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얼 935 고향 서시포의 뿌리 5 오성산의 내력
AD 660년 백강 전투는 『삼국유사』 ‘오성산(五聖山) 전설’과 오성산 전설은 『여지도서』에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칠 때 안개로 길을 해매는데. 그때 홀연 다섯 노인이 와서 진 앞에 이르므로 정방이 길을 물었는데 노인들이 말하기를 네가 우리나라를 치고자 하는데 어찌 길을 가르쳐 줄 쏘냐 하였다. 정방이 화내어 다섯 노인을 죽이고 갔다. 회군하는 날에 뉘우치고 신령스런 사람으로 생각하여 이 산에 장사 지내고 이어 오성산이라 불렀다 한다. 산꼭대기에는 지금도 오성(五聖)의 터가 있다.’
고향 서시포이 뿌리6 ; 고햐의 내력
서시포는 고려시대 60포구 중에 하나인 조종포가 자리하고 있던 곳이다. 오성산 자락과 금강 하구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서시포 혹은 서호라고도 하는데 방여강이 금강과 합류하는 용머리산 인근에 자리한 서포 마을이 조운창고가 있던 곳
금강 천리길 달려 바다와 접하는 포구 강경’황산포와 함께 백제로 거슬러 올라가 성시를 이루고 요세로 중요시한 포구로 어렸을 적 장이 서고 배가 드나들어 어장과 객주가 있어 조상의 삶터가 되었다
현재 원서포’ 신성’새터’감나무골’갱변’안뜸’뒷뜸’곰멀’바같멀’삼거리 장승배기에 남녀 관운장이 있어
길을 안내 주막과 이발소가 있어 유일한 모임의 장소로 더 올라가 여걸이 궁궐을 지었다는 왕림동 고개넘어 수레는 오성산의 맑은물이 흐르고 배가 닿는 고장이다
생활의 터전은 오직 농사’고기’갈대밭이 터전으로 객지에서 모여들어 각성 받이를 이루고 김서방’박서방 하면서 서로들 으지하여 오손도손 살아 와 오늘 우리는 그 후손으로 이름도 아름다운 죽마(竹馬)회(會)로 담소하며 성님’동상’ 친구 개똥이’소똥이 하면서 너털웃음을 웃는다
이생에 살어 옷깃만 스쳐도 평생 인연(因緣)이라는데 어찌 들 그렇게 만나 저승에서도 그렇게 수구초심(首丘初心) 살아가리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