사인들. 그 네온사인들 속에서 사람들은 표정 없이 어디인가로 가고, 오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웃기라도 할까? 마치 인형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별빛이 사라진 도시에는 사람의 온기마저 사라진 걸까? 강반장의 입가에 스스로를 향한 조소가 흘렀다. 나도 나이를 먹었나 보군. 너무 감상적이 됐어. 그는 다시 맥주병을 들었다.
"뉴스 봤어?"
강반장의 시선이 자연스레 옆 테이블로 향했다. 연인들의 앞에는 각각 콜라가 든 잔이 있었지만, 그들은 잔에 입도 대지 않은 것 같았다. 여인의 말에 남자는 말없이 그녀를 쳐다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시선 속에서, 강반장은 불안함과 초조를 읽어낼 수 있었다.
"우리, 우리도 곧……."
여인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맥주를 마시며 곁눈질로 그들을 쳐다보는 강반장은 그런 여인의 모습에서
"신경 쓰지마. 우연일 거야. 그리고 우리가 왜…우리는 죄 없어. 그런 말하지마."
남자는 목이 타는 듯,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일을 한 것 뿐이야. 벌을 받아야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야. 너도 알잖아, 그건."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남자의 말에 수긍을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찌푸린 얼굴로 여인을 바라보던 남자가 툭 내뱉듯이 말했다.
"일어나자."
카운터로 걸어가는 남자를 보던 여인도 마지못해 일어나 그를 따랐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있는 남자와 그 뒤에 서있는 여자를 보며 강반장은 의혹이 일었지만, 더 이상의 어떤 행동도 하지는 못했다. 카페 밖으로 나가는 그들을 보며 강반장은 닭다리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닭고기를 우물거리며 강반장은 블루문 안에 자신이 유일하게 남은 손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남자의 자리도 비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