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 & 낙하산 30분 비용으로 30만 원을 지불했어요. 공중 전은 젬병인데 수상에서 비행하는 낙하산은 유일한 액티비티입니다. 겁이 많은 건 아니고 내가 놀이 기구나 비행기의 안전 확보를 못 믿는 게지요. 다시 입대를 한다면 특전사 500 MD 점프도 멋지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really? 그나저나 낙하산 10분 타는데 10만 원이면 하루 수입이 5천(500명)입니다. 오락실 할 때 하루 2.500만 원을 벌었고 변산에서 1달 장사해서 70(1500) 만 원을 벌었다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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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서 2달-알랭 바디우 40일 프로젝트도 끝냈고 무엇보다 1년짜리 택시를 졸업했으니 내게도 안식년 1달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생각 같아선 에스더 학부 졸업(12.30) 할 때까지 손과 발이 되어주고 싶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버스회사에 취업하기로 결정을 했어요. 물론 에스더와 어그리가 된 사안입니다. 아직은 회사 시간표를 알지 못하니까 어느 정도 파악이 되면 수(WED)목(THU) 픽업은 재개할 계획입니다. 관계는 시간을 통해 형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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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 세월이 걸리듯이 에예공과 함께 해 온 세월 전체가 내 인생에 새겨져 있습니다. 모든 세상과 셀프 디스를 쳤지만 에예공은 유일한 숨 구멍입니다. 예주가 말문이 터졌는지 문자를 보내와서 기뻤어요. "와 폭포 멋있네. 음식은 입에 맞으세요?(예주)" "매일 라면 끓여 먹고 있어요(나)" "ㅋ ㅋ ㅋ 우째요. 언제 귀국하셔요?(예주)" "22일(나)" "오래 계시네요. 패키지 여행?(예주)" "노 노, 비전 트립이라고 하자(나)" "ㅎ ㅎ ㅎ 혼자 가셨어요?(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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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야가 처음인 줄 알았더니 20년 전 푸켓 다녀갈 때 들렸더라고요. 해변의 파라솔이나 호객하는 상인들은 그대로였어요. 겁도 없이 고삐리가 변산 해수욕장에 들어와서 음악다방(비어 바) 할 때 생각이 가장 많이 났고, 내장산에서 비끼 하던 피라미가 환갑이 지난 노파가 돼버렸으니 격세지감입니다. 모처럼 모가지 떼를 벗기려고 한국 식당에 들어가 꽃등심을 씹었어요. 견적은 좀 나왔지만(20만) 부드러운 육질이 목구멍에 쉴 새 없이 빨려 들어가는 잠깐 동안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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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가 진접 김치보다 더 맛있더라고요. 양복점-마사지 숍-비어 바-포장마차- 슈퍼마켓-클럽-포켓 볼이 파타야를 포위하고 있었어요. 파타야 비치 근교에서 호객하는 여성들도 포착 됐어요. 80년대 조국도 유원지나 영등포시장 청량리 어디를 가나 비슷한 느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멋쟁이들은 양복점 옷을 맞춰 입었고 청춘들은 클럽에서 밤새 흔들어 대거나 당구장에서 살았어요. 일도-도환-원규-종석-탁곤-용환아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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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비티 할 때까지 좋았는데 수영장에서 모자 벗은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고 급 우울 모드로 바뀌었어요. 누구야! 어떤 놈이 내 기분을 망친 것이여? 그 안에 선친이 있는 겁니다. 내 소갈머리가 이 정도인 줄 나도 진짜 몰랐어요. 선친이 50대에 노인 취급을 받으셨는데 내가 봐도 악동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는 겁니다. 염병할, 세월에 장사 없다더니 이제 악동 은퇴해야 되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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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전환이 필요할 것 같아 파타야 넘버 원 핫플 '워킹스트리트'로 천천히 걸어왔어요. 80년대 황금동 콜박스같기도 하고 이태원 통금 제한 시절 풍경 같기도 합니다. 이런 데는 20대에 와야 재미가 있지 한물간 노인네는 스트립쇼도, 묘기 대행진도 큰 흥미가 없네요. 유료 화장실은 60년대 왕십리 종합시장 이후로 50년 만입니다. 그때 2원 인가한 것 같은데 20밧 500원을 받네요. 무아이타이 숍에 들어가 둘러보았지만 UFC 직구 하는 내 눈에 찰리가 없지요. 그냥 나왔어요. 어딜가나 심심 합니다. 무엇을 해야 흥미가 있을까요?
2024.10.19.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