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구 감독ㆍ이안 김 프로듀서, 밴쿠버 한인 듀오의 뜨거운 도전
1만 뷰 돌파 티저 화제, 국제영화제 출품 및 글로벌 콘텐츠 확장 목표
완연한 봄기운이 번지고 있지만, 지난 겨울 캐나다 밴쿠버의 혹독한 설원을 누비던 독립군들의 거친 숨소리는 여전히 생생하다. 코리안-캐나디안 듀오 요셉 구(Joseph Ku) 감독과 이안 김(Ian Kim) 프로듀서가 이끄는 독립영화 ‘나무는 기억한다(The Trees Remember)’ 제작팀의 이야기다.
70%가 넘는 현지 크루와 함께 영하 10도의 눈보라를 뚫고 사투를 벌인 이들은, 이제 제작 공정 50%를 넘어서며 가장 한국적인 서사로 세계 무대를 정조준하고 있다. 타이어 펑크와 고립이라는 악조건마저 ‘전우애’로 승화시키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제작기를 써 내려가고 있는 두 남자를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선댄스를 향해 달리는 이들의 뜨거운 여정을 공개한다.
Q. 기획 계기와 밴쿠버를 촬영지로 택한 이유는?
=요셉: 역사 속의 유명한 위인들보다는 이름 없이 산속에서 외롭게 희생된 수많은 영웅을 기리고자 기획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잊을지라도 숲의 나무들만은 그 모든 시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작품의 출발점이다.
독립군이 마주했던 참혹한 생존 환경을 미화 없이 재현하기 위해 눈보라가 거센 밴쿠버 북단 지역을 실제 로케이션 장소로 선택했다. 또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밴쿠버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더 넓은 공감과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Q. 기존 독립군 영화와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요셉: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나 액션 위주의 스펙터클 대신, 기록되지 않은 이름 없는 이들의 인간적 면모에 집중했다. 일본군 기지 습격에 실패한 후 혹독한 자연 속에 내던져진 두 인물을 통해 생존의 현실과 심리적 무게를 조명한다. 독립운동의 영광보다는 그 길을 걸었던 이들이 느꼈을 내밀한 고통과 감정을 담아내 깊은 울림을 주고자 했다.
Q. 해외 출신 독립군 '윤서'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요셉: 한인 이민자로 자라며 겪은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에 대한 정체성 혼란과 극복 과정을 캐릭터에 담았다. 정체성은 자란 환경이나 주변 문화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 밖에서 성장했더라도 모국의 역사와 아픔에 깊이 공감함으로써 민족적 뿌리와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Q. 두 주인공의 배경 차이와 관계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감정선은?
=이안·요셉: 갈등과 생존이라는 주제 아래, 나이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두 인물이 겪는 미묘한 긴장을 담아냈다. 한국 사회 특유의 나이 중심 질서에서 비롯된 거리감이 극한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고난을 거치며 체면이나 사회적 기준은 의미를 잃고, 결국 인간 대 인간으로서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과정을 그렸다.
특히 한국과 해외를 오가며 활동한 이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형과 동생'의 관계를 구축했다. 한국식 형제 관계가 지닌 특유의 애증(bitter-sweet)이 절실한 순간에 강력한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지점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실제 두 사람의 형·동생 관계가 영화 제작 과정과 연기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Q. 제작이 약 50% 진행됐는데 난관과 기억에 남는 순간은?
=이안: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영상미를 확보하기 위해 가장 척박한 환경을 택했다. 제작비가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캐나다 BC주 북단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하루 12~16시간 촬영을 이어가는 과정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이동 수단이나 식사 등 기본 여건조차 최소한으로 준비할 수밖에 없어 팀원들에게 늘 미안함이 컸다.
그럼에도 3~4시간의 짧은 수면을 버텨내며 배우와 스태프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끝까지 결속했던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극한의 환경이 오히려 작품의 진정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Q. 눈보라 속 혹한 촬영에서 겪은 구체적인 고충은 무엇이었나?
=이안: 손발의 감각이 사라질 만큼 혹독한 추위 탓에 중도 하차하는 스태프가 생길 정도로 현장은 처절했다. 영하 10도 이하에서 10일 넘게 강행군을 이어가는 육체적 한계 속에서 모두가 정신적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눈보라가 강할수록 독보적인 영상이 담겼기에 촬영을 멈출 수 없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우리를 버티게 한 힘은 실제 독립군들에 대한 부채감이었다. 이름 없이 사라진 그들이 겪었을 수천 배 더 혹독했을 고통을 떠올리며 작품의 본질인 '기억'의 가치를 되새겼다. 결국 그분들의 희생을 기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끝까지 버텨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Q. 타이어 펑크 고립 사고가 팀워크와 작품 완성도에 미친 영향은?
=이안·요셉: 새벽 5시부터 이어진 힘든 촬영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밤 11시경 외진 곳에서 타이어 펑크로 팀이 고립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단순한 펑크가 아니라 차량 견인이 필요한 상황이라 대응하는 사이 새벽 1시가 훌쩍 넘었다.
그런 극한의 상황에서도 모든 팀원은 불평 한마디 없이 함께 문제를 해결했다. 이 과정에서 전쟁을 함께 겪은 전우들처럼 깊은 신뢰가 생겼다. 이를 계기로 미숙했던 팀이 어떤 상황에서도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특수부대’ 같은 촬영팀으로 성장했다고 느낀다.
새벽 5시에야 복귀해 몇 시간 뒤 바로 오디션에 참여할 만큼 고된 일정이었지만, 이 경험 덕분에 이후의 어떤 어려움도 크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돌발 사고가 팀을 하나로 묶고 작품을 완수할 수 있는 강력한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
Q. 비한국인 크루가 70% 이상인데, 한국 독립군 이야기에 대한 반응은 어떠했나?
=이안: 흥미롭게도 팀원 대다수가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어 연기를 할 때 감정적 공감은 거의 100%에 달했다. '자유'라는 보편적 주제가 진심으로 전달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많은 스태프가 한국 영화 자체의 매력에 이끌려 참여했다고 말해 한국 영화의 위상을 실감하며 자부심을 느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한 외국인 스태프가 시간을 아껴주겠다며 컵라면을 40분 전에 미리 준비해두는 바람에 모두가 국물 없는 불은 라면을 먹게 된 적이 있다. 이런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며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컵라면 준비는 이안 프로듀서가 전담하고 있다.
Q. 캐나다에서 한국 역사를 다루며 고민한 표현 방식은?
=이안: 역사적 사실의 정확성과 창의적 표현 사이의 균형을 잡는 데 주력했다. 배경이 캐나다임에도 실제 북한 북부 지역의 자연과 유사한 수종과 풍경을 찾아 로케이션에 반영하는 등 시각적 사실성을 높이려 노력했다.
문화적 차이는 도현과 윤서의 관계를 통해 '한국인의 정서'로 풀어냈다. 나이 차이가 나는 도현이 해외파 윤서에게 텃세를 부리는 '츤데레' 같은 형의 모습을 보이다가 진정한 관계로 발전하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그렸다. 그 과정에서 윤서의 해외 경험을 부러워하는 미묘한 심리도 담았다. 결국 독립군 이야기를 역사에 충실하면서도 우리의 시선으로 재해석하여, 국경을 초월한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Q. 티저 영상의 높은 조회수와 뜨거운 반응을 어떻게 분석하나?
=이안·요셉: 비주얼의 차별성과 스케일, 그리고 강한 감정적 여운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특히 인위적인 AI 영상이 범람하는 시대에 실제 눈보라 속에서 구현해낸 생생한 장면들이 시청자에게 강렬한 신선함을 주었다고 본다. 울트라 와이드 화면을 구현하는 아나모픽 특수 렌즈와 시대적 질감을 살린 색감 등 디테일한 접근이 영상의 톤을 잡는 데 주효했다.
또한 이안이 촬영 현장에서 독립군의 마음을 시로 풀어낸 내레이션이 인물에 대한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전략적으로는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형식을 활용하되, 본질적인 영상 퀄리티에 집중한 점이 주효했다. 무엇보다 작품의 분위기와 에너지를 충분히 보여주면서도 호기심이 최고조에 달할 때 여운을 남긴 '티저다운' 구성이 관객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제 역할을 다했다.
Q. UBCP/ACTRA, Blazar 등 전문 기관 및 브랜드와의 협업이 어떤 도움이 되었나?
=이안: 독립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과 '신뢰'를 확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캐나다 최대 배우 협회인 UBCP/ACTRA와의 협업은 프로젝트의 공신력을 높여 로컬 영화인들의 신뢰를 얻었으며, 이는 우수한 촬영 및 마케팅 인력을 확보하는 동력이 되었다.
글로벌 렌즈 브랜드 Blazar와의 협업은 작품의 영상미를 전 세계에 알리는 창구가 되었다. 브랜드 플랫폼을 통해 티저를 공개함으로써 글로벌 관객에게 노출될 기회를 얻었고, 시각적 강점을 인정받아 향후 국제영화제 출품 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시너지를 냈다. 이러한 전문 기관들과의 연대는 독립영화가 지닌 제작 환경의 한계를 극복하고 작품의 위상을 높이는 실질적인 기반이 되었다.
Q. 역사 의상과 소품의 시각적 고증 과정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요셉: 역사적 정확성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과거를 단순히 과장된 이미지로 소비하지 않고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되살리는 데 집중했다. 작은 디테일 하나라도 고증을 놓치는 것은 역사를 살아낸 분들을 존중하지 못하는 것이라 믿기에 의상을 통해 당시의 삶과 태도를 정직하게 표현하려 노력했다.
그간 꾸준히 진행해온 시대별 의상 재현 작업과 리서치가 큰 자산이 됐다. 오랜 시간 수집해온 188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의 실제 앤티크 의상과 소품들을 영화에 직접 활용함으로써 화면의 디테일과 진정성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Q. 200편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으로서 이번 프로젝트가 특별한 이유는?
=이안: 캐나다에서 한인 2세들과 독립군 이야기를 만든다는 사실 자체가 큰 감동이었다. 작품의 의미가 남다른 만큼 배우를 넘어 프로듀싱과 한국적 요소에 대한 자문까지 도맡았다. 이 과정에서 제작 현장의 헌신을 깊이 이해하게 됐고, 예술성과 상업적 운영의 균형이 영화의 힘을 키운다는 점을 다시금 절감했다.
촬영 환경은 200여 편의 경험 중 손꼽힐 정도로 혹독했다. 눈보라 속 강행군과 팀을 챙겨야 하는 책임감으로 정신적 부담이 컸지만, 한인 커뮤니티의 따뜻한 응원이 큰 힘이 됐다. 특히 버나비 한남 앞에서 홍보 중 한 아주머니께서 건네준 10달러는 힘든 순간마다 우리를 일으켜 세운 동력이었다. 청년들을 응원해 주신 그 진심 어린 위로에 깊이 감사드리며, 그분을 다시 뵐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