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unded Deer (Self-Portrait), 1946, Frida Kahlo
The Wounded Deer (Self-Portrait), 1946, Frida Kahlo
프리다 칼로-나는 아픈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살아 있음이 행복하다
멕시코시티 교외 코요아칸에서 헝가리계 독일인 출신의 사진가 아버지와 멕시코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여섯 살에 소아마비를 앓았다. 왼쪽 다리보다 한참이나 짧고 가는 오른쪽 다리를 감추려 아이는 늘 바지를 입었다.
열여덟 살 에스쿠엘라 국립예비학교 시절 하굣길. 첫사랑과 잡아탄 버스는 애꿎게도 전차와 충돌한다. 척추는 으스러지고 골반은 세 조각 났다. 버스 손잡이 쇠봉이 자궁을 관통했다.
상처투성이 자궁은 세 번의 임신을 세 번의 유산으로 막 내리게 했다. 평생 서른두 차례 수술이 그녀의 작은 몸을 헤집었다. 고통을 잊기 위해, 고통에 맞서기 위해 여인은 침대 위에서도 이젤을 펼쳤다.
"나는 아픈 것이 아니라 부서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한 살아 있음이 행복하다." 육체의 절망을 화폭의 희망으로 피워낸 천재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다.
프리다 칼로 하면 떠오르는 건 새의 두 날개처럼 붙은 짙은 눈썹의 자신을 거미 원숭이와 선인장 등 멕시코 고유 색채가 짙은 배경과 함께 몽환적으로 그린 자화상이다. 회화 143점을 남겼는데 55점이 자화상이다. 화가로서의 인생도 자화상으로 시작했다. 교통사고로 3개월간 침대 생활을 해야 했던 프리다는 침대에 특수 고안된 이젤을 설치하고 침대 덮개에 거울을 붙여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나 자주 혼자이기에, 또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에 나를 그린다."
이렇게 그려진 자화상 중 '원숭이와 함께 있는 자화상'(1943년 작) 등 6점이 이번 전시에 나온다.
프리다는 "인생에 두 번 대형 사고가 있었는데 하나가 전차 사고, 다른 하나가 디에고였다"고 말했을 정도로 21세 연상의 남편 디에고를 예술적 동지로 존경했다.
그러나 디에고의 주체 못 하는 바람기는 그녀를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넣었다. 디에고가 자신의 동생 크리스티나와 불륜에 빠졌을 때 프리다의 분노는 극에 이르렀다. 분노와 절망은 피가 흐르는 시뻘건 심장, 칼에 찔려 선혈이 낭자한 자화상으로 표출됐다.
프리다 역시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 사진가 니콜라스 머레이,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 등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전시엔 머레이가 연인의 시선으로 매혹적인 프리다를 찍은 사진이 나온다.
원근법을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사물에 상징을 담아 과장되게 표현한 그녀의 그림을 사람들은 초현실주의로 분류했지만 정작 프리다는 "내 경험을 그린 현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