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기반이 있어 그 마을에 유지였다. 6.25동란으로 인하여 우리 동네에는 은평천사원이라는 고아원이 세워졌다. 미국인 잭 타이스는 초대원장으로서 친아버지처럼 고아를 위해 헌신하였다. 그 후 윤성열목사의 손녀사위 조규환 장로가 원장이 되어 현재까지 고아들을 돌보고 있다. 어린 시절 나는 그곳에서 고아들과 함께 생활을 했다. 그들은 운동을 해서 체력이 단련된 아이들이었다. 고아들은 나를 가리켜 개미똘마니 라고 했다. 그 말의 의미는 부모를 가진 아이를 가리킨 그들의 속어인 것이다. 그들은 축구를 주로 했는데 말용이 형은 골키퍼를 보았는데 아주 근거리에서 차는 볼도 겁내지 않고 몸으로 막아낸다고 하여 용기 있는 형으로 모두가 우러러 보았다.
형들은 농구도 잘했다. 나보고 해보라고 공을 두 손에 안겨 골대를 향해 던졌는데 백보드도 맞추지 못한 걸로 보아 아주 어린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하루는 미국사람이 사다 준 권투 글러브를 내 손에 끼워주더니 단단한 내 또래의 녀석과 시합을 붙이는 거였다. 나는 그에게 흠씬 얻어맞고 코피까지 터졌다. 내가 일방적으로 코너에 몰려 매를 맞자 형들은 너무 좋아라 했다. 고아원 옆에는 계곡을 막아 수영장을 만들어 놓았는데 나는 그곳으로 가 얼굴의 피를 씻으며 주먹에 힘을 주었다.
조금 키가 자라자 그들은 유도를 하였다. 그들에게 유도를 가르친 건 나의 형이였다. 내 형은 대학을 다니며 불광체덕관이라는 유도도장을 세우고 사범을 하였다. 내 형보다 어린 청년들은 내 형을 우상처럼 여겼다. 고아원 형들은 내가 쓰러져 괴로워하는 것을 보기 위해 유도를 잘 하는 녀석과 시합을 붙였다. 나는 그에게 넘어지지 않으려 안깐힘을 써가며 버텼다. 아무리 기술이 능한 녀석이라고 해도 혼신의 힘을 주고 있는 나를 쓰러뜨리진 못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사실 유도는 나처럼 기를쓰고 온몸에 힘을 주고 하는 운동이 아니라 어깨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기술을 주고 받는 부드러운 운동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우리에게 유도를 가르치는 사범이 너의 형이냐고 물었다. 그냥 형이냐고 물으면 나는 그렇다고 했는데 친형이냐고 물으면 아니다 라고 해 그들의 고개를 가웃거리게 했다. 형이면 형이지 친형이라는 말은 형이 아닌 걸로 내 나름대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아원에는 큰 형님이 있었는데 그 형을 부를 때 강도형 강도형 했다. 얼마나 못된 짓을 했으면 이름을 강도라고 했을까 나는 속으로 읊조렸다. 계곡 수영장에서 그 형의 몸을 보았는데 넓은 가슴에 독수리가 날아가는 문신이 새겨져 있어 역시 강도구나 했다. 그 형만 보면 몹쓸 강도 생각이 나서 나는 공연히 오금이 져렸다. 조금켜서 그 형의 이름을 알아보니 강도가 아니라 광도였으므로 오래도록 지닌 내 궁금증은 풀렸다.
고아원 형들 중에는 공부를 잘한 형들도 있었다. 농사철 내 아버지가 형들을 불러 내 농사일을 시켰는데 그 중에 이름은 기억할 수 없지만 한 형은 공부를 해야지 우리에게 일을 왜 시키느냐고 내 아버지에게 따지기도 했었다. 훗 날 그는 양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열심히 공부한 결과 그가 미국이 인정하는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고국에 돌아온 그에게 고아원 원장이 여기서 자랐고 힘들여 공부를 했으면 이제 조국을 위해 살아야 할게 아니냐는 질문에 한국은 나를 버렸지만 미국은 자신을 성공하게 한 나라라며 고마운건 미국이라고 해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것이었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얘기지만 조국은 그런 차원이 아닌 것이다. 조국이 비록 나에게 가난을 주었 건 영화를 주었 건 그건 부차적인 문제이고 조국은 나와 너의 어머니라는 것을 우리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어머니가 6.25로 하여 허리가 끊어져 날마다 신음 중에 있는데 그 어머니를 버리고 어디에서 행복을 누리겠다는 말인가 조국을 등지고 오직 자신의 안일을 위해 조국을 떠나가는 사람을 보면 내 눈에 눈물이 맺힌다. 어찌 병들어 신음하는 조국을 매정히 버리고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한다는 것인가. 아! 인생아 너는 도데체 무엇을 얻으려 이 지구를 찾아 온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