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3 ] 그 남자와의 첫 만남.
그렇게 도착한 이 곳은. 말로만 듣던, TV에서만 보던 호텔.
그것도 아주 아주 고급적이면서도 유명한 스트라이크 BAR.
"너 돈 좀 있나보다? 이런델 다 다니고? 또 정장에서도 빛이 나는게…"
"니가 없어서 내가 있어보이는거야"
아니… 근데 저 자식이 아까부터.
"야 이새꺄!"
"…뭐?…"
"이 새끼가 지금 나를 무시하는거야 뭐야? 대체?
야! 니가 그렇게 잘낫냐? 잘생겼다고 째는거야? 돈 많다고 무시하는거냐?!
키만 멀대같이 커서, 어쭈, 어쭈? 꼴에 또 왁스 발랐다 이거냐? 이거봐라. 완전 떡졌네?
이리 대. 대가리 이리 숙여서 대보라고!!"
머리를 기분 나쁘게 툭툭 치면서… 그러면서…
"야!"
"어? 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아냐 허허"
그렇게 내 상상은 그냥 상상으로 끝이 나버렸다.
"근데 너 몇살이야?"
"넌 내가 몇살인지도 모르고 나한테 반말한거냐?"
"거야 뭐, 니가 하니까."
"픽, 걱정 붙들어매. 너랑 동갑이니까"
"내가 몇살인지 알고??"
"올해 23살 84년생 쥐띠. 됐냐?"
"어, 어떻게 알아?"
"잘 알지."
"날 알아? 날 어떻게?"
"이름 민.지.율 84년생 23살 됐냐?"
……… 결코 무시할 수 없었던 놈.
네 이놈. 니 놈도 혹시 중졸. 고등 중퇴가 아닌가 묻고 싶구나
"어차피 너랑 나랑은 이제 한 배를 탄거야"
"배 타러 가자고? 나 배 싫어하는데 멀미 잘해서"
"못산다 증말. 됐고, 이제부터 넌 내여자라고"
"내가? 내가 왜!!! 왜 니 여잔데?"
"이게 진짜 사람 갖고 노는거야 뭐야?
우리 계약 커플 오늘이 1일! 시작했다고 방금!!"
"아… 맞다."
"100일동안 아이큐 좀 높여줘야겠어"
"뭐라고!?"
"킥"
그래… 한정일한테도 무시당하고. 신지율한테도 무시당하고
민지율 인생이 뭐 그렇지.
계약 커플이라 해서 한정일이한테 후회하게 해줄라 했더니
내가 후회하게 생겼네 증말.
그나저나 이놈이랑 결혼하면 2세 이름을 뭐라 짓지?
우리 자식도 지율이라고 지어줄까? 아냐, 그럼 아빠 이름이랑 같잖아.
………… 근데.…… 가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천하의 싸가지랑 결혼하라고? 어흠 말도 안돼
그건 수박이 두쪽나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렇게 또 혼자생각에 멀뚱멀뚱 인상을 써가고 있는데
우리 앞에 색소가 굉장히 이쁜 음료수가 놓여진다.
안그래도 목말랐는데 다행이다. 흐흐
(벌컥 벌컥)
"아, 아니 진짜 이게 미쳤나?"
"쿡. 음? 뭐?"
"뭐하는거야 지금?!"
"먹으라고 준거 아니야?"
"근데 누가 그렇게 벌컥벌컥 마시래?"
"목이 말랐어!!"
"후. 증말 알수 없는 세계다."
"뭐야?"
"누가 칵테일을 그렇게 마시냐? 어?
그런 사람 봤어? 봤냐고!!!"
"칵테일이라 함은… 음. 이게 그니까 음료수가 아니라
칵테일이라 이거지?"
"두잔에 5만원씩이나 하는, 아주 비싼 칵테일이다"
"맛은 환탄데."
"…할말이 없다 할말이 없어……으휴"
이미 내 정신세계를 이해했는지
한 손을 이마에 짚고 한참을 멍하게 생각하는 지율이.
내가 좀 눈치가 없는건 사실이지만.
이번껀 너무 심했나? 분위기 잡으려 했던건데. 목마르다고 벌컥 마셔버리다니.
암튼 민지율. 제정신이 아니야 정말!
"저기 지율아"
내 이름을 내가 부르니까 어색하긴 하구나.
"어"
어쭈? 말하는 싸가지 봐라?
"스트라이크 바 자주 오니?"
"뭐??"
"아니, 난 말로만 들었거든. 근데 와보니까 좋길래.
어머!? 야경도 아주 끝내준다야. 넌 좋겠다 이런데 자주 와서"
"풋.푸.푸하하하하"
잉…? 뭐야? 왜 갑자기 웃는거야?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내가 없어보이나?
"내 미쳐 진짜 우하하하"
눈물, 콧물 질질 짜면서 웃고 있는 신지율.
대체 뭐가 그리 신나는건데?
"스트라이크 바래. 스트라이.꺼억 캬캬캬"
"………"
두 손은 불끈. 두 눈도 불끈. 하지만 참자
민지율 너가 잘못한거야.
민지율이 신지율한테 먼저 잘못한거야.
"스.타.라.이.트.바. 따라해봐"
"스.타.라.이.트.바"
"옳지. 스타라이트바야 스트라이크가 아니라?"
"으…응"
정말 무식한 민지율. 모르면 아는척을 하지말아야지. 쪽팔려 쪽팔려! 정말
"스트라이크는 볼링할때나 쓰는 말이야"
"아…알어! 나도. 그만 놀려!"
"키킥."
근데 자식, 웃는 모습 왜 이렇게 귀여워?
정장 입고 무뚝뚝하게 있을땐 다가가기 어렵고, 무섭게만 느껴졌는데
눈물 찔끔 흘려가면서 배꼽잡고 웃으니깐 완전 애기같네?…
그리고 그때.
우리의 적막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어준 장본인 하나.
"지율아!"
나와 신지율의 시선이 함께 간 그 곳엔.
쇼핑을 열라게 즐겨댔는지 양손엔 잔득 쇼핑백이 들려있었고
얼굴은…… 얼굴은……. 어디서 본 듯한 낯익은 얼굴이지만 생각이 안나는.
그런 한 여자가 신지율에게 다가와, 신지율의 무릎에 자리를 꿰차고 앉아버렸다.
이거 뭐야… 민지율이 굉장히 기분 나쁜데?
"저리 가"
"어? 지율이 왜 그래!"
"더러우니까 저리 가라고"
그리고 갑자기 생각나버린건.
이별경험이 있거나, 사랑에 큰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조건게임.
계.약.커.플이라는 네 글자…
'설마 너도냐. 신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