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은 또 하나의 ‘주님 성탄 대축일’이라고도 한다. 동방의 세 박사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러 간 것을 기념하는 날로, 이를 통하여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탄생이 세상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해마다 1월 2일과 8일 사이의 주일에 지내고 있다.
제1독서<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60,1-6
예루살렘아, 1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2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3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
5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
6 낙타 무리가 너를 덮고 미디안과 에파의 수낙타들이 너를 덮으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지금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약속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3,2.3ㄴ.5-6
형제 여러분,
2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나에게 주신 은총의 직무를
여러분은 들었을 줄 압니다.
3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5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6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2
1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4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5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6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7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9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너의 빛이 왔다”(이사 60,1). 이 말씀이 주님 공현 대축일을 요약해 주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빛이 모든 이에게 드러나는 사건이 공현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이사야서의 예언은 마태오 복음과 놀라울 정도로 상응하며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빛은 동방을 비추는 별로, 빛을 향하여 오는 모든 이는 동방의 박사들로, 민족들의 재물은 박사들이 바치는 예물로, 그리고 기쁜 빛은 예수님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는 박사들을 통하여 표현됩니다.
오늘 복음은 두 임금을 대조합니다. 지금 유다를 다스리고 있는 헤로데와 새로 태어난 임금이신 예수님입니다. 임금은 구약의 예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통치자를 나타내는 표상이자 유다인들에게 메시아를 표현하는 낱말입니다. 그래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유다인들의 임금”을 찾습니다. 한편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받으셨을 때 그분의 죄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 예수다”(마태 27,37). 마태오 복음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빛을 가져올 임금, 곧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죽음을 맞으십니다. 임금의 탄생이라는 기쁨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거친 외침으로 바뀝니다. 박사들은 임금께 예물을 바치며 경배하지만, 그 임금은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영광에 싸인 임금의 탄생은 처절한 죽음으로 끝납니다. 한 분이신 같은 임금이시지만 누구에게는 예언의 성취인 반면에 다른 이에게는 신을 모독한 자입니다. 임금이라는 같은 낱말을 사용하는 역설입니다. 복음서는 마치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어떤 임금이신지’를 묻는 것 같습니다.
(허규 베네딕토 신부)