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을 울렸던 초등학생의 글투병중인 엄마를 향한 마음...
이후 어떻게?
◇2016년 문학 영재로 방송 출연했던 정여민 군의 모습 / *출처=SBS '영재 발굴단' 방송
2016년 SBS <영재 발굴단>에서는 영양군에 살고 있는 산골 소년 정여민 군이 전국 어린이 글짓기 대회에서 대상을 탔다는 소식과 함께 문학 영재의 일상을 방송한 바 있다.
당시 그의 나이는 13살,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대상을 탔던 제 23회 우체국예금보험 어린이 글짓기 대회의 당시 경쟁률은 8천 대 1이 넘었었다.
특히나 정여민 군이 썼던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라는 제목의 글은 흉선암을 진단 받고, 이미 수차례 수술까지 받으며 투병중이었던 엄마를 보며 쓴 글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민의 마음을 울렸다.
말기암 판정을 받은 엄마의 치료를 위해 온 가족이 도시를 떠나 영양군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살게된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엄마의 암 소식은 정 군에게 큰 고난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방송에 출연하여 힘들 때마다 혼자 조용히 책을 읽게 되었고, 힘든 생각을 떨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후 정여민 군의 시 ‘꽃’은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도 실리게 되었다.
또한, 자신이 가진 글을 재주로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연재하며 모금을 받는 형식의 스토리펀딩 플랫폼을 통해 돈을 모았다.
그리고 2016년 겨울, 그렇게 모은 177만 원을 한국소아암 재단에 기부를 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투병 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며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큰지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되면서 투병 중인 자기 또래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본인에게도 힘든 시간이었고,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잘 하는 일을 통해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꾸려왔던 것이다.
이후, 3년 전쯤 자신의 친정 어머니가 정여민 군의 집과 이웃 사이라고 밝힌 한 블로거를 통해 정여민 군이 고등학교 수험 생활 중이고, 그의 어머니도 건강을 잃지 않고 생활중이라는 최근 근황이 온라인 상에서 떠돈 적이 있다. 하지만 정확한 근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음은 정여민 군이 13살 때, 투병중인 어머니를 위해 썼던 ‘마음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전문이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바람도 밀어내지 못하는 구름이 있다
그 구름은 높은 산을 넘기 힘들어 파란 가을하늘 끝에서 숨을 쉬며 바람이 전하는 가을을 듣는다
저 산 너머 가을은 이미 나뭇잎 끝에 매달려 있다고 바람은 속삭인다
내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집에는 유난히 가을을 좋아하고 가을을 많이 닮은 엄마가 계신다
가을만 되면 산과 들을 다니느라 바쁘시고
가을을 보낼 때가 되면 '짚신나물도 보내야 되나보다' 하시며 아쉬워 하셨다
그러시던 엄마가 2년 전 가을, 잦은 기침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해보라는 결과가 나왔다
우리 가족들은 정말 별일 아닐거라는 생각에 오랜만에 서울구경이나 해보자며 서울길에 올랐다
그러나 예상과 다른 결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암3기'라는 판정이 나왔다
꿈을 꾸고 있다면 지금 깨어나야 되는 순간이라 생각이 들 때
아빠가 힘겹게 입을 여셨다.
혹시 오진일 가능성은 없나요? 평소 기침 외에는 특별한 통증도 없었는데요.
무언가를 골똘히 보던 그때의 선생님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미소를 우리에게 보이셨다
세상의 모든 소음과 빛이 차단되는 것 같은 병원을 우리는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스쳐지나가도 우리의 시간은 멈추고만 있는 것 같았다
집에 오는 내내 엄마는 말을 걸지도, 하지도 않으며 침묵을 지켰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토할 것 같은 울음을 저 깊은 곳에서부터 쏟아내었다
그 울음소리가 너무나 안타까워 나도 소리내어 울었다
왜 하필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생겨야만 하는 것일까?
엄마는 한동안 밥도 먹지 않고 밖에도 나가시지도 않고 세상과 하나둘씩 담을 쌓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엄마는 어느날,
우리를 떠나서 혼자 살고 싶다 하셨다
엄마가 우리에게 짐이 될 것 같다고 떠나신다고 하셨다
나는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울분이 터져나왔다
엄마가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엄마는 그러면 여태껏 우리가 짐이었어?
가족은 힘들어도 헤어지면 안되는 거잖아. 그게 가족이잖아! 내가 앞으로 더 잘할께!
내 눈물을 보던 엄마가 꼭 안아주었다.
지금도 그 때 왜 엄마가 우리를 떠나려 했는지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 아빠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공기 좋은 산골로 이사를 가자고 하셨다
우리가 이사한 곳은 밤이면 쏟아질 듯한 별들을 머리에 두르고 걷는 곳이며 달과 별에게 마음을 빼앗겨도 되는 오지산골이다
이사할 무렵인 늦가을의 산골은 초겨울처럼 춥고 싸늘하게 여겨졌지만
그래도 산골의 인심은 그 추위도 이긴다는 생각이 든다
어스름한 저녁, 동네 할머니가 고구마 한 박스를 머리에 이어 주시기도 하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베트남 아주머니가 봄에 말려 두었던 고사리라며 갖다 주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에 함께 아파해 주셨다
이곳 산골은 6가구가 살고, 택배도 배송되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사람 얼굴도 못 보겠구나 생각할 무렵
빨간색 오토바이를 탄 우체국 아저씨가 편지도 갖다주시고
멀리서 할머니가 보낸 무거운 택배도 오토바이에 실어 갖다주시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엄마는 너무 감사해 하셨는데
엄마가 암환자라는 얘기를 들으셨는지 '꾸지뽕'이라는 열매를 차로 마시라고 챙겨주셨다
나는 이곳에서 우리 마음속 온도는 과연 몇 도쯤 되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너무 뜨거워서 다른 사람이 부담스러워 하지도 않고
너무 차가워서 다른 사람이 상처 받지도 않는 온도는
'따뜻함'이라는 온도란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껴지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질 수 있는 따뜻함이기에
사람들은 마음을 나누는 것 같다
고구마를 주시던 할머니에게서도
봄에 말려두었던 고사리를 주었던 베트남 아주머니도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산골까지 오시는 우체국 아저씨에서도
마음속의 따뜻함이 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산골에서 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산골에서 전해지는 따뜻함 때문에 엄마의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다시금 예전처럼 가을을 좋아하셨음 좋겠다고 소망해본다
"가을은 너무 아름다운 계절같아!"
하시며 웃으셨던 그때처럼 말이다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